[이데일리 SPN 임성일 객원기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리버풀-첼시가 각축을 벌이고 있는 2008~2009 프리미어리그 중후반레이스가 뜨겁다.
올 시즌 거의 기복이 없었던 챔피언 맨유(29경기 65점)가 보기 드문 2연패로 ‘휘청’하면서 판세를 재밌게 만들었고, 히딩크 감독 부임 후 대나무가 쪼개지는 기세로 추격하던 첼시(30경기 61점)가 하필이면 맨유가 휘청할 때 덩달아 ‘삐끗(3월21일 토튼햄전 0-1패)’하면서 격차를 좁히지 못한 것도 재밌는데, 시나브로 관심에서 멀어졌던 리버풀(30경기 64점)이 몰라보게 달라진 기운을 내뿜으며 ‘냉큼’ 경쟁에 다시 가세해 더욱 재밌어졌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장담할 수 없겠다.
언급한 세 팀이 워낙 흥미진진하게 판을 꾸리고 있는 덕분에 팬들의 관심이 온통 순위표 쪽으로 집중된 형국이다. 때문인지 여느 해보다 개인 기록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는 느낌인데, 사실 딱히 도드라진 플레이어도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팬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공격수들의 화력이 신통치 않다는 것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의 ‘숨은 특징’이다. 지난 시즌, 그야말로 펄펄 날았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맨유) 같은 맹활약은 고사하고 제대로 골을 터뜨려주는 공격수들이 통 보이지 않는데, 이는 득점랭킹의 면면과 포인트에서 가감 없이 드러난다.
30라운드까지 진행된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선두는 첼시의 ‘굴러온 돌’ 니콜라스 아넬카(15골)다. 디디에르 드로그바의 아프리카네이션스컵 참가로 인한 공백을 우려해 ‘땜빵’으로 불러들였던 지난 시즌(2008년 1월 영입)은 실상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다. 하지만 올 시즌 ‘미운 오리’에서 ‘화려한 백조’로 변신에 성공하는데, ‘박힌 돌’ 드로그바를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시키면서 말 많고 탈 많았던 ‘저니맨’의 비상을 알리는 듯싶었다. 그런데 ‘듯싶었다’에서 알 수 있듯이 벌써 내리막길 분위기다.
아넬카가 2009년 들어서 뽑아낸 득점(정규리그)은 딱 하나에 그친다. 14골을 뽑아내던 지난해의 기세와는 사뭇 다르고 지난 2월14일 왓포드와의 FA컵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챔피언십(2부) 클럽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부여는 어렵겠다. 엎친 데 덮쳐 최근 엄지발가락 부상으로 약 1달 가까이 개점휴업을 선언한 터라 한 동안 추가골을 기대할 수 없으니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앉아서 지켜봐야하는 신세가 됐다. 이에 아넬카가 근근이 세워주던 ‘전문 공격수’의 자존심마저 함락될 위기다.
기력이 떨어진 아넬카를 2골 차로 추격하는 자가 맨유의 특급날개 호날두와 리버풀의 캡틴 스티븐 제라드다. 알다시피 한 명은 윙플레이어(호나우도)요 다른 이는 전체적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조율사(제라드)에 가깝다. 결국 ‘지원사격자’가 메인 킬러를 능가하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지난 시즌 31골을 몰아치며 득점수위에 올랐던 것에 비하면 호날두의 페이스가 많이 떨어졌으나 그래도 여느 공격수들을 머쓱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하고, PK가 많다(4개)고는 하지만 커리어 최다득점을 경신하고 있는 제라드의 숨어있던 득점본능 역시 보통 스트라이커들을 능가하고 있다. 뿐이랴. 올 시즌 새롭게 EPL에 뛰어든 맨체스터시티의 호비뉴(11골) 역시 정통파 공격수는 아니고 10골을 넣고 있는 첼시의 램파드 역시 미드필더이니 득점랭킹 상위권에 허리라인 자원들이 제법이나 많다.
물론 언급한 호날두나 제라드, 호비뉴와 램파드는 EPL을 떠나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톱클래스 스타들이고 이들의 비상을 이상스레 바라보는 자체가 이상할 일이다. 고로, 그들은 그들다운 포인트를 올리고 있을 뿐인데 리그 간판 골잡이들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영향으로 짚어내는 게 합당해 보인다. 다른 빅 리그의 득점레이스와 견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28라운드 현재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득점선두는 바르셀로나의 흑표범 사무엘 에투로 무려 25골을 몰아치고 있다. 다비드 비야(발렌시아)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디에고 포를란(아틀레티코마드리드)이 각각 19골로 2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름과 성적이다.
하위클럽 알메리아의 무명공격수 알바로 네그레도(16골)의 ‘깜짝 활약’을 제하고는 프레데릭 카누테(세비야) 곤살로 이과인(레알 마드리드) 티에리 앙리(바르셀로나/이상 15골), 라울 곤살레스(레알 마드리드/14골), 세르히오 아게로(아틀레티코마드리드/13골) 등 라 리가의 간판 공격수들이 모조리 상위권에 랭크돼 판도를 이끌고 있다.
이탈리아 세리에A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터 밀란의 장신 스트라이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볼로냐의 백전노장 마르코 디 바이오가 나란히 19골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디에고 밀리토(제노아/16골), 알베르토 질라르디노(피오렌티나/15골), 알렉산드레 파투(AC밀란/14골), 아드리안 무투(피오렌티나/13골) 아마우리(유벤투스/12골) 등 역시나 이름값과 비례하는 득점 순위가 나오고 있다.
이제 확연해질 것이다. 저메인 데포(토튼햄) 피터 크라우치(포츠머스/이상 10골), 웨인 루니(맨유) 로빈 반 페르시(아스날) 페르난도 토레스(리버풀/이상 9골), 엠마누엘 아데바요르(아스날)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맨유/이상 8골). 선수들의 네임벨류와 팀에서의 비중 그리고 객관적인 전투력을 두루 고려할 때 결코 어울리거나 만족스러운 성적이 아니다.
부상도 있었고 슬럼프도 있었다지만 하루이틀 축구했던 선수들도 아닌데, 게다가 그러한 위기 없이 지금의 위치에 올라선 것도 아닐 터인데 새삼스러운 핑계일 뿐이다. 어쩌면 그리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침묵하고 있는 것인지, EPL 공격수들의 수난시대다./<베스트 일레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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