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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40주년을 맞은 정지영 감독이 1999년 삼례나라 슈퍼 사건을 다룬 실화 바탕의 신작 ‘소년들’을 기획하게 된 계기다. 영화 ‘소년들’이 강렬한 실화를 통해 전하는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 실제 사건 속 인물들이 튀어나온 듯한 배우들의 진정성있는 열연으로 관객들의 가슴을 울릴지 주목된다.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소년들’(감독 정지영) 기자간담회에는 정지영 감독과 배우 설경구, 유준상, 진경, 허성태, 염혜란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소년들’은 지방 소읍의 한 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소년들과 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형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한국영화계 명장 정지영 감독의 신작이다. 1999년 삼례나라슈퍼 사건을 소재로 한 사건 실화극으로 2007년 석궁 테러 사건을 조명한 법정 실화극 ‘부러진 화살’(2012), 2003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파헤치는 금융 범죄 실화극 ‘블랙머니’(2019)를 잇는 이른바 실화극 3부작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지영 감독은 그간 실화를 소재로 한 강력한 사회고발성 작품들로 현 시대에 경각심을 일깨워왔다. 정지영 감독은 이날 수많은 실화 바탕 작품들 중 이미 여러 탐사 교양 프로그램들로 수 차례 조명됐던 삼례나라 슈퍼 사건을 영화로 기획하게 된 계기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는 “많이 알려진 사건이지만, 우린 많이 알려진 사건이라며 강 건너 불구경 보듯 지나치는 게 대부분이다”라며 “이 사건만은 그렇게 지나가선 안 될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 더 다시 보자, 잘 들여다보자, 거기서 우린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었다”고 영화화 계기를 털어놨다.
정지영 감독은 “삼례슈퍼 3인조 사건에 대해서 재미로만 우리가 보도를 통해서 ‘불쌍하다’ 정도로 생각했는가. 그 세 소년이 감옥을 가는데 무의식적으로 그런 우리가 동조했던 건 아닌지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다른 사건과 다르다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해에는 삼례나라슈퍼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가 23년 만에 피의자로 누명을 섰던 피해자들에게 사과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다만 이에 대해 정지영 감독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 사과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선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았기때문”이라며 “세월이 지난 후의 사과가 진정성이 있을까 싶었다”는 소신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다만 실화를 그대로 담는데 그치지 않고, 중심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선에서 극적 장치를 가미했다고도 강조했다. 정지영 감독은 “사건의 심각성을 간주하면서 그 안에서 극적 장치를 만드는 사람 같다”며 “사실 사실대로 갔다면 주인공인 황준철 반장(설경구 분)이란 사람이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실화에선 재심 변호사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풀어간다. 다만 이건 영화인 만큼 한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게 맞다고 판단했기에 다른 사건의 인물을 빌려와서 영화에 입힌 것이다”라며 “사실을 바탕으로 극적 장치를 도입하되 뼈대를 흐트러뜨리거나 왜곡시키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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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는 “‘공공의 적’ 강철중 이후 경찰 역할을 한동안 밀어낸 적이 있었는데, 대본을 봤더니 황준철에게서 정리된 ‘강철중’의 느낌이 나더라”며 “오히려 17, 16년 후 극 중 현재의 시점을 사는 황준철의 모습이 저에게는 더 중요했다. 과거와 현재가 계속 교차되고 크게 대비되는 모습에 더 마음이 움직였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혈기왕성했던 경찰이 시간이 흐른 뒤 몸과 마음이 지친 경찰이 된 모습을 보여주는 교차에 갭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촬영했다”고 강조했다.
‘소년들’을 촬영하기 전에도 실화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 대해선 “촬영 전에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사건을 알고 있었다. 순간에는 분노했지만, 흘려보냈던 사건이 아닌가라는 반성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황반장은 이 사건과 무관한 캐릭터다. 캐릭터 자체는 약촌오거리 사건의 황 반장을 빌려왔다. 나를 통해서 이 사건을 정확히 보길 바랐다“라고 소망을 전했다. 이어 실화 바탕의 영화를 자주 맡는 이유에 대해선 ”실화가 주는 강렬함이 있는 것 같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잔인할 수도 있어서 끌리고 책임감도 생기더라”고 부연했다.
명장 정지영 감독과 호흡을 맞춘 소감도 밝혔다. 설경구는 “제일 연세가 많은 감독님이시지만, 가장 ‘소년’ 같은 분“이라며 ”보통 감독님들은 모니터 쪽에서 무전기로 디렉션을 하신다. 하지만 정지영 감독님은 현장 거리에 상관없이 항상 직접 오셔서 배우들을 보고 디렉션을 해주셨다. 배우와 직접 소통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유준상 역시 이에 공감했다.
유준상은 ‘소년들’에서 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세 소년을 지목, 이들을 검거해 졸속으로 사건을 해결한 전북청 수사계장 ‘최우성’ 역을 맡아 오랜만에 악역에 도전했다.
유준상은 “제가 맡은 역이 절대악이 아니라서 오히려 무서웠다. 보통의 악인들이 어떻게 우리 삶 속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명분을 가지고 악행을 하는가 이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큰 명분을 찾으면서 연기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특히 “마지막에 소년들이 재판받는 장면을 찍던 당시 ‘최우성’으로서 그들에게 손가락질한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 후 역할이 아닌 저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뒤 그 행동을 되게 많이 자책했다. 괴로워했던 시간들이 기억이 난다”고 힘들었던 순간을 회상했다.
이어 “왜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제가 맡은 인물에 대한 제 나름의 꾸짖음의 생각들이 들었다. 하지만 촬영 중엔 정확한 캐릭터의 명분을 찾아야했기에, 이 사람이 악의 화신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어떻게 변해서 이렇게 되어갔는지, 자신의 악행을 악행이라 생각하지 않고 믿는 과정을 자연스레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슈퍼 강도치사사건 피해자의 딸을 연기한 진경은 “자신이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려 나가는 부분에서 바람직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라도 그 상황에서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캐릭터, 외적인 부분보다는 인물의 진실성, 진심을 좀 더 들여다보려 노력했다”고 전했다. 황준철 반장의 아내 경미 역을 맡은 염혜란은 “제가 요즘 흥행요정이라고 많이 불리고 있는데 ‘소년들’도 흥행했으면 좋겠다”는 센스있는 염원을 밝혀 환호성을 받았다. 황준철의 후배 정규 역을 맡은 허성태는 “영화를 보고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부었다”며 “영화에서 악역이 아는 역할로 나온 건 처음”이라고 의미를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정지영 감독은 꾸준히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드는 자신의 원동력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실화로 이야기를 만드는 게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기에 지금을 살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런 삶의 지표를 찾고 거기서 우리의 삶을 점검하는 것이 저의 취미이자 사명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내가 이런 작업을 하고 있구나, 특히 최근에 만든 여러 작품들을 보면 실패로 끝난 사건이라도 저도 모르게 마지막엔 희망을 담아내려 하고 있더라. 절망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는 진심을 덧붙였다.
차기작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여러 실화를 다뤄봤지만 해방 이후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룬 적이 없더라. 이번엔 제주 4.3사건 실화 소재를 준비 중이다. 그 다음 작품도 구체적인 단계는 아니지만 준비 중인데 백범김구 암살 사건 소재로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소년들’은 11월 1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