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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1990년대 후반까지는 연예계에 정과 의리가 느껴졌죠. 그 때가 그립기도 해요."
최진실은 취기가 오르자 이같은 말을 반복했다. 고소영, 김희선 등 동료 연기자들과 어울려 놀러다녔던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꺼냈다. 청춘스타였던 시절의 모습을 기억하는 기자에게 고마워하기도 했다. 지난 해 3월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 취재와는 전혀 상관없이 만난 자리에서의 일이다.
당시를 비롯 생전 최진실을 사석에서 몇차례 만났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어 만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인터뷰나 기사를 쓰기 위한 목적도 없었다. 그냥 우연한 계기에 최진실 일행과, 그것도 술자리에서만 자리를 함께하게 됐다. 덕분에 카메라 밖 평소 최진실의 모습을, 그간 몰랐던 인간 최진실을 짧게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 "고교 때 공부는 못했어도 인기는 많았죠"
1990년대 스포츠신문에서 근무하던 선배가 친한 연예인과 밥을 먹게 됐다며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으로 기자를 불렀다. 그 자리에서 최진실을 만났다. 최진실은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90년대 연예계 생활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거워했다. 선배와 달리 초면이었던 기자는 대화에 끼지 못하고 옆에서 조용히 그들의 얘기를 듣기만 했다.
술이 몇 차례 돌자 동석했던 사람들의 자리도 바뀌었고 최진실과 맞은 편에 앉게 됐다. "중학교 시절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선생님 몰래 극장에 가서 본 적이 있다"고 말을 걸자 표정이 일순 밝아졌다. 군대 가기 전 '별은 내 가슴에'를 가장 재미있게 봤다고 하자 최진실은 무척 반가워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신을 '장밋빛 인생'에 나왔던 맹순이로만 알아주는 데 그때의 모습을 기억해줘서 고맙다는 이유에서였다.
오병철 감독이 연출한 '숲속의 방'에 대해 물었다. 1992년 개봉한 이 영화에서 최진실은 80년대 군부 독재시절 현실과 이상의 차이로 방황하는 여대생 소양 역을 연기했다. 당시 청춘스타로 각광받는 최진실이 운동권 여대생 역할을 맡은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최진실은 "그때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던 상황에서운동권 여대생 역할을 맡다보니 나 역시도 힘들었다"면서 "당시 철이 없어 감독님 속을 더 많이 썩혀드렸다"고 털어놨다.
대화의 주제가 영화로 굳혀지자 최진실이 "최근 본 영화중에 어떤 영화가 가장 재미있었느냐"고 물었다. 짐 캐리 주연의 '이터널 션샤인'이라고 하자 최진실은 반색했다. 자신도 그 영화를 보고 너무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이후부터 최진실은 연거푸 기자에게 잔을 권하며 영화 이야기를 이어갔다.
술이 몇순배 돌면서 최진실은 조금 더 편한 모습을 보여줬다. 최진실은 휴대폰으로 후배 탤런트에게 전화를 걸어 그 탤런트의 연애문제에 대해서도 약간의 비속어를 섞어가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 대화가 무척 정겹게 들렸다. 또 90년대 고소영, 김희선 등 동료 연예인들과 어울려 놀러 다녔던 이야기도 스스럼 없이 꺼냈다.
그녀의 모교인 선일여고에 아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자 학창시절 이야기까지 오고 갔다. 최진실은 "제가 학교 다닐 때 반에서 40등 정도로 공부를 못했다"며 "그래도 인기는 많은 편이었다"고 은근히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최진실은 90년대 후반까지 연예계에서 정과 의리가 느껴졌다며 그 시절이 그립다는 말도 반복했다.
그때 우연히 그 식당으로 탤런트 이동건이 식사를 하러 왔다 최진실에게 인사를 하고 갔다. 최진실은 "예전에는 선배면 무조건 가서 먼저 인사를 하는 게 연예계의 기본이었다"며 "요즘 젊은 연예인들 중에 그런 연예인이 드문데 이동건씨는 초면에 먼저 와서 인사를 하니 보기 좋다"고 선후배의 위계질서를 중요시하는 모습도 보였다.
◇ "경규 오빠 나 잘 할 수 있을까?"...'최진실의 진실과 구라' 회식
최진실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007년 3월 경인방송 OBS의 토크프로그램 ‘최진실의 진실과 구라’(이하 '진실과 구라') 녹화 후 회식자리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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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최진실과 대화를 직접 나누기보다 최진실이 프로그램의 공동 MC를 맡은 김구라, 게스트로 녹화에 참여한 이경규, 최진실을 프로그램 메인 MC로 섭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주철환 OBS 사장과 하는 이야기를 옆에서 듣게 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OBS 측은 최진실과 MC 계약을 하며 현재 방송가 최고 대우를 받고 있는 유재석보다 출연료가 높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진실 소속사 대표에 따르면 구두 계약이었을 뿐 서류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최진실은 프로그램 출연을 결정했다. 주철환 사장과 맺은 의리 때문이었다. 주 사장은 그 부분에 대해 최진실에게 거듭 고마움을 나타냈다.
최진실은 옆에 있던 이경규에게 “오빠”라고 서슴없이 대하며 MC가 된 고민을 진지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연기는 몰라도 프로그램 진행자는 처음이라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경규는 최진실에게 카메라 앞에서 하는 일은 MC나 연기나 다 똑같은 것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 밖에 최진실은 당시 방영 초기였던 MBC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그래도 최진실인데”하며 주변 사람들과 호기롭게 술잔을 부딪혀보기도 했지만 새로 시작한 드라마가 시청률이 생각보다 좋지 않다며 걱정스런 마음을 지우지 못했다. 또한 드라마의 캐릭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그날 최진실은 술이 몇잔 돌자 양해를 구하고 담배를 피웠다. 식당 아주머니들이 짐짓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최진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양해를 구했다. 그 모습이 당당해 보였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최진실이 이 세상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면 기사로 나오지 않았을 그때의 모습을 뒤늦게 기사로 적는다. 최진실 역시 온갖 수식어 이전에 그저 평범한 사람들처럼 화내고 좋아하고 슬퍼하며 욕도 하고 크게 웃기도 했던 보통의 인간이었음을 짧은 글로나마 남기기 위해서다.
고인의 넋이 저 세상에서만큼은 스타나 연예인에서 벗어나 그저 자유롭고 평온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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