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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창 전 교수는 한국 남자배구가 낳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다. 1978년 당시 인창고 2학년에 재학 시절 최연소(17세) 국가대표에 발탁돼 그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이후에도 국가대표로서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냈다. 그해 방콕 아시안게임과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고인은 한국 실업 배구의 전성기를 이끈 장본인이기도 했다. 1983년 고려증권의 창단 멤버로 합류해 특유의 ‘조직력 배구’를 이끌었다. 상대적으로 선수 구성이 떨어졌던 고려증권이 초대 챔피언을 비롯해 총 여섯 차례 우승을 차지하는데 그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1984년 슈퍼리그에서는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왼손 아포짓 스파이커였던 고인은 국내 남자배구에선 최초로높이 점프한 뒤 스파이크를 넣는 것처럼 강하게 서브를 넣는 ‘스파이크 서브’를 구사한 주인공이었다. 공격을 할때 몸이 뒤로 활처럼 휘어진다고 해서 ‘돌고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은퇴 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조지워싱턴대에서 체육학 석사 학위를, 한국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모교인 경기대에서 체육학과 교수로 활동했다.
대한배구협회 기술이사를 거쳐 2011년 출범한 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행정가로도 많은 역할을 했다.
고인의 아들인 장민국은 농구선수로 맹활약 중이다. 최근 창원 LG 세이커스에서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하는데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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