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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까지 외롭고 무서웠을 고인의 고통을 감히 헤아릴 수 없다. 수많은 취재진 중 한 명으로 멀찍이서 이틀간 장례 현장을 지켜봤지만, 여전히 그의 죽음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남은 이들이 흘린 눈물, 조문객들의 눈빛에 서린 상실로 그가 48년의 생을 얼마나 치열하고 다정하게 살아왔는지만 체감했다.
영화와 관련한 이슈들을 취재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고인과의 특별한 추억이나 직접적 인연도 없다. 그렇기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체적으로 소회를 남기거나 어떤 평가를 내리는 건 조심스럽다. 올해 개봉한 영화 ‘킬링 로맨스’와 ‘잠’ 두 편의 라운드 인터뷰로 고인을 만나고, 함께 작업한 배우들과 감독, 관계자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전부다.
하지만 이 미약한 인연에도 일기를 쓰듯 빼곡히 채운 고인의 지난 24년 작품 인생이 한 번도 헛된 방향으로 간 적이 없음을 느낄 수 있던 지점들은 많았다.
그의 연기가 지닌 매력과 강점들은 동료들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난다. 영화 ‘잠’의 유재선 감독은 이선균에 대해 “필모그래피의 많은 부분에서 현실적인 연기를 하셨다. 장르 연기를 할 때도 항상 현실 연기톤이 묻어나오는 배우라 생각했다. ‘잠’이야 말로 그런 연기톤을 가진 배우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특히 이선균 배우가 맡은 ‘현수’는 난이도가 굉장히 높은 배역이었다. ‘현수’의 주된 연기는 수진(정유미 분)의 행동에 대한 리액션이 대부분이다. 리액션 연기도 그만의 엄청난 아트인데 이를 섬세히 끌어낼 수 있는 분으로 ‘이선균’ 배우란 정답밖에 없었다”고 극찬했다. ‘킬링 로맨스’ 이원석 감독은 “이선균 씨는 제가 정말 좋아하고 친한 사람인데, 사람들이 잘 모르시는 필모그래피들이 몇 개 있다”며 “왜 이 영화에 이선균 씨를 캐스팅했는지 모르시던 분들도 단막극 등 알려지지 않은 그의 필모그래피를 본다면 납득할 것이다. 코미디를 떠나 장르를 불문, 작품이든 광고든 어떤 식으로도 열심히 하는 분”이라고 평했다.
이선균은 24년을 배우로 살며 42편의 영화 28편의 드라마를 남겼다. 팬들이 말하는 이른바 ‘소처럼 일하는’ 다작 배우였다. 2005년 고인이 출연한 8부작 드라마 ‘태릉선수촌’은 폭넓게 사랑받진 못했지만, 마니아층을 낳으며 ‘이선균’이란 배우를 발견케 한 첫 작품이었다. 이후 2007년 드라마 ‘하얀거탑’과 ‘커피프린스 1호점’으로 주목받기 시작해 명실공히 ‘톱배우’가 된 뒤에도 감독과 대본만 좋다면 장르와 작품의 예산, 역할과 비중을 가리지 않고 도전을 감행했다. 짜증낼 때는 있어도, 감독들의 요청을 한 번도 마다하지 않고 캐릭터를 위해 기꺼이 몸을 내던진 배우라고 업계 관계자들과 동료들이 입을 모았다. 그래서인지 이선균 본인은 자신의 인생작을 ‘나의 아저씨’와 ‘커피프린스’ ‘기생충’으로 꼽았지만, 관객 및 시청자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스펙트럼은 폭넓고 다양했다.
‘기생충’으로 오스카 레이스를 완주한 이선균이 차기작으로 B급 코드를 표방한 영화 ‘킬링 로맨스’를 택한 것도, 신인 감독의 입봉작인 ‘잠’에 출연한 것도, 이젠 유작이 되어버린 ‘행복의 나라’와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도 그런 그의 연기철학이 깃든 선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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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때부터 연기를 전공하고 꿈꿔왔다. 주목받고 인정받는 것보다 연기 자체가 좋았다. 지금도 내가 큰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큰 롤을 맡으니 옛날에 느끼지 못한 책임감과 부담은 있다”. 영화 ‘잠’으로 국내 취재진을 마지막으로 만난 이선균이 했던 말이다.
사석에선 동료 및 소중한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기 좋아하는, 조금은 까칠해도 유쾌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기억됐다. 장례 이틀간 배우들 외에 가수, 정치인, 스포츠인, 방송인 등 다채로운 각계 인사들이 빈소를 방문하는 모습을 통해 생전 사람을 좋아하며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고인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킬링 로맨스’의 조나단처럼 자기애 같은 건 없다. 다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 마시며 이야기하고, 기분좋게 취해 운동할 때, 가족들과 화목하게 지낼 때 행복을 느낀다”. 눈동자를 빛내며 연기를 논하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엔 인자한 웃음을 지어보이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이미 너무 늦었지만, 많은 대중을 위로한 그의 작품들 속 명대사처럼 “존재만으로 충분했던”(‘하얀거탑’) 그가, 그곳에선 “편안에 이르길”(‘나의 아저씨’) 바라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