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먹고 싶었던 10대 소녀, 15년만에 LPGA 투어 정상에 섰다

김인오 기자I 2013.05.27 12:47:41
이일희가 27일 열린 LPGA 투어 퓨어실크-바하마 클래식 최종라운드에서 환한 표정으로 코스를 이동하고 있다.(AP/뉴시스)
[이데일리 스타in 김인오 기자] 마지막 18번홀(파5) 티샷이 러프에 빠졌다. 파만 잡아도 우승. 하지만 우드를 들고 과감하게 투온을 시도했다. 나이스 샷! 세컨 샷은 홀컵 왼쪽 3m에 안착했다. 이글로 완승을 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차분하게 버디를 잡아내며 2타 차 우승을 거뒀다. 그리고 15년의 힘겨웠던 골프 인생을 되돌아보듯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이일희(25·볼빅)가 27일(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퓨어실크-바하마 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미국 진출 4시즌만에 거둔 값지 우승이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데뷔 후 7년 만에 들어 올린 첫 우승트로피다.

이일희의 골프 인생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됐다. “맛있는 짜장면 사줄게”라며 주말마다 골프 연습장에 데리고 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골프를 처음 접했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이일희는 깨진 볼을 쳐가며 시간을 보냈다. 이후 골프에 흥미를 느낀 이일희는 국가대표 상비군을 거치는 등 아마추어 강자로 등극했다.

프로 첫 무대는 2006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부터다. 하지만 우승과의 인연을 쌓진 못했다. 최고 성적은 준우승 2회. 2009년 이일희는 과감하게 LPGA 투어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이일희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미국 진출에 대해 반대가 심했지만 기왕 놀려면 큰물에서 꿈을 펼치라며 아빠가 밀어 주셨다”고 각오를 밝힌 바 있다.

장타와 함께 공격적인 스타일의 골프를 구사하는 이일희는 2009년 퀄리파잉 스쿨 마지막 날 공동 20위로 조건부 시드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조건부 시드라 출전 대회가 많지 않아 미국 체류에 따른 경비가 큰 부담이었다. 제일 싼 이코노미 클래스 티켓을 구입해 경기장을 다녔고, 호텔 대신 하우징을 했다. 하우징은 대회 조직위원회가 선수들을 위해 대회장 근처 가정집을 모집해 무료로 제공하는 것으로 당시 한국 선수로는 이일희가 유일했다. 때론 동료의 차를 얻어 타기도 했다.

LPGA 투어 첫 무대는 2010년 기아클래식이었다. 첫 대회치곤 무난한 성적인 67위에 올랐지만 이후 연속 7개 대회를 컷 탈락하며 미국 투어를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그런 와중에도 KLPGA 투어에 출전했다. 시드권 유지를 위해서였지만 실상은 미국 투어에 필요한 자금이 필요했던 게 더 큰 이유였다.

미국과 한국 투어를 병행하다 보니 두 곳 모두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결국 이일희는 국내 복귀를 위해 KLPGA 투어 시드전을 치렀다. 하지만 결과는 낙방. 이후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복귀했고,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 됐다.

이때 이일희에게 손을 내민 곳이 국산 골프볼 제조업체인 볼빅이다.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은 이일희는 투어 비용과 집을 구했다. 재정적으로 안정이 되자 좋은 결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US여자오픈 공동 4위에 올랐고,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공동 9위를 차지하며 우승 가능성을 엿봤다. 올해도 6일 끝난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10언더파 274타를 기록하고 공동 3위에 오르며 자신감을 얻었다.

올 시즌 첫 톱10으로 좋은 기운을 얻은 이일희는 올해 창설된 퓨어실크-바하마 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그간의 설움을 모두 날려버렸다.

‘효녀골퍼’로 유명한 이일희는 “너무 바랐던 우승이라 눈물이 난다. 마음고생을 많이 하신 부모님께 가장 먼저 전화해야겠다”고 말했다.

또한 “믿고 아낌없이 후원해 주시는 볼빅에게 감사드린다. 강풍에도 버디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볼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다”며 국산 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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