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 신드롬]28년을 넘은 응답, '2016 사회'를 돌아보다②

강민정 기자I 2016.01.17 13:39:15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응답하라 1988’은 ‘전편만한 속편은 없다’는 징크스를 다시 한 번 깼다. ‘응답하라 1988’은 시청률로 케이블TV의 새 역사를 썼고 케이블 채널로 중장년층의 유입을 이끌었다. 지금의 40·50대나 기억할 법한 30년전 이야기가 ‘사랑’ ‘가족애’ ‘추억’과 어우러져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로 완성됐다. 그 시대 음악이 다시 울려퍼지고, 그 시대의 사람들이 다시 조명을 받았다. 드라마 한 편에 사회경제문화 전반에 복고열풍이 거세게 일었다. ‘응답하라 1988’이 남긴 것을 살펴봤다.
‘응답하라 1988’
◇1988 성보라의 데모, 2015 김영삼의 서거

1987년 ‘전두환 정권’의 끝자락. 서울대학교 박종철 학생의 고문치사사건을 계기로 거국적인 학생운동이 시작됐다. 이른바 ‘1987년 6월 항쟁’이었다. 1988년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2학년생으로 그려진 성보라(류혜영 분)는 그 중심에 있었다. 늦은 밤 성보라를 미행하는 무장 경찰들의 모습, “데모하다가 잡혀가불면 네 인생에 빨간줄 생기고 집안도 다 날라가는 거야”라고 입에 거품을 무는 성보라 아버지(성동일 분)의 모습은 당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줬다. 40~50대 시청자는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한 에피소드에 크게 공감했다. 꼭 이 시기 정치인생에 역변의 2년을 보낸 전 김영상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서거한 상황과 맞물려 1980년대 정치사회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자유투쟁에 혈안인 청년의 모습이 어떤 어른의 시선엔 “서울대씩이나 가서 공부는 안하고 헛지꺼리만 한다”고 비춰지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아이 사람아,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혼을 내나”라던 성보라 아버지의 자조 섞인 말은 사회에 맞서지 못해 자녀세대에 고통을 물려준 기성세대의 죄의식이기도 했다. 그 시대 부조리함은 3화에서 그려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에피소드에서도 드러났다. 1988년 10월 교도소 이송 중 탈주해 인질극을 펼쳤던 ‘지강헌 탈주 사건’이 다뤄졌다. 500만원 절도를 저지른 자신들보다 70억원을 횡령한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의 형기가 더 짧다는 판결에 불만을 갖고 벌어진 사건이었다. 진압과정에서 자살하거나 사살된 이들은 TV생중계를 통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지강헌이 뱉었던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희대의 명언으로 남았다. 드라마에서도 당시 뉴스 보도를 인용해 “우리사회의 부조리함을 극명하게 드러낸 비극이 됐다”고 회상했다.

‘응답하라 1988’
◇1988의 라이징스타 2016의 레전드

당시 사회를 바꾼 중심엔 ‘문화계 아이콘’도 있었다. 돌 하나로 나라판을 들썩이게 한 이창호나 이세돌과 같은 ‘천재 바둑기사’가 있었다. 1989년 데뷔한 가수 이승환, 1988년 MBC 대학가요제로 가요계 혜성처럼 등장한 신해철도 빼놓을 수 없다. 드라마에서 보여준 당시 라이징스타는 28년이 지난 지금 ‘레전드’가 됐다. 새삼 다시 조명되고 있는 당시 스타들은 현대에 이르러 재차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있다. 최근 종합편성채널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이세돌은 이 드라마로 1980년대 바둑 열풍이 흥미를 끌고 있는 현실에 기분 좋은 소감을 전했다. 이승환은 지금 세대는 모를 자신의 지나간 영광을 재현해준 제작진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촬영장에 밥차를 선물하기도 했다.

2014년 10월 세상을 떠난 신해철을 추억하는 법도 1988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대학가요제를 보는 친구들이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무대가 시작되자 너나 할 것 없이 “저 팀이 우승한다에 한표”라고 외치던 7화는 신해철에 대한 헌사와도 같았다. 아이돌 중심의 요즘 노래, 바둑이 국민적인 관심사에서 멀어진 요즘 스포츠에서 이 드라마가 1988년을 다룬 방법은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응답하라 1988’
◇1988의 쌍문동, 2016년의 대치동

1978년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316대지 23만 9224㎡에 14층 규모 건물 28개 동으로 건설된 은마 아파트. 1979년 9월 3일 준공돼 강남구에서 개포 1단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단지였다. 무주택 서민을 위해 민간건설업자가 주택자금을 융자받아 분양하는 아파트였지만 그런 목적을 지향하기엔 지나치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규모가 컸고, 분양가격도 2000만원을 넘어 무주택 서민을 외면했다는 비난도 나왔다.

1화에서 쌍문동 골목 다섯 가족의 대화에 등장한 ‘대치동 은마 아파트’는 1988년 당시 부동산 분위기를 엿보기에 충분했다. “은마아파트가 딱 5000만원인데 그거 사요 그거”라는 말에 “무슨 아파트가 5000만원 씩이나 하노”라며 뒤로 놀라 넘어가는 모습은 현재를 사는 시청자를 더욱 놀랍게 만든 대목. 현재 은마아파트는 10억원이 넘는 매매가에 거래되고 있다.

1988년과 2016년의 괴리감이 씁쓸함을 던지기도 했다. 은마아파트가 5000만원 하던 시절, 힘든 가운데 살아가던 쌍문동 이웃들에게선 지금으로선 찾아보기 힘든 사람 간에 정이 숨쉬었다. 수 천 만원 돈을 빌려주는 일도 “있는 사람이 돕는거지”라며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졌다. 옆집에 내 아이를 불쑥 맡기는 일은 다반사였고, 남의 집 문턱을 제 집 드나들듯 오가던 일도 다 정 때문에 가능했다. 은마아파트가 10억원이 넘는 요즘엔 강남이든 강북이든, 서울이든 지방이든 ‘내가 제일 힘들어’라며 자기 살기 바쁘다고들 한다. 빈부격차보다 심각한 ‘관계의 격차’에 2016년 사회가 골병이 들고 있다는 무언의 합의에 경각심을 울렸다.

◇1988의 골드스타, 2016년의 LG

톼사 후 대리점을 차려 돈을 버는 김성균(김성균 분). 그가 매일 입고 다니는 옷엔 ‘Goldstar’라는 노란색 알파벳이 수놓아져있다. 금성사의 로고다. 당시 금성사 대리점장은 돈이 꽤 있어야 차릴 수 있었다. 올림픽 복권에 당첨돼 ‘벼락부자’가 된 성균이라 가능한 섬세한 설정이었다. 성균의 집엔 ‘추억의 백색가전’인 한국형 워크맨 아하, 무선전화기, PC모니터 보다 작은 TV, 더블데크 카세트 플레이어, 이조식 세탁기 등 금성사 대표 전자제품이 곳곳에 있었다.

금성사는 1958년 10월 우리나라 최초의 전자 공업 회사로 설립됐다. 1995년 1월 사명을 개명한 뒤 지금의 ‘그룹’으로 성장한 LG의 전신이다. 1959년 총 자본금 1000만원으로 시작해 1982년 총자본 750억원, 매출액 4500억원, 종사자수 9610명, 수출액 2억 달러 등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삼성, 현대를 비롯해 LG 등 지금의 경제구도를 만든 한 축으로 존재하는 그룹들은 한국 전쟁 후 폐허가 된 국가적인 위기에서 번혁의 입지를 선점했다. 이 드라마를 본 장년층 시청자에겐 ‘내가 저렇게 일했어’ ‘저땐 저렇게 회사가 컸지’라고 회상할 수 있었던 셈.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금성사의 히트 카피는 그 기억여행에 정점을 찍어준 ‘디테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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