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한 가수 박기영은 데뷔 25주년을 맞은 소감을 묻자 이 같이 답하며 웃어 보였다. 연차를 나이에 비유해 여전히 뜨거운 음악 열정을 표출한 그는 “스스로를 거창하게 포장하려고 하면 거품이 많이 끼게 되기 마련이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이 남아 있기도 한 만큼, 25주년이 뭐 대수냐는 생각으로 활동에 임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데뷔 25주년을 그냥 넘기진 않는다. 오랜 시간 변함없는 사랑을 보내준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한 선물들을 잔뜩 준비했다. 지난달 발매한 앨범 ‘매직트로니카’(Magictronica)가 처음으로 꺼낸 선물이다. 그간 발표한 일렉트로닉 장르 자작곡 10곡을 새롭게 작업해 한 데 엮었다. 박기영은 “전자 음악을 차용한 음악으로 마법을 부렸다는 의미를 담아 앨범명을 ‘매직트로니카’로 택했다”고 설명했다.
“2010년 7집 ‘우먼 빙’(WOMAN BEING)을 낼 때부터 조금씩 시도했던 장르예요.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8년이고요. 이번에 돌아보니 10곡이나 돼서 앨범으로 모아보자는 생각을 했죠.”
그렇게 타이틀곡 ‘터프 걸’(Tough girl)을 비롯해 ‘레인 레인 레인’(Rain Rain Rain), ‘매직’(Magic), ‘쏘리 투’(Sorry to), ‘고백 후’, ‘자꾸 이러지마’, ‘아임 낫 오케이’(I’m not O.K.), ‘하이 히츠’(High hits), ‘치어 업’(cheer up), ‘아이 게이브 유’(I gave You) 등으로 구성된 앨범이 만들어졌다.
박기영은 “믹싱을 다시 해서 원곡보다 좋은 곡을 만들어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면서도 “실험적인 사운드에 대한 갈증을 앨범을 작업하면서 다 풀었다”고 뿌듯해했다. 아울러 “스테레오 사운드에서 가능한 공간 음향의 최대치를 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작업했다”고 강조했다.
사운드적인 부분에서 남다른 공을 들인 곡으로는 1번 트랙으로 실은 ‘레인 레인 레인’을 꼽았다. 2018년 발표한 동명의 곡을 새롭게 다듬어 리믹스한 곡이다. 박기영은 “사운드적으로 ‘압살’한 채로 앨범을 시작하기 위해 첫 트랙으로 배치했다”며 미소 지었다.
“소위 말하는 ‘잘 되는 음악’의 공식을 다 깨버린 곡이라 금기를 깰 때와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이번 작업을 통해 음악적으로 해보고 싶었던 ‘변태 짓’은 다한 것 같아서 여한이 없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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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는 “개인적으로 매너를 중시하는 편인데, 힙합계 레전드이신 분인 데다가 신사적이신 분이라 협업 파트너로 ‘딱’이었다. 흔쾌히 제안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터프 걸’을 타이틀곡으로 꼽은 이유에 관해선 “MC메타님의 참여로 랩이 더해져 신선함이 배가 된 점을 고려했다”고 했다. 이어 “사실 제 팬층의 80%인 남성 분들은 굉장히 섹시한 느낌인 ‘레인 레인 레인’을 더 선호하시는데, 결과적으로 여성 분들이 선호하시는 트랙인 ‘터프걸’을 택한 것”이라며 “이 또한 일탈의 일환으로 봐주시면 좋겠다”며 웃어 보였다.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는 ‘관계’다. 박기영은 “인간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관계에 이야기를 총집합시킨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슬픔, 연민, 기쁨, 환희 등 관계로 인해 겪는 여러 감정을 담은 다채로운 곡들이 담겨 있는데 결론은 외로움과 고독”이라고 부연했다. 여성의 뒷모습을 담은 재킷 사진에 대해선 3년 전에 찍은 자신의 누드 사진을 활용한 것이라면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여성 사진 작가 친구와 네이키드 상태로 몽환적인 사진을 찍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얘기를 나누면서 남겼던 작업물”이라는 비화를 밝혔다.
‘매직트로니카’로 데뷔 25주년 프로젝트의 포문을 연 박기영은 올가을 시즌 중 베스트 앨범을, 내년 봄 시즌 중 크로스오버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데뷔 25주년을 맞아 팬들의 품에 커다란 선물을 연이어 안기는 셈. 히트곡 16곡으로 구성한 베스트 앨범의 경우 이미 마스터링 작업까지 마친 상태란다. ‘마지막 사랑’, ‘시작’, ‘산책’, ‘블루 스카이’(Blue Sky), ‘버터플라이’(Butterfly) 등 박기영이 부른 명곡들을 어쿠스틱 버전으로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머지않았다.
차기작이 될 베스트 앨범에 대해 박기영은 “1998년부터 2022년까지 발표한 곡들을 정리해보며 제가 저를 카피했다. 10주년 때 어쿠스틱 베스트 앨범을 낸 적이 있기도 하고, 올해가 원곡 느낌을 내며 노래할 수 있는 마지막 연차라는 생각도 들어서 편곡을 하지 않고 원곡의 느낌을 온전히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하며 기대를 당부했다.
“장르가 박기영을 옭아매는 데 실패했죠”. 폭넓은 음악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박기영은 인터뷰 말미에 이 같이 말하면서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했다. 그는 “성향 자체가 똑같은 것만 하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 여러 분야를 기웃기웃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대중적 니즈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을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있다”는 소신도 밝혔다.
“한창 대중성을 신경 쓰지 않고 일렉트로닉 음악만 할 때 ‘박기영, 금수저인가 봐. 맨날 하고 싶은 거 해’ 같은 댓글이 달리기도 했어요. (웃음). 그래도 ‘박기영이란 아티스트가 항상 새로운 걸 추구하며 공부를 많이 하는 구나’ 같은 좋은 반응도 많은 편이고, 그런 반응이 새로운 일탈을 꿈꾸게 해주죠. 앞으로 반주 없이 피아노나 기타 하나에만 노래하는 음악도 해보고 싶고, 50살 넘기 전에 진짜 록킹한 음악도 다시 해보고 싶어요. 록 페스티벌 한번 쫙 쓸고 은퇴해야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