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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배우가 되려면 연극영화과에 입학해 방송국 공채탤런트 시험에 응시해 합격해야했다. 당시 배우를 꿈꾸는 이들에겐 그렇게 인식돼 있었다. 나 또한 연극학과 입학 후 MBC 공채탤런트를 계기로 연기자의 길로 들어온 케이스다.
방송국만 들어가면 다 된 줄 알았던 그 시절. 공채탤런트가 되고 알았다. 배우의 길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TV에 잠깐이라도 나오려면 얼마나 많은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하는지, 그리고 그 많은 감독님이 날 기억하게 해야 하는지 그때 알았다.
공채탤런트로 2년 동안 좌절, 실패, 부러움이란 단어만 존재했다. 같이 일하고 싶은 감독님은 있었지만, 같이 일해자고 하는 감독님은 많지 않았다. 동경의 대상이자 호흡을 맞춰 보고 싶은 감독님은 ‘별은 내 가슴에’를 연출한 이진석 감독님이다. 당시 최고의 감독님이었다. 연출하는 작품마다 화제의 대상이었다.
공채탤런트가 그렇듯, 행인 역으로 ‘별은 내가슴에’ 촬영장을 찾은 적이 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름도 없는, 짧게 스쳐 지나가는 단역이지만 어떻게든 감독님 눈에 띄고 싶어 안간힘을 썼다.
사람은 다 때가 있다고 한다. 나에겐 그 시기가 늦게 찾아 온 듯하다. 그렇게 눈에 띄고 싶었던 이진석 감독님을 이젠 제작자로 만났다. 어느덧 두 작품이다. JTBC ‘품위있는 그녀’와 SBS ‘맛있는 인생’(2012)을 만든 제작사(JS픽쳐스) 대표님이 이진석 감독님이다. 이제는 ‘대표님’이지만, 내겐 ‘감독님’이란 호칭이 더 익숙하다.
‘품위있는 그녀’를 연출한 김윤철 감독님도 MBC와 인연이 깊다. 당시 전국을 뒤흔들었던 MBC ‘내이름은 김삼순’(2005)을 연출했다. 당시 드라마를 보면서 감독님과 함께 일할 날을 꿈꿨다. 내 자신이 아닌 드라마 속 캐릭터로 보이도록 연기자를 만들어주는 감독님을 말이다.
출산 후 회복이 더뎌 당분간 작품을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할 때 ‘품위있는 그녀’ 출연 제안이 들어왔다. 그것도 김윤철 감독님이다. 고민할 여지도 없었다. 일단 오케이(OK)였다. 감독님과 미팅까지 남은 시간 2주. 살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그토록 일하고 싶었던 감독님과 미팅이었다. 설레고 긴장됐다. 감독님의 첫인상은 부드럽고 인자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확신이 들었다. 촬영장에서 연출가와 배우로 만난 첫 촬영 날을 잊을 수 없다. 믿고 맡겨 주되 감독님은 적당한 선을 찾아 연기하길 원했다. 완벽한 한 신을 위해 수많은 리허설을 거쳐야만 슛을 외쳤다. 덕분에 ‘품위있는 그녀’의 차기옥이란 인물이 탄생할 수 있었다.
△ 배우 유서진은…
1996년 MBC 공채25기 탤런트로 연기를 시작했다. 상명대학교 연극학과를 졸업하고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약했다.최근 SBS ‘시크릿가든’에서 현빈의 첫사랑 역할에 이어 JTBC ‘품위있는 그녀’에 출연해 또 다른 전성기를 맞았다. 유서진이 20년 간의 배우 생활 동안 만난 사람 이야기로 자신의 연기인생에 대해 5회에 걸쳐 시리즈로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