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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일본 택시들은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르죠. 일단 당연히 좌.우가 바뀌어 있구요. 가장 중요한 차이는 뒷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는 점일 겁니다. 기사들이 안에서 레버를 잡아당기면 손 대지 않아도 문이 열립니다. 고장날까 걱정돼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손 대면 별로 안 좋아하는 기사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선수들 대부분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일본으로 워낙 전지훈련을 많이 가기 때문이죠. 신인 티만 좀 벗었다 싶으면 이 정도는 능숙하게(?) 대처를 합니다. 쉬는 날 쇼핑이라도 나가려면 택시는 기본이니까요.
10년 전 쯤 일 입니다. 스프링캠프 취재를 갔다가 LG 선수 인터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부른 뒤(오키나와는 대중교통 수단이 사실상 택시 뿐입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김광삼 선수(99년 입단)와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요. 얼마 후 택시가 도착했습니다. 전 자연스럽게 도어 앞에 서 있었는데요. 김광삼 선수가 웃으며 다가오더니 “아, 이 형님, 사장님 스타일이시네”라더니 문을 손으로 열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사님과 저는 당황했지만 김광삼 선수 얼굴엔 미소만 가득했습니다.
5년차 선수가, 그것도 매년 오키나와로 전지훈련을 오는 LG 선수가 택시 문 열리는 걸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나중에 다시 물었더니, “쉬는 날 딱히 외출해 본 기억이 없다. 잠을 자거나 숙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괜한 것에 힘 빼고 싶지 않았다”는 답이 돌아오더군요. 이 선수, 나중에 대성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김광삼 선수에겐 성공의 시간 보다 좌절의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팔꿈치에 고질적인 부상을 달고 살았습니다. 코칭스태프의 길고 강력한 요청(그는 99년 입단 당시부터 타자 전향을 제의 받았습니다)에 타자로 뛰엇던 탓에 허리 통증까지 그를 괴롭혔습니다.
잘 던지고도 불펜에서 승리를 날리는 경우도 유독 그에게 잦았습니다. 그가 LG 최고의 암흑기 시절 몇 안 남은 선발이었던 탓이었습니다. 결국 아직 10승 한 번 못해 본 16년차 투수가 돼 버렸습니다.
하지만 김광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강한 투수였습니다. 좌절이라는 걸 몰랐기 때문이죠. 그가 알았던 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야구’ 하나 뿐이었습니다.
너무 생각이 많아 사람들은 그에게 늘 “좀 단순해지라”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그 복잡한 생각 또한 모두 ‘야구 생각’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김광삼이 돌아왔습니다. 팔꿈치 수술에서 재기해 또 한 번 선발 투수로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돌아 온 시기는 썩 좋지 못합니다. LG는 다시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데요. 하지만 김광삼 선수 여전히 씩씩하게 공을 던집니다. 잘 던지고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건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 없습니다만….
그럴 때 한 번도 누군가를 원망하는 소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괜찮아요, 다음 기회가 있다는 게 어딘가요.”라며 웃어 넘기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구요.
그가 앞으로 언제까지, 또 어떤 성적을 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게 김광삼은 ‘야구에 진심을 다한 선수’로 남아 있을 거라는 건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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