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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분 더 걸렸지만, 그린재킷의 주인공은 매킬로이였다 [마스터스]

주영로 기자I 2025.04.14 13:56:11

마스터스 연장 끝에 로즈 꺾고 첫 우승
18번홀 퍼트 놓쳐 좌절, 26분 뒤 연장서 이겨 환호
17번 도전 끝에 마침내 그린재킷 입어
우즈 이후 25년 만에 통산 6번째 커리어 그랜드슬램
"꿈이 이루어졌다. 골프인생 가장 힘든 하루"

[오거스타(미국)=이데일리 스타in 주영로 기자]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18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을 그린 주변 벙커에 빠뜨렸다. 벙커에서 친 세 번째 샷을 홀 1.8m에 붙여 마스터스 우승의 기대를 부풀렸다. 그린 주변을 빼곡하게 메운 팬들은 매킬로이의 퍼트를 숨죽여 기다렸다. 그 순간 약 50m 떨어진 공동취재구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디펜딩 챔피언 스코티 셰플러(오른쪽)가 제89회 마스터스를 제패한 로리 매킬로이에게 우승자를 상징하는 그린재킷을 입혀주고 있다. (사진=AFPBBNews)
마스터스에선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는 규정이 있다. 공동취재구역에만 50명에 가까운 취재진이 있었지만, 18번홀에서 펼쳐지는 상황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유일하게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진행요원 주변으로 취재진이 몰렸다. 작은 화면 하나에 수십 명의 시선이 쏠렸다.

함께 경기에 나선 브라이슨 디섐보(미국)가 먼저 퍼트를 끝냈다. 매킬로이보다 남은 거리가 짧았지만, 우승 퍼트가 될 수도 있었기에 배려했다. 이제 남은 건 매킬로이의 파 퍼트였다. 넣으면 처음 마스터스 우승을 차지하고 그토록 바라던 커리어 그랜드 슬램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다. 잠시 뒤 “아~” 하고 탄식이 터졌다. 퍼트가 빠졌음을 직감했다. 72홀 경기로 우승자를 가리지 못해 승부는 연장으로 이어졌다. 현지시간으로 오후 6시 50분이었다.

14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제89회 마스터스(총상금 2100만 달러) 마지막 날 4라운드. 매킬로이는 18번홀에서 파 퍼트를 넣지 못해 생애 첫 마스터스 우승을 확정하지 못했다. 1.8m 퍼트를 놓쳐 10개월 전의 악몽을 떠올렸다. 지난해 US오픈 마지막 날 두 번이나 짧은 퍼트를 놓쳐 10년 만에 메이저 우승 기회를 날린 적이 있다. 16번홀에선 80cm, 18번홀에선 70cm 파 퍼트를 놓쳐 디섐보에게 우승을 내줬다.

로리 매킬로이가 정규라운드 18번홀에서 1.8m 파 퍼트를 놓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AFPBBNews)
마스터스에서도 악몽이 재현되는 듯했다. 정규라운드를 끝내고 클럽하우스로 향하는 매킬로이는 그린 옆에서 기다리던 딸 포피와 아내에게 입을 맞추고 발길을 옮겼다. 주변에 모인 팬은 “로리”를 연호했다. 매킬로이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팬들이 손을 내밀었지만, 눈길조차 돌리지 않았다. 깊이 생각에 잠긴 듯해 보이기도 했고, 마치 넋이 나간 사람 같기도 했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팬들 사이를 걷기만 했다.

잠시 뒤 매킬로이와 로즈가 18번홀 티잉 그라운드에 다시 섰다. 기다리던 매킬로이가 로즈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매킬로이는 캐디와도 손을 마주 잡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로즈 그리고 매킬로이 순서로 티샷했다. 둘 다 페어웨이에 떨어졌다. 로즈가 먼저 쳐서 공을 쳤다. 홀 뒤쪽 3m 지점에 붙었다.

매킬로이는 집중했다. 여러 번 연습 스윙한 뒤 가볍게 클럽을 휘둘렀다. 아주 잘 맞았고 홀 뒤에 떨어진 공은 경사를 탔다. 굴러서 홀에 가까이 갈수록 함성이 더 커졌다. 남은 거리는 1.2m로 정규라운드 때 실수했던 거리보다 조금 더 가까웠다.

로즈는 그린에 올라 공과 홀 사이를 여러 번 오가며 경사를 살폈다. 신중하게 공을 내려놓고 퍼터를 들어 조준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나 마지막으로 경사를 확인하고 나서야 공을 굴렸다. 홀 오른쪽으로 빗나가고 말았다.

매킬로이는 표정의 변화 없이 로즈의 퍼트를 바라봤다. 로즈는 파 퍼트를 먼저 끝냈다.

매킬로이는 생애 첫 마스터스 우승과 커리어 그랜드 슬램 달성까지 1.2m를 남겼다. 신중하게 공 앞에 다가섰고, 실수 없이 버디 퍼트를 넣었다. 환호가 터졌고, 36세의 북아일랜드 청년은 17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마스터스 우승자만 입을 수 있는 그린재킷의 주인공이 됐다. 그리고 남자 골프 역사상 진 사라젠, 벤 호건, 게리 플레이어,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에 이어 6번째 커리어 그랜드 슬램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오후 7시 16분이었다. 정규라운드 18번홀에서 우승을 확정하지 못했던 매킬로이는 26분 뒤에 기어코 마스터스의 새로운 주인공이 됐다.

매킬로이는 2014년 디오픈 제패 이후 10번의 도전에서 실패를 맛봤다. 11번 도전에서 드디어 마스터스 우승과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동시에 이뤘다. 감격한 매킬로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캐디를 끌어안았고, 로즈도 매킬로이의 우승을 축하했다. 그린을 빠져나온 매킬로이는 아내와 입을 맞춘 뒤 딸 포피를 안았다. 셋은 함께 클럽하우스를 향해 걸었다. 마스터스 챔피언에게만 허락되는 우승 행진이다. 앞서 정규라운드 18번홀에서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같은 길을 걸을 때와는 표정이 달랐다. 상기됐고, 연신 눈물을 훔쳤다. 팬들은 더 크게 환호했고, 역사의 순간에 함께 있음을 즐겼다.

로리 매킬로이가 1차 연장에서 버디를 기록하며 우승을 확정하자 흐느끼고 있다. (사진=AFPBBnews)
우승 뒤 매킬로이는 “꿈이 이루어졌다”며 “그러나 그린재킷을 입기까지 알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었고 쉽지 않았다. 오늘은 내가 골프코스에서 보낸 가장 힘든 날 중 하루였다”고 길었던 승부의 순간을 돌아봤다. 그러면서 “마지막 순간 흘린 눈물은 적어도 11년 동안 억눌렀던 감정이었다”며 “2014년 8월 이후 (커리어 그랜드 슬램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왔다. 그 꿈을 이루고 위해 노력했다. 이제는 자유로워졌다”고 커리어 그랜드 슬램 달성의 길이 그에겐 큰 짐이었다고 털어놨다.

매킬로이의 이름 앞에는 두 가지 수식어가 붙었다. 마스터스 챔피언 그리고 커리어 그랜드 슬래머라는 타이틀이 생겼다.

매킬로이는 “정말 영광스럽고 감격스럽고, 나 자신을 마스터스 챔피언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며 “이 순간으로 그 모든 세월과 모든 아슬아슬한 순간을 가치 있게 만들었다”고 기뻐했다.

로리 매킬로이가 18번홀에서 펼쳐진 1차 연장에서 버디를 넣어 우승이 확정되자 주저 앉아 울고 있다. (사진=AFPBBNews)
로리 매킬로이가 14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89회 마스터스에서 저스틴 로즈를 연장 끝에 물리치고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생애 처음 마스터스를 제패한 매킬로이는 4대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해 남자 골프 역사상 6번째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사진=AFPBB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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