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전쟁'→'길위에 김대중'… 총선 앞두고 정치 다큐 붐

김보영 기자I 2024.02.14 13:23:10

'건국전쟁' 전체 2위로 껑충…尹 대통령도 언급 화제
'길위에 김대중' 손익분기점 돌파…해외 상영 릴레이
유지태→나얼…연예계 각각 지원사격·소신 관람
"높은 현대사 관심 한몫…극장에서도 정치 양극화"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전직 대통령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정치 다큐멘터리 영화가 극장가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업적을 다룬 영화 ‘건국전쟁’(감독 김덕영)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의 궤적을 조명한 ‘길위에 김대중’(감독 민환기)이 대표적이다. 정치권과 지지세력들을 중심으로 오는 4월 총선 선거철을 앞두고 여권과 야권을 각각 결집할 문화적 구심력으로 두 영화의 관람을 독려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의 한 영화관에서 ‘건국전쟁’을 관람한 모습.(사진=연합뉴스)
◇이승만 다큐 ‘건국전쟁’ 2위 껑충…尹도 언급

영화 ‘건국전쟁’은 지난 연휴를 겨냥해 개봉한 쟁쟁한 신작들을 제치고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14일 오전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건국전쟁’은 전날 하루동안 5만 2217명을 동원하며 전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라섰다. 전체 1위인 ‘웡카’(감독 폴 킹)를 제외한 한국영화 기준으로는 박스오피스 1위다. 누적 관객 수는 38만 2160명으로, 15일께 40만 관객 돌파가 확실시되고 있다.

지난 1일 개봉한 ‘건국전쟁’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국내외 연구자들의 증언과 사료를 바탕으로 그간 일부에 의해 독재자, 기회주의자로 폄훼됐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재조명, 재평가해 주목받고 있다. 2021년부터 김덕영 감독이 약 3년에 걸쳐 만든 작품으로 알려졌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영상과 사진, 그의 주변 인물들, 국내외 정치 역사 전문가들의 인터뷰 등이 담겨 있다. 영화는 제도 교육이 알려주지 못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숨겨진 업적과 노고를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특히 김 감독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직접 입수해 1954년 이 대통령이 뉴욕 맨해튼 ‘영웅의 거리’에서 카퍼레이드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이 영화에서 최초 공개돼 눈길을 끈다.

‘건국전쟁’은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이어진 설 연휴 동안 23만 5956명을 극장에 불렀다. 폭발적 성원에 힘입어 이달 말 미국 CGV에서도 정식 개봉한다.

특히 여권 정치인과 지지세력들을 중심으로 관람 독려가 이어지고 있다. 13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연휴 중 참모들에게 ‘건국전쟁’을 언급하며 “역사를 올바르게 알 수 있는 기회”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식, 박수영 의원은 직접 ‘건국전쟁’ 후기를 남기며 관람을 장려했고, 연휴 마지막 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극장을 방문해 이 영화를 관람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승만이란 이름은 알아도 그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한 젊은 관객들의 역사적 호기심도 자극하고 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따르면 ‘건국전쟁’의 평점은 9.8점으로 만점에 가깝다. CGV에그지수도 92%로 상위권이다.

최근 사비로 티켓을 구매해 팬 100명과 ‘길위에 김대중’을 관람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한 배우 유지태.
◇김대중의 민주주의 유산…해외 상영 릴레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린 ‘길위에 김대중’은 지난달 10일 개봉했다. 장기 흥행에 성공해 손익분기점인 누적 12만명을 최근 넘어섰다. ‘길위에 김대중’은 청년 사업가 출신의 김대중이 갖은 고초를 겪으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1987년 대선 후보로 나서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 자료와 최초 공개 자료, 역사적 순간을 함께한 이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를 향한 필사의 발걸음과 삶의 궤적을 그리워하는 중장년층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평가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고 이에 공감한 2030 관객층을 극장으로 이끌고 있다. 특히 ‘길위에 김대중’은 관람을 희망하는 재외동포들이 많아 오는 16일 미국에서 정식 개봉하는 한편, 37개 해외 도시의 상영을 확정했다. 네이버 포털 평점 9.71점으로 실관객들의 만족도도 높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달 경남 양산의 한 영화관에서 아내 김정숙 여사와 함께 ‘길위에 김대중’을 관람해 화제를 모았다. 영화 관람 후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살아계셨다면 아마 똑같이 지금의 민주주의, 민생경제, 남북관계 3대 위기를 통탄하며 우리에게 행동하는 양심이 돼 달라고 신신당부하셨을 것 같다”고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개최한 시사회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나란히 참석했다.

두 영화를 향한 연예계의 지원사격 및 소신 관람도 이어져 눈길을 끈다. 배우 유지태는 최근 자신이 따로 진행 중인 ‘독립영화 보기’ 프로젝트의 22번째 작품으로 ‘길위에 김대중’을 선정했다. 유지태는 자비로 독립영화 상영관 100석을 사전 구매, 팬들 100명을 초대해 ‘길위에 김대중’을 함께 관람하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배우 장현성은 ‘길위에 김대중’의 내레이션에 참여했다. 가수 나얼은 자신의 SNS에 ‘건국전쟁’의 포스터와 함께 후기로 추정되는 게시글을 남겨 눈길을 끌었다. 가수 강원래는 가족들과 함께 ‘건국전쟁’을 보러 갔다가 휠체어를 탄 몸으로 상영관까지 계단을 오를 수 없어 관람을 포기한 일화를 알리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두 작품의 이례적 흥행이 총선을 앞두고 포착되는 정치 양극화가 문화에서도 이어지는 움직임이란 분석이다. 새해에 접어들며 극장을 찾는 전체 일일 관객수가 하락하고, 연휴를 겨냥해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도 한몫한다고도 부연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앞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서울의 봄’의 흥행은 현대사를 향한 국민적 관심이 이렇게나 높다는 것을 입증한 대목이었다”며 “‘건국전쟁’ 및 ‘길위에 김대중’의 흥행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이승만, 김대중이란 이름은 알지만, 자세히는 잘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파악해보고 싶은 지적 욕구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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