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SPN 송지훈 기자] '백전노장' 이운재(수원삼성)가 '실세' 정성룡(성남일화)과의 맞대결에서 또 한 번 분루를 삼켰다.
남아공월드컵 본선 개막 직전 한국축구대표팀의 최후방 수문장 자리를 놓고 치열한 주전경쟁을 벌인 바 있는 신-구 '넘버원 골리'가 AFC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재회했다.
이운재와 정성룡은 15일 오후7시30분 성남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성남(감독 신태용)과 수원(감독 윤성효)의 맞대결에 나란히 선발 출장해 90분간 맞대결을 펼쳤다.
특히나 이운재에게 감회가 남다른 무대였다. 월드컵 본선 이후 꾸준히 선발 출장 중인 정성룡과 달리 소속팀에서 후배 하강진에게 주전 자리를 넘겨준 채 백업 역할에 머물러왔던 까닭이다.
지난 7월28일 열린 FC서울과의 포스코컵 준결승전(2-4패) 이후 49일만에 잡은 선발 출장기회이자 AFC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권을 놓고 벌이는 중요한 일전이라 의미는 더욱 컸다.
◇또 한 번 고개 숙인 이운재
관심을 모은 맞대결 결과는 후배 정성룡의 완승으로 끝났다. '왼발의 달인' 염기훈(수원)에게 프리킥으로 한 골을 허용한 정성룡과 달리 이운재는 4실점을 허용하며 무너져내렸다.
전반에 라돈치치와 몰리나에게 각각 한 골씩을 허용했고, 후반에도 라돈치치에게 한 골을 더 내줬다. 이후 수원수비수 양상민의 자책골까지 나와 스코어가 1-4로 벌어졌다. 모처럼 선발 출장 기회를 잡은 이운재는 종료 휘슬이 울린 뒤 고개를 숙인 채 쓸쓸히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이운재의 입장에서는 남아공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후배 정성룡에게 주전 장갑을 내주며 벤치 멤버 역할로 내려앉은 설움을 풀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오는 22일 열리는 2차전 출장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경기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성효 수원 감독은 "이운재가 그동안 운동을 많이 해 컨디션이 올라왔을 뿐만 아니라 풍부한 경험도 갖춰 선발로 기용했던 것"이라며 대량 실점에 대한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이어 "첫 실점 장면은 다소 아쉬웠지만, 이후에 내준 골들은 골키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본다"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골키퍼 빅딜설'의 충격
두 선수의 희비 교차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두 선수의 이름이 포함된 '골키퍼 빅딜설'이 흘러나왔다. 성남-수원 경기 당일 경기장을 찾은 모 에이전트의 발언이 발단이 됐다.
은퇴를 앞둔 이운재를 대신해 수원이 정성룡을 후계자로 낙점했다는 이야기가 골자다. 이미 수원과 성남 양 구단이 이적료 20억원 선에서 정성룡의 빅딜에 합의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아울러 정성룡에게 '넘버1' 자리를 내줄 이운재가 올해 말 상무에 입대하는 권순태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전북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곁들여졌다.
거론된 구단들이 하나 같이 '사실무근'이라며 발끈하고 있어 진위 여부를 확인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진실 여부를 떠나 이운재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 밖에 없는 뉴스다. 소문 속에 등장하는 이운재는 '물러나야 하는 선수'고 '군대 가는 후배의 대체재'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뜻으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도 언젠가는 '내리막'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때 한국축구 최고의 거미손으로 명성을 떨치던 이운재에게 근래 들어 가장 가슴에 와닿는 표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