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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광복절인 8월 15일. 지구 반대편에 있던 한 사나이가 태극기를 휘날렸다. 그런데 태극기와 함께 등장하는 주인공은 특이하게도 흑인 젊은이였다. 자세히 보니 검은 피부에 동양인의 인상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의 팔과 몸에는 '전사', '힘', '명예'라는 한글 문신이 뚜렷히 새겨져있었다. 바로 한국계 흑인 혼혈 파이터 벤 헨더슨(27.미국)이다.
헨더슨은 15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위스콘신 브래들리센터에서 열린 미국 종합격투기 대회 'UFC LIVE 5' 라이트급 경기에서 짐 밀러(27.미국)를 3라운드 내내 몰아붙인 끝에 심판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다.지난 4월 UFC 데뷔전 승리 이후 2연승.
경기 전에는 헨더슨이 이기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상대가 UFC 7연승의 강자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헨더슨은 강력한 체력과 파워로 밀러를 압도했고 완벽한 승리를 일궈냈다.
경기도 경기였지만 헨더슨의 일거수일투족이 감동적이었다.헨더슨은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입장해 자신의 뿌리가 한국임을 당당히 알렸다.뿐만 아니라 승리 후 인터뷰 때는 또박또박한 한국말로 "한국팬들 많이많이 사랑해요"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헨더슨은 콜로라도스프링스에서 한국인 어머니 김성화 씨와 주한미군 출신의 흑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다.어린 시절 태권도를 배웠고 학창시절에는 엘리트 레슬링 선수로 인정을 받았다. 대학시절에는 레슬링 대회에서 우승하면 한글문신을 새겨도 좋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투지를 불태워 우승컵을 들어올린 적도 있다고 한다.
격투기 선수로 본격 전향한 뒤에도 헨더슨의 한국 사랑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트위터 등을 통해 한국팬들과도 꾸준히 소통하는가 하면 “한국에서 대회가 열리면 무조건 출전시켜 달라”고 UFC측을 조르기도 했다.
헨더슨은 외모 뿐만 아니라 정신도 동양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밀러를 꺾은 뒤 “어려운 환경에서 훈련하는 젊은 후배들 가운데 강한 선수들이 있다.이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라고 할 만큼 동료애와 정이 넘친다.
이제 UFC 2연승을 거둔 헨더슨은 아직 챔피언에 도전하기에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헨더슨이 속한 라이트급은 UFC내에서도 가장 강자들이 많고 경쟁도 심한 체급이다.
헨더슨은 뛰어난 레슬링 실력과 운동능력을 자랑한다. 특히 '스무스(smooth)'라는 별명 처럼 유연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타격 방어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약점. WEC에서 타이틀을 뺏길 때도 5라운드 종료 직전 플라잉 니킥을 허용하는 바람에 다 잡았던 경기를 놓친 바 있다.
하지만 헨더슨의 지금 기세는 무섭다. 최근 상승세를 잘 이어간다면 한국계 파이터 최초의 UFC 챔피언의 탄생도 기대해볼만 하다. 그동안 김동현 등 한국인 파이터는 물론 추성훈, 데니스 강 등 한국의 피가 흐르는 선수들이 UFC에 계속 도전하고 있지만 타이틀과는 아직 거리가 먼 상황이다.
현지 전문가들도 헨더슨이 실력 면에서 충분히 챔피언에 도전할 자격이 있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한국계 미식축구 스타 하인스 워드가 슈퍼보울 MVP를 차지했던 것처럼 헨더슨이 세계 최고의 격투무대인 UFC를 정복할 날도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