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결산: 신인류 2.0이 온다①] 달라진 한(恨)의 정서

정철우 기자I 2008.08.25 12:08:17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지난 17일간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졌던 2008 베이징 올림픽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한국은 역대 최다 금메달(13개) 획득과 함께 종합 7위를 차지하는 소중한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성적이 모든 것이 아니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져도 즐겁고 이기면 더 좋은 신명나는 축제를 만날 수 있었다.

변화의 중심에는 우리 선수들이 있었다. 그들은 승패와 관계없이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눈물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서러워 울기보단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듯 보였다.

그들은 분명 이전 세대와 달랐다. 웃고 즐기면서도 강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꼭 1등이 아니어도 최선을 다했다면 울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려줬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더 밝고 건강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앞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의 전형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들을 '신인류 2.0'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데일리 SPN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확인한 ‘신인류 2.0’을 시리즈로 집중 조명한다.

1.달라진 한(恨)의 정서

"한(恨)을 한때는 퇴영적인 국민정서라 했거든요. 그런데 그것은 해석을 잘못한 거예요. 일본은 한을 '우라미'라고 하는데 우라미는 원망이에요. 원망이 뭐냐, 복수로 가는 거예요. 일본의 원망이나 복수가 일본 예술 전반에 피비린내로써 나타나는 겁니다.복수고, 그게 어디로 가냐면 일본의 군국주의로 가요.

우리의 한(恨)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시지만, 내가 너무 없는 것이 한이 되어서... 말하자면, 내가 뼈가 빠지게 일해서 땅을 샀다. 내가 무식한 것이, 낫 놓고 기역자 모르는 것이 너무나 한이 되어서 내 자식은 공부시켰다. '미래지향'이거든요. 소망이거든요. 이게 절대로 퇴영적인, 부정적인 정서가 아닙니다."

지난 5월 작고한 박경리 선생이 정의한 '한의 정서'다. 그동안 우리가 생각했던 한은 과거를 향해 있었다. 과거에 내게 해를 입힌 누군가에 대한 복수. 그 복수는 처절할수록 더욱 큰 기쁨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진정한 한은 미래를 향한 것이었다. 지금의 모자람을 채워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이 지닌 진짜 한이었던 것이다.
▲ 논란이 된 여자핸드볼 4강전 노르웨이 득점 장면 [화면 캡쳐]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영화로 우리에게 한층 더 가깝게 다가온 여자 핸드볼. 그들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이전같으면 동메달 뒤에 '그쳤다'라고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당당하게 동메달을 따냈다.

노르웨이와 준결승전서 한국 여자 핸드볼은 또 한번의 편파판정에 울어야 했다. 경기 종료 버저가 울린 뒤 골문을 통과한 공이 골로 인정되며 1점차로 패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더욱 허탈했다. 한국 여자 핸드볼은 예선만 3번을 치른 뒤에야 베이징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가진 힘이 부족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결과다.

그 뿐 아니다. 매번 올림픽이 열릴때마다 불리한 판정에 울어야 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더욱 견제가 심해지며 고비마다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매번 서럽게 울기만 하던 그들이었다. 이번에도 눈물을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눈물 속엔 '해냈다'는 성취감이 담겨 있었다.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렸고 그 결실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가 금빛은 아니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3,4위 결정전 마지막 1분. 지난 20년간 올림픽을 누빈 아줌마들을 위한 무대가 마련됐다. 그들의 뒤에선 이제 막 스무살을 넘긴 후배들이 박수 치고 있었다.

늘 승자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웠던 선배들을 향한 축하의 메시지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동메달도 승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전까진 지면 끝이라 생각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또 4년간 소외와 무관심 속에 내쳐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고 그들의 마음도 달라졌다. 당당하게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족함을 알게 된 것이다.

남자 역도 69kg급의 이배영은 아무 메달도 따내지 못했다. 바벨을 들다 다리 근육 경련이 생긴 탓에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올림픽에서 이배영은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러나 그는 환하게 웃었다. 대표선수로만 10년째. 그의 최고 성적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은메달이었다. 미치도록 아쉽고 답답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역도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삶에 후회가 없다고 했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다. 왜 그동안은 관심을 주지 않았느냐고 서러워하지도 않았다.

이제 역도를 마치면 그는 다시 허허 벌판으로 나서야 한다. 미래에 대한 장밋빛 보장도, 성공에 대한 확신도 아직은 없다.

그래도 이배영은 웃었다. 최선을 다한 삶은 결과가 그리 중요치 않다며 밝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우린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의 미소 속에서 나아진 내일에 대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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