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 세계를 배경으로 한 ‘신과 함께’ 시리즈로 한국형 판타지, 프랜차이즈 영화의 가능성을 입증했던 김용화 감독. ‘신과 함께’로 쌍천만 감독에 등극한 그가 5년 만에 광활한 우주의 스케일을 담은 SF 대작 ‘더 문’의 개봉을 앞두고 아내에게 들었다는 반응이다.
김용화 감독은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더 문’의 개봉을 앞두고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2003년 영화 ‘오, 브라더스!’로 데뷔해 현업에 몸담은 지 20년. 김용화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줄곧 ‘모험’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그 모험들이 한국 영화 발전의 중요한 전환이 된 역사적 바로미터로 인정받고 있지만, 누구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사람의 어깨는 늘 무거운 법이다. 제작비 300억을 들여 한국 영화 최초 100% CG의 고릴라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흥행엔 참패했던 아픈 손가락 ‘미스터 고’(2013), 우리 기술을 총동원해 미지의 ‘저승’을 구현한 한국형 판타지 ‘신과함께’ 시리즈까지. 쌍천만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는 ‘미스터 고’의 도전과 실패를 딛고 탄생했다. 혹자는 토종 VFX 기술이 단기간에 할리우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에 오르기까지 김용화 감독의 작품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도 이야기한다.
5년 만의 신작 ‘더 문’ 역시 기술, 비용 면에서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VFX 기술에 국내 최초 버추얼 스튜디오 촬영 방식까지 도입,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우주의 스케일을 구현하기 위해 제작비 280억 원을 투입했다. 할리우드 제작비와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국내 영화 산업 기준으론 손에 꼽을 ‘대작’이다.
8월 개봉을 앞둔 ‘더 문’은 사고로 인해 홀로 달에 고립된 우주 대원 선우(도경수 분)와 필사적으로 그를 구하려는 전 우주센터장 재국(설경구 분)의 사투를 그린 영화다.
김용화 감독은 5년 만의 컴백 소감을 묻자 “나이가 들어서도 감독을 시켜주니 행복하다”며 “어느덧 20년이나 흘러서인지 함께했던 주변의 감독들이 지금은 다 안 계시더라. 세대 교체 시기임을 느낀다. 좋은 후배들이 많이 나와 한국 영화를 발전시켜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창작자들은 늘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도전 정신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곤 한다. ‘더 문’도 그런 고민을 거쳐 어렵게 탄생한 작품이다. 김용화 감독은 “우주가 배경인 SF 장르는 아무래도 대중에게 ‘할리우드 전유물’이란 인식이 팽배했던 게 사실”이라며 “그걸 나 역시 알고 있었다. 다만 여기서 결심을 더 늦추면 우리 영화계는 앞으로도 영원히 그 장르를 멀리서 쳐다보기만 하는 데 그칠 것이라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신과함께’를 많은 분들이 제가 만든 결과물 이상으로 너무 좋게 평가해주셨다”며 “여기서 내가 과거에 잘했던 걸 더 열심히 살릴지, 새로운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내놓을지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천문연구원 박사의 특강을 접한 게 계기가 돼 ‘더 문’의 스토리 라인을 짰다고 했다. 김용화 감독은 “우주를 관찰하시는 분인데 그 박사님이 한 학생에게 ‘지구에서 벌어지는 스트레스나 인간적 갈등은 어떻게 해소하시냐’는 질문을 받고 답변한 내용이 마음을 크게 울렸다”며 “연구원 근처 산에 올라 별을 관찰하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인간 관계에서 겪는 갈등과 오해, 자신의 존재가 굉장히 미진함을 깨닫는다고 하셨다. 그 때 느끼는 감정이 굉장히 숭고하다고 하시더라”고 말했다. 좁은 지구가 아닌 넓은 우주로 시야를 넓혀 우리의 존재를 들여다보면 이 세상을 더 가치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도 덧붙였다.
그 중에서도 ‘달’을 배경으로 택한 이유에 대해선 “달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별”이라며 “무엇보다 달의 앞, 뒷면이 주는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 우리가 가까이서 보는 건 오로지 달의 앞면이고, 지금까지 달의 뒷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소재로 다룬 작품도 잘 없었다. 달 뒷면이 주는 칠흑같은 어둠이 영화에서 공포와 스릴, 아이러니를 줄 수 있는 공간이 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극 중 유성우가 쏟아지며 발생하는 액션 장면, 달 표면의 질감, 폭발 신 등 주요 장면들이 고증에 어긋나지 않게 천문연과 NASA 등 관계기관의 자문도 꼼꼼히 거쳤다. 김용화 감독은 “자문을 받기 전 충분히 따로 공부를 해두기도 했다. 그 분들이 제 시나리오를 보시더니 ‘좋다, 우리들도 이 시나리오의 결과물을 실제로 보고 싶다’며 정말 많은 응원을 주셨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럼에도 예산이 할리우드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만큼 심혈을 기울여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쳤다고도 강조했다. 김용화 감독은 “이런 우주 영화들은 할리우드의 경우, 대부분의 장면 비중이 VFX 위주로 쏠린다. VFX의 비중이 거의 50% 수준”이라며 “반면 우리는 VFX 비용에 들인 비용이 61억 원 정도였다. 한국 영화 시장을 감안했을 때 그 이상을 쓰는 건 무리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샷 수를 최대한 줄이고 남아있는 샷에서 최대한 완성도를 구현했다. 줄여서 남은 샷들의 화질을 4K로 최대한 올리는 방식으로 승부수를 뒀다”고 부연했다.
배경과 기술이 주는 체험적 감동을 해치지 않기 위해 불필요한 캐릭터들의 관계성을 최대한 덜어내고, 지나치게 감정적인 장면들도 최대한 내려놨다.
그럼에도 ‘신파’란 지적을 들으면서까지 ‘휴머니즘’을 포기할 수 없던 건 ‘위로’의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였다고 그는 말했다. 김용화 감독은 “나를 포함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은 위로를 받아야 할 존재”라며 “승리하고 행복한 사연들보다 부조리하고 원통한 사연들을 훨씬 많이 접한다. 지금 이 순간도 말도 안되는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만큼 영화가 사람들을 위로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다만 그동안 늘 앞장서 도전에 나서왔던 그조차 최근엔 ‘도전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 드는 순간이 많다고도 토로했다. 김용화 감독은 “개봉을 앞두고 예민해진 제 모습을 관찰하던 아내가 ‘도전은 그만하라’며 잔소리를 한다”며 “사실 나도 좋은 시나리오만 있다면 가벼운 로맨스나 ‘스타 이즈 본’, ‘라라랜드’ 같은 절절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하지만 살다보니 인생의 좌표가 여기까지 흘러왔다”고 푸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내 스스로에게 ‘어떤 게 올바른 인생의 태도’일지 반문하게 된다”며 “아내만 그러는 게 아니고 수많은 내 안의 자아들도 내게 말하는 기분이다. ‘한 두 번 정도는 편하게 가는 것도 괜찮지 않냐’고. 많은 고민이 드는 시기”라고 고백했다.
다만 전작으로 쌓은 명성과 기대치가 본인에게 부담으로 다가오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고도 언급했다. 김용화 감독은 “‘더 문’ 블라인드 시사 때 설문조사를 해보니 응답자 두 명 중 한 명은 내 이름은 안다고 하시더라”며 “굉장히 높은 비율이지만, 그렇다 해도 세상 사람들이 전부 나만 쳐다보진 않는다. 그런 부담에서 벗어난 지는 이미 오래고, 지금은 단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 그 뿐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제서야 말하지만 원래의 나는 사실 판타지를 별로 안 좋아했다”며 “‘신과함께’란 작품을 만나 그런 이미지로 알려졌을 뿐.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다”고 덧붙여 폭소를 유발했다.
한편 ‘더 문’은 8월 2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