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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송지훈기자] "선수들을 많이 바꿔가며 테스트를 할 시점은 이제 지났다고 생각한다. 본선 무대에서 뛸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선수가 더 나와줘야겠지만, 그것 못지 않게 팀 내 조직력을 극대화시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허정무 감독, 7월6일 기자회견)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 준비에 들어간 허정무 한국축구대표팀 감독(54)이 뉴 페이스 발탁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면서 축구계가 술렁이고 있다. 대표팀 사령탑의 판단에 대해 지도자들과 선수들, 팬들, 축구 관계자들이 찬성과 반대 입장으로 나뉘어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이동국(전북), 최성국(광주), 안정환(다롄스더), 조재진(감바오사카), 이천수(페예노르트) 등 이른 바 '올드보이'로 분류되는 선수들의 A팀 재승선 여부가 핫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 허정무 감독의 의중은
대표팀 운용에 대한 허 감독의 계획은 명확하다. 외부 선수들의 기량이 기존 대표팀 멤버들과 비교해 월등히 뛰어나지 않을 경우 조직력을 감안해 현재의 구성을 가급적 흔들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월드컵 최종예선을 순조롭게 통과하며 7회 연속 본선행을 이뤄낸 현 멤버들의 자존심과 자신감을 존중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최근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K리그 구단들을 순회하며 협조를 요청하기로 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과거 허정무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 취임 직후 한 차례 'K리그 투어'를 실시한 예가 있다. 당시엔 월드컵 3차예선을 앞두고 구단들에게 다수의 멤버들을 차출해 적극적으로 테스트에 나설 뜻을 밝히고 양해를 구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이번엔 취지가 다르다. '많이 뽑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존 대표팀 멤버들에 대해 '차출 기간을 연장해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한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대표팀의 조직력 극대화를 염두에 둔 결정이다.
◇ 논란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일단 허정무 감독의 견해 자체는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축구강국들과 견줘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한국에게 '조직력'은 사실상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경쟁력이다. 2002월드컵을 앞두고 장기간의 합숙과 전지훈련을 실시하며 팀워크를 다진 히딩크호가 4강 위업을 이뤄낸 것이 좋은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팀 운용 방식과 관련해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 건, 근래 들어 '올드보이'들이 하나 같이 물 오른 기량을 선보인다는 데 원인이 있다. 이적 파문에 휩싸인 이천수의 경우는 예외로 하더라도, 나머지 선수들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이동국은 갓 반환점을 돈 2009 K리그에서 12경기에 출전해 11골을 쏟아내며 득점 1위를 질주 중이다. 경기 당 0.92골에 해당하는 준수한 기록으로, 해트트릭도 벌써 두 차례나 달성했다. 14경기에서 10개의 공격포인트(7골3도움)를 쌓아 올린 최성국, 올 시즌 J리그 무대에서 7골을 폭발시키며 득점랭킹 상위권을 유지 중인 조재진 등도 돋보인다. 중국슈퍼리그에서 뛰고 있는 안정환 또한 13경기서 5골2도움을 기록하며 준수한 발자취를 남겼다. 이는 소속팀 내 최다득점이자 리그 득점 3위에 해당한다.
게다가 이들은 현 대표팀 주전급 멤버들의 약점으로 지적받는 '경험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베테랑들이기도 하다. '올드보이'들은 나이와 상관 없이 다양한 국제대회를 거치며 충분한 경험을 쌓은 인물들인 만큼 이 부분의 경쟁력을 무시할 수 없다.
◇ 올드보이스의 향후 거취는
허정무 감독이 향후 대표팀 운용 방침을 급격히 변경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을 뿐만 아니라 현재 팀 내에 우려할 만한 위험요소도 눈에 띄지 않는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선수를 선택하고 그에 맞는 전술을 마련하는 것은 감독에게 주어진 고유권한이다. 현격한 오류가 드러나지 않는 한 감독의 판단은 존중받아야하며 평가는 오직 결과를 통해서만 이뤄져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동국을 위시한 '올드보이'들이 당장 대표팀의 부름을 받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령탑' 허 감독이 가능한 한 기존 선수단의 틀을 유지하길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새 얼굴 발탁에 대한 허 감독의 판단 기준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6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제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선수 ▲팀에 확실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 ▲헌신적이고 투쟁적으로 뛸 선수 등 3가지 요건을 충족시키는 경우에 한해 기회를 주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올드보이'들이 남아공월드컵 무대에 나서기 위한 해법 또한 이 속에 담겨 있다. 소속팀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해 경쟁력을 입증하는 한편, 매 경기 적극적이고 성실한 플레이를 선보여야 한다. 혹여 대표팀의 부름을 받게 된다면 팀 분위기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주도해야 한다. 베테랑들의 가세가 전력과 팀워크에 플러스 요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감독에게 입증해 보일 필요가 있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