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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은메달을 수확한 봅슬레이 4인승 대표팀. 기적과도 같은 성과를 일궈냈음에도 이들은 활짝 웃지 못했다. 오히려 올림픽 이후에 찾아온 차가운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봅슬레이 4인승 대표팀 기자회견은 영광의 소감 대신 현재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이 처한 안타까운 상황을 호소하는 자리가 됐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를 수확한 한국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은 올림픽을 마친 뒤 당장 훈련할 곳이 없는 상황이다. 올림픽을 위해 지어진 슬라이딩 센터를 더이상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슬라이딩 센터는 올림픽 이후 예산이 책정되지 않은 상태다. 관리 주체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당연히 코스도 유지될 수 없다. 얼음을 얼리기 위한 암모니아 냉각수도 빼고 있다.
한국에도 전용 경기장이 생겨 기대감이 가득했던 선수들도 이런 상황이 답답할 뿐이다. 올림픽은 끝났지만 아직 시즌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적어도 3, 4월까지만이라도 코스를 유지한다면 훈련을 이어갈 수 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용 총감독은 “슬라이딩 센터가 간신히 생겼는데, 올림픽 후 그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고 하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수천억을 들여서 경기장을 세운 만큼 선수들이 훈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평창이 끝이 아니라, 세계선수권과 더 나아가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있다. 정말 열심히 해서 이 메달을 국가에 헌납한 만큼, 정부도 선수들을 위한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봅슬레이 4인승 대표팀의 브레이크맨을 맡은 김동현은 “지난 10년 동안 운동을 하면서 이제 희망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시 경기장 없어진다고 하니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다”며 “시대를 역주행하는 것 같아 아쉽다. 같이 발전하는 방안을 만든다면 더 열심히 운동할수 있을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봅슬레이·스켈레톤의 근간인 상비군도 운영이 중단됐다. 대한체육회에서 등록 선수가 적기 때문에 상비군을 운영할 수 없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예산 부족이다.
상비군은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을 돕고 같이 연습하는 파트너다. 2016년부터 정부 예산을 받아 선수 15명과 지도자 4명으로 상비군이 운영됐다.
고교와 대학에 재학 중인 어린 유망주들로 구성된 상비군은 국가대표와 똑같이 훈련하면서 대표팀을 지원한다. 코스나 장비를 미리 점검하고 대표팀 훈련을 보조하는 것도 상비군의 몫이다.
중·고등학교나 대학·실업팀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한국 봅슬레이·스켈레톤의 현실에서 상비군 제도가 없다면 어린 유망주들이 운동할 기회는 없다. 당장 상비군이 사라지만 국가대표 훈련에도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용 총감독은 “(상비군 선수들과)같이 한마음 한뜻으로 훈련하고 지금까지 왔는데 예산 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해산시켰다”며 “평창 올림픽이 끝이 아니다. 4년 뒤 베이징올림픽 또한 제2의 평창으로 도약할 기회다. 우리 선수들이 고생한 만큼 정부에서 예산 부분에서 좀 더 디테일한 계획을 세웠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이어 “유소년, 상비군 선수들을 활용하지 못한다면 스켈레톤, 봅슬레이의 미래는 불투명하다”며 “올림픽 끝나고 관심이 짧으면 한 달, 길면 두 달이다. 그 이후 관심을 덜 받게 되고 4년의 올림픽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 속에 해결 방안은 없고 고통을 받을 게 분명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용 총감독은 “우리가 소리치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후배들이 4년간 고통스럽게 배고픔을 안고 가야 하고 그 길이 너무 험난하다”며 “정부가 뚜렷한 예산 정책을 세우지 않으면 앞으로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봅슬레이 대표팀 전정린(29) 역시 “메달은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 팀이 만든 것이다. 우리가 메달을 따게 되면 지원이 더 많아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며 “3월에 훈련 들어가면 몇몇 (상비군)선수는 못 볼 것 같다. 그 선수들을 볼 면복도 없다. 같이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용 총감독은 “평창 올림픽이 끝났지만 이제부터 제2의 원윤종, 제2의 윤성빈을 길러내야 한다”며 “등록 선수로 종목의 가치를 측정하지 말고, 작은 인프라 속에서 어떻게 이 메달이 나왔을까 생각해달라. 지원 체계가 구축된다면 4년 뒤에는 한국 선수가 시상대에 2명 이상 올라갈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