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퀸' 전인지, 우승 뒤엔 '맹부삼천지교' 있었다

김인오 기자I 2013.06.23 16:52:32
23일 끝난 기아자동차 제27회 한국여자오픈 골프대회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전인지가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KLPGA 제공)
[송도=이데일리 스타in 김인오 기자] ‘루키’ 전인지(19·하이트진로)가 생애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일궈냈다.

전인지는 23일 끝난 한국여자골프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기아자동차 제27회 한국여자오픈 골프대회에서 최종합계 13언더파 275타를 적어내 대망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전인지의 우승을 누구보다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다. 오로지 골프 선수로 키워야겠다는 일념으로 10년 넘게 고생한 아버지 전종진(54)씨다. 시상식에서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아낸 전인지를 멀리서 지켜보던 전씨는 그간의 고생이 떠올라 말없이 눈물을 훔쳐냈다.

전북 군산이 고향인 전인지는 또래들보다 늦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에 입문했다. 태권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 전종진(54) 씨의 의지가 컸다. 당시 수학 재능자로 영재수업을 받고 있었던 전인지는 아버지를 따라 골프연습장으로 갔고, 생전 처음 보는 막대기(?)를 손에 쥐었다. 아버지는 그냥 마음대로 휘둘러보라고 했다.

볼을 맞히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기가 발동했다. 고개를 젓고 있는 아버지의 표정이 싫었기 때문이다. 전인지는 “주변 어른들의 스윙을 몰래 훔쳐보면서 5시간 넘게 쉬지 않고 쳤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몸을 가누기도 어려워지자 볼이 맞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어린 딸을 골프 선수로 키워야겠다고 다짐했고, 힘겨운 여정이 시작됐다.

학교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지금은 전인지의 열렬한 팬이 된 당시 교감 선생님은 “공부에 더 소질이 있다”며 아버지를 만류했다. 수업을 빼주지 않는 등 마찰이 생기자 아버지는 골프 환경이 좋은 제주도로 전학을 보내버렸다. 전씨는 “배고픈 운동은 시키기 싫어 골프를 택했다”며 “집안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딸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싶었다. 지금도 후회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맹부삼천지교’의 끝은 제주도가 아니었다. 좋은 코치가 있고, 연습 환경이 잘 갖춰져 있는 곳이라면 마다치 않고 찾아다녔다. 제주도 한라중학교에 입학한 전인지는 몇 개월 되지 않아 전남 보성에 있는 득량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고등학교는 신지애(25·미래에셋)의 모교인 함평골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의 지극 정성 탓인지 전인지는 사춘기를 모르고 자랐고, 엘리트 코스를 모두 밟으며 대형 선수로 커나갔다.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이 됐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국가대표가 됐다. 그리고 골프를 시작한 지 9년 만인 지난해 꿈에 그리던 프로 무대에 당당하게 진출했다.

프로로 전향한 지난해에는 드림투어(2부투어) 상금 순위 2위에 올라 시드전을 거치지 않고 정규 투어 직행티켓을 얻어냈다. 올해 성적도 루키답지 않게 화려하다. 이 대회 전까지 8개 대회에서 모두 컷 통과에 성공했고, 지난달 열린 두산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는 장하나(21·KT)와 18번홀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리고 국내 여자골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한국여자오픈에서 대망의 첫 우승을, 그것도 메이저대회에서 이뤄냈다.

지난 5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전인지는 “프로 골퍼가 되려면 1년에 1억원 정도 든다고 한다. 1년에 산 하나씩 팔았을 것이다. 이제 아버지를 위해 살겠다”며 지극한 효심을 드러냈다. 이제 우승으로 아버지에게 진 빚을 조금이니마 갚게 된 전인지는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23일 끝난 기아자동차 제27회 한국여자오픈 골프대회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전인지가 동료들에게 축하 물세례를 받고 있다.(KLPG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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