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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세계수영대회는 28일 폐회식을 끝으로 17일 간의 뜨거웠던 경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번 대회는 194개국에서 7500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국제수영연맹(FINA)이 주관하는 대회 가운데 역대 최다 출전국, 최다 출전선수 신기록을 세웠다.
‘저비용 고효율’ 대회의 정석을 보여줬다. 대회 예산은 총 2244억원에 불과했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6572억원)와 비교해 3분의 1 수준이었다. 하지만 적은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했다. 사후 시설 관리 및 활용 문제나 지자체 재정 부담 등 부작용을 남기지 않았다는 찬사를 받았다.
훌리오 마그리오네 FINA 회장은 28일 폐막 기자회견에서 “개최국 한국은 각 나라의 대표단들을 성심 성의껏 환대해줬고 각 경기장 시설은 훌륭했으며, 선수진과 언론인 숙소 또한 최상급 수준이었다”며 “조직위원회의 안정적인 경기 운영은 선수들이 좋은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세계신기록 8개...‘수영황제’ 드레슬 6관왕 기염
기록도 풍년이었다. 세계신기록이 총 8개가 수립됐다. 애덤 피티(영국)는 평영 100m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종전기록을 0.22초 앞당긴 56초88로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웠다. 남자 200m 접영에서는 19세의 크리슈토프 밀라크(헝가리)가 10년 동안 깨지지 않던 ‘전설’ 마이클 펠프스(미국)의 세계기록을 0.78초나 앞당겼다.
2년 전 부다페스트 대회 7관왕에 오르며 ‘수영황제’로 등극한 케일럽 드레슬(미국)은 이번 대회에서도 남자 자유형 50·100m, 접영 50·100m , 계영 400m, 혼성 계영 400m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6관왕에 올랐다. 특히 27일에는 약 100분 동안 금메달 3개를 휩쓰는 괴력을 발휘했다.
이변도 속출했다. 이번 대회 전까지 금메달 14개를 목에 걸었던 ‘수영여제’케이티 러데키(미국)가 4연패를 노리던 여자 자유형 400m에서 ’신예‘ 아리안 티트머스(호주)에게 금메달을 내주고 2위에 그쳤다. 러데키는 이후 자신의 주종목인 자유형 1500m와 200m를 기권했다. 하지만 대회 폐막 하루 전 자유형 8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자존심을 회복했다.
2년전 부다페스트 대회 3관왕이며 자유형 50·100m와 접영 50·100m 에서 세계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사라 쇠스트룀(스웨덴)도 자신의 주종목인 접영 100m에서 ’19살 소녀‘ 마가렛 맥닐(캐나다)에게 금메달을 내줘 4연패 달성에 실패했다.
중국의 간판스타 쑨양은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대회 기간 내내 논란의 중심에 서야 했다. 금지약물 사용 전력에 도핑 테스트 회피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다른 나라 선수들의 비난 세례를 한몸에 받았다. 심지어 기념촬영이나 악수를 거부당하는 등 ’왕따‘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한국, 다이빙은 가능성 확인...경영은 뒷걸음질
이번 대회는 안방에서 열린 만큼 한국 수영에 큰 기회였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종목도 있는 반면 부진으로 아쉬움을 남긴 종목도 있었다.
한국 다이빙은 이번 대회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예선을 치른 10개 종목 가운데 8개 종목에서 결승에 진출했다. 2015년 카잔 대회 5개, 2017년 부다페스트 대회 4개에 비해 눈에 띄게 성장했다.
’여자 다이빙의 희망‘ 김수지(울산광역시청)는 1m 스프링보드에서 한국 다이빙 역사상 첫 메달(동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의 유일한 메달리스트가 됐다. ’남자 다이빙 간판‘ 우하람(국민체육진흥공단)도 남자 1m와 3m 스프링보드에서 남자 다이빙 개인전 역대 최고 성적인 4위를 차지했다. 도쿄 올림픽 출전권도 2장이나 획득했다.
개최국 자격으로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처음 출전한 남녀 수구도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다. 남자 수구는 뉴질랜드와의 마지막 순위 결정전에서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첫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대회를 앞두고 두 달 전 처음 만들어진 여자 수구 대표팀도 세계 강호들을 상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감동을 선물했다.
아티스틱 수영에선 프리 콤비네이션 종목에서 결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세계선수권대회 아티스틱 수영에서 한국이 결승에 진출한 것은 2009년 로마 대회 때 박현선(솔로 12위) 이후 10년 만이었다.
반면 ‘수영의 꽃’이라 불리는 경영에선 실망스런 결과를 남겼다. 여자 개인혼영 200m에서 김서영(경북도청, 우리금융그룹)이 결승까지 올라 6위를 차지한 것이 그나마 눈에 띄는 성적이었다. 김서영을 제외하고는 결승 무대를 밟은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 세계 수준은 커녕 자기 기록에도 훨씬 미치지 못했다.
한국 선수단의 부진은 대회 흥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선전한 다이빙이나 볼거리라 많았던 하이다이빙 등은 관중들의 열기가 뜨거웠다. 하지만 정작 가장 관심이 뜨거워야 할 경영 종목은 대회 내내 관중석이 비어있었다.
△국가대표 유니폼 조차 제대로 못챙긴 수영연맹
사실 선수들을 탓할 수는 없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관리하고 한국 수영을 이끌어가는 대한수영연맹의 무능력이 여실히 드러났다.
수영연맹은 12일 대회 개막 이후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제대로 된 선수단복을 지급하지 못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대회 초반 ’KOREA‘라는 국가명과 브랜드 로고를 테이프로 가린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오픈워터 수영 국가대표 선수들은 연맹이 국제 규정에 맞지 않는 수영모를 받는 바람에 낭패를 봤다. 경기 직전 퀵서비스를 통해 간신히 수영모를 전달받은 뒤 펜으로 KOR’이라 적은 뒤 출전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빚어졌다.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이 연맹 회장을 맡던 시절 수영연맹은 온갖 비리와 불법으로 얼룩졌다. 2년 3개월 동안 대한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되기도 했다. 겉으로는 관리단체에서 벗어나 정상화 됐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부끄러운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대회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은데 대한 아쉬움도 남는다. 북한 선수단이 불참한데다 한국 선수단의 기대 이하 성적을 내면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심지어 TV 중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들만의 대회’라는 인상을 지우지 못했다.
조직위가 밝힌 입장권 판매율은 높았지만 대부분 단체 구매 비율이 높다보니 실제 입장률은 낮았다. 폐막 전날인 27일 오전 광주 모 클럽의 구조물이 무너져 대회에 참가한 외국 선수들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것도 대회의 ‘옥에 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