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았던 알리, 별처럼 빛나다'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이석무 기자I 2016.06.07 08:15:39
현역시절 최고의 복서로 이름을 날렸던 무하마드 알리. 사진=AFPBBNews
파킨슨병에 시달리던 무하마드 알리가 떨리는 손으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성화대에 성화를 점화하고 있다.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쐈던’ 무하마드 알리. 파란만장했던 인생에 마침표를 찍고 이제 하늘의 별이 됐다.

‘20세기 최고의 복서’로 이름을 알렸던 알리는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74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알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구촌이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세계 복싱계 및 스포츠계는 물론 각계각층에서 애도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전설적 복서를 넘어, 평화와 평등의 세계 챔피언이었다”라고 알리를 애도했다.

알리는 위대한 복서인 동시에 인종차별과 전쟁에 반대한 사회 운동가였다. 각종 차별과 억압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냈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은퇴 후 파킨슨씨병과 투병하면서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전세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물했다.

▲사각의 링을 지배한 최고의 복서

알리는 프로복싱 역사상 가장 유명한 복서였다. 1960년 로마 올림픽 라이트헤비급 금메달을 목에 건 뒤 프로로 전향한 알리는 3차례에 걸쳐 헤비급 타이틀을 차지했고 통산 19번이나 방어에 성공했다.

1967년 베트남전쟁 참전을 거부했다가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3년간 링에 오르지 못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알리는 1981년 은퇴할 때까지 수많은 명승부를 만들어내며 복싱팬들을 흥분시켰다.

1964년 소니 리스턴을 KO시키고 헤비급 챔피언에 오를 당시 알리가 남겼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명언은 오늘날까지도 크게 회자되고 있다.

알리는 헤비급 복서임에도 현란한 스텝과 빠른 스피드, 정확한 펀치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소니 리스턴, 조 프레이저 등 쟁쟁한 라이벌들을 무너뜨리고 정상을 지켰다.

특히 1974년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샤에서 당시 무적 챔피언이었던 조지 포먼에게 거둔 역전 KO승은 ‘킨샤샤의 기적’이라 불리며 프로복싱 역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명승부로 회자되고 있다.

▲전쟁과 인종차별에 맞선 인권운동가

알리는 링에서만 싸운 것이 아니었다. 링 밖에서도 싸웠다. 대표적인 사건이 베트남전 징병 거부였다. 이 일로 인해 챔피언벨트는 물론 프로복서 자격까지 박탈당했다.

하지만 알리는 법정에서도 “베트남 사람들은 나를 깜둥이라 부르지 않고 해를 끼치지도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총을 들이댈 이유가 없다”라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미국 사회에서 징병 반대와 반전은 금기어나 다름없었다. 특히 유명인 가운데 징병 반대와 반전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높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알리의 행동은 전국적이 반전운동의 불씨를 던졌고 큰 파장으로 이어졌다.

알리는 인종차별 철폐에도 앞장섰다.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본명을 버리고 이슬람식의 무하마드 알리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된 것은 흑인으로서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였다. 이슬람 차별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에게는 “이슬람을 이용하지 말라”고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알리는 자신이 가진 챔피언 타이틀과 사회적 지위를 걸고 링 밖에서 싸웠다. 남들이 모두 피하려 할때 그는 직접 나서 말을 했다”며 “지금의 미국이 자리하는데 있어 알리의 승리가 큰 도움을 줬다”고 평가했다.

▲전세계를 감동시킨 알리의 떨리는 손

알리는 1981년 트레버 버빅에게 판정패한 뒤 21년간의 프로복서 인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불과 3년 뒤인 1984년 파킨슨병에 걸리면서 정상적인 거동을 할 수 없게 됐다.

선수 시절 화려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갔고 손은 쉴새 없이 떨었다. 말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30년 넘게 투병하면서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알리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성화 최종 주자로 나섰다. 떨리는 손으로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모습은 전세계인들에게 큰 감동을 선물하기에 충분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CO) 위원장은 알리가 당시 최종 성화 점화자로 나온 장면을 회상하면서 “그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용기를 가진 선수였다”며 “진정한 올림피언”이라고 추모했다.

그밖에도 알리는 1988년 UN 친선대사를 맡아 분쟁 지역 아동지원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2003년에는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시구자로 나섰고 2005년에는 미국 백악관으로부터 자유훈장을 받으며 업적을 인정받았다. 불편한 몸도 알리의 정신을 막지는 못했다.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