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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정인환이 전북 구단과 가진 공식 인터뷰 일문일답.
-2007년말 전북에서 전남으로 트레이드 후 6년 만에 친정팀 복귀다.
▲우승권 팀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너무 좋다. 이동국 형과 케빈, 이승기 등 스타 플레이어들이 많아졌다. 사실 인천 시절 제일 무서워했던 두 공격수가 동국이 형과 케빈이었다. 동국이 형은 페널티 박스에서 찬스를 주면 그냥 골이다. 케빈은 무조건 머리부터 들이댈 만큼 투지가 좋다. 케빈이 첫 미팅 때 내게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수비수가 같은팀에 와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인천을 떠나 전북으로 이적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2006년 전북에서 프로데뷔해 이 곳에서 레전드로 은퇴하겠다는 꿈을 꿨다. 하지만 갑자기 트레이드됐다. 전북만 만나면 다시 오고 싶어 죽어라했다. 전북 상대로 2골도 넣었다. 사실 인천이 지난해 9월 우즈베키스탄과의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3차전이 끝난 뒤 돈 때문인지 카타르 구단에 무작정 날 팔려했다. 팀 성적이 좋지 않을 때는 주장도 교체하려 했었다. 그래도 인천은 죽어가는 정인환을 살려준 팀이다. 팀 주장으로 시즌 끝까지 책임지고 싶어 남았다. 대표팀을 생각하면 중동은 가기 싫었다. 이달 초 이적설이 터지고 괌 전지훈련에 뒤늦게 합류했다. 난 이미 다른팀 선수였다. 밥도 혼자 먹고, 나 때문에 전술훈련도 안했다. 김남일 형과 설기현 형이 ‘2002년 월드컵 이후 너와 함께 축구를 최고로 즐겁게했다. 너무 아쉽지만 지금은 떠날 시기 같다’고 진심어린 조언을 해줬다. 인천을 만나면 골을 절대 안먹고 죽어라 할 거다. 친정팀에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최근 부쩍 성장한 계기가 있었나.
▲지난해 7월 2002년 한일월드컵 멤버와의 K리그 올스타전이 힐링이 됐다. 다른 선수들은 재미있게 하는데 난 120% 전력을 다했다. 평소 박지성(퀸즈파크레인저스) 선수와 한 번 뛰어 보는게 소원이었다. 너무 신기해 얼굴만 보다 넘어질 뻔했다. 축구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나도 잘해서 이런 영광스런 자리에 꾸준히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우여곡절은 없었나.
▲2006년 전북에서 뛸 때 축구가 안 늘더라. 그해 광대뼈가 귀에 가있을 정도로 크게 다쳐 수술을 3차례나 받았다. 복귀 후 헤딩은 커녕 파리가 무서울 정도였다. 축구를 그만두려 했었다. 당시 도하 아시안게임 코치였던 홍명보 감독님이 잡아주셨다. 하지만 전남에서도 스치기만해도 다쳐 3재가 아니라 6재인가 생각했다. 2011년 인천 이적 후 축구가 재미있어졌다.
-롤모델은 누군가.
▲고교 시절 중앙대를 다니던 곽태휘(알샤밥) 형을 롤모델로 삼았다. 멘탈이 정말 강하다. 생활부터 경기를 준비한다. 대표팀에서 포지션 경쟁자라고 내치는게 아니라 같이 잘해보자는 분위기를 만든다. 뜨고 나서도 계속 성실하다. ‘최고에 오르면 최고를 놓치기 싫어 더 열심히하게 된다’는 태휘형의 조언을 가슴 깊이 새기고 산다.
-이제는 대표팀에서 자리를 잡은 것 같나. 다음달 6일 영국에서 열릴 크로아티아와 평가전에 중앙 수비 6명이 발탁됐는데.
▲아니다. 늘 국민들 앞에서 받는 테스트라 생각한다. 센터백 6명이 뽑힌걸 보고 곧바로 개인운동을 나갔다. 지난해 8월 잠비아와 평가전에는 긴장해 앞도 안보였지만 경기를 치를수록 자신감이 붙고 있다. 모드리치와 에두아르도, 만주키치 등 축구게임에서만 보던 선수들을 상대해 꿈만 같다.
-국내파로서 유럽파와 갭은 없나.
▲없다. 내가 먼저 기성용(스완지시티)에 다가가 사진촬영과 사진 요청을 한다. 축구를 잘해서인지 마인드도 좋더라. 난 축구를 잘하면 형처럼 존중해준다. 이청용(볼턴)도 형처럼 대우해준다. 축구게임을 할 때도 순번을 양보한다. 그저 이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영광스럽다.
-최강희 감독은 어떤 존재인가.
▲연세대 1학년 시절 프로로 발탁해준 분이다. 기대가 크셨는데 기대의 반도 못미쳐 매일 울었다. 대표팀 소속으로 잠비아전 재회해 1대1 미팅을 하는데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 뽑게해줘 고맙다’고 하실 때 울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