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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은퇴 기자회견 전문.
-소감을 말해달라.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감사드린다. 선수생활 마감보다, 또 다른 시작의 의미가 크다. 선수생활 동안 정말 행복했다. 29년 동안 젊음을 다 바친 것과 마찬가지다. 다른 선수보다 영광스럽게 코트를 누빈 건 스스로도 자부심으로 느끼고 있다. 선수생활을 잘 했기에 이런 자리도 마련된 거 같다. 정말 감사드린다. 선수생활 잘 하도록 응원한 팬분들, 회장님, 단장님, 선수들 모든 분들에 감사드린다.
-화려한 농구인생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인터뷰에서 말했지만, 뭣 모르고 농구공을 처음 잡았다. 처음은 미미했다. 언론에 노출이 되고 '정선민' 석자를 알린 게 고1때였다. 그때부터 이 자리에 오기까지 굉장한 기록들과 영광스런 자리가 많았다. '끝은 창대했다'고 말하고 싶다.
-가장 기억나는 순간 중에 좋았던 일과 아쉬웠던 일이 있다면?
▲우승반지 한 번 껴보기 힘든 사람도 많다. 선수들에게는 꿈이고 희망이다. 하지만 난 9번을 경험했다. 영광이고 기쁘고 좋았다. 아쉬운 것은 2011~12시즌 국민은행에 이적하고 우승을 하고 은퇴하는 게 꿈이었는데 성사되지 못해 아쉽다.
-지금 포스트 정선민이 있나?
▲이런말 해도 되나? 정선민은 색깔을 다른 선수들과 다르고 독특하게 가려고 했다. 농구를 사랑하는 팬분들이 '올라운드 플레이어', '바스켓 퀸'이라고 불러주셨다. 어떤 역할에 치중하지 않고 다방면에서 잘 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포스트 정선민, 사실 날 닮은 선수는 없었으면 좋겠다. 얼굴도 안 닮았으면 좋겠지만(웃음). 영원한 내 캐릭터로 기억됐으면 한다. 팬 여러분에 영원히 기억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자친구를 공개했다. 결혼을 위한 은퇴인가? 이후 계획은?
▲결혼하려고 은퇴하는 건 아니다. 여자로서의 삶은 많이 포기하고 살았다. 우리나라 여자농구 선수로서 여러 방면에 얽매여 살아야 했다. 나이를 먹다보니 딜레마가 생겼다. 여자로 살아야 할 앞날이 많다는 것이다. 선수생활이 답답했다. 시즌을 준비하는 게 너무 치열하고 힘들었다. 그걸 앞으로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은퇴했지 결혼을 위해서는 아니다. 물론 앞으로 남자친구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전주원 선수와 은퇴 상의나 교감이 있었나?
▲주원 언니한테는 이런 모든 사실에 대해 후배들하고도 상의하지 않았다. 부모님, 오빠와 상의했다. 주원 언니는 인터뷰가 발표되면서 알았다. 신한에서 이적하기 전 5년 정도 알고 지냈다. 언니가 "선수생활을 잘했고, 수고 많았다. 네가 선택한 일이니까 잘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수생활을 점수로 매긴다면?
▲120점. 이런 자리는 나니까 가능한 거 아닌가. 잘했기에 이런 기자회견도 하는 거라고 본다. 이건 앞으로 영원히 농구장을 떠나서도 어딜 가도 내세울 수 있는 일인 거 같다. 100점보다 더 잘했다.
-신세계 팀 해체 이야기가 있다. 여자농구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은퇴하는 것도 신세계가 해체된 여파때문이 아니냐고 하는데 안타깝다. 창단 첫 시즌부터 준우승, 4번의 우승을 올리면서 명문구단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성적이 반영돼야 팀을 운영할 수 있다는 구단의 논리가 있다. 선수 입장에서는 아쉽다. 팬들은 선수를 기억한다. 구단 운영에 있어서 이름 석자만 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홍보가 된다고 생각한다. 농구 성적이 좋아야 구단 운영이 잘 되는 것이라면 국민은행이 제일 먼저 해체돼야 했다. 국민은행은 너무나도 안 좋았다. 신세계가 해체된 건 너무나도 안타깝다.
조만간 인수 구단 나온다는 이야기 들었다. 여론에 알려지면서 움직임도 발이 빨라졌다.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선수들에게 있어 최선이다. 우리 후배들이 다시 한번 코트에 들어설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선배들이 일으킨 여자농구의 부흥을 다시 한 번 이뤄줬으면 한다.
-정선민은 선천적인 선수인가? 후천적인 선수인가?
▲잘 모르겠다. 중3까지 아무도 모르는 시골학교에서 언니들 쫓아다녔다.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농구를 어떻게 해야 잘 하는지 몰랐다. 고등학교 1학년 입학전에 언니들하고 훈련을 받았는데 특별히 빨리 실력이 좋아졌다. 3~4개월 사이에 너무나 많은 발전을 했다. 어떻게 내가 갑자기 잘 할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첫 춘계대회 나가서 28점을 냈고, 그때 내 이름 타이틀이 언론에 비춰지면서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마 선천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항상 로망이 되는 선배들의 플레이를 재현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뛰었다.
-서장훈 선수도 비슷한 입장이다. 한 마디 해준다면?
▲(추)승균이가 좋은데, 왜 서장훈일까(웃음). 은퇴를 마음먹은 계기에 승균이 영향이 있었다. 늘 성실하고 자기 역할 충실하고 나이 먹어도 참 잘하는구나 생각했다.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면서 당황스럽지만 잘 한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선수는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늘 잘 할 수는 없다. 항상 최고일수도 없다. 프로는 보여주는 게 전부다. 나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뛰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아닐 수도 있다. 모두 잘 할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지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해도 장훈이 이야기를 한다. 나는 욕심 안 부렸으면 좋겠다. 냉정할 필요가 있다. 어떤 모습이 팬들에게 남아 있을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이미 농구의 한 획을 그었다고 생각한다.
-정선민은 이기적인 선수였나?
▲감독님들한테 묻고 싶다. 내가 이기적이었는지. 너무 잘해서 이기적이었나? 난 늘 구설수에 올랐다. 내가 모르는 일, 하지 않은 일들이 언론에 보도됐다. 그래서 사실 좋은 말도 들었지만 나쁜 말도 많이 들은 선수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이기적인 건 좋게 말해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농구를 잘 하니까. 이기적인 거 아닌가?(웃음) 적당히 잘 하면 늘 좋은 이야기만 해준다. 난 정선민이니까. 난 마지막까지 이기적이고 싶다.
-29년 농구인생 중에 힘이 됐던 지도자나 인물이 있다면?
▲너무 많다. 내가 좋은 점을 잘 빨아먹었다. 감독님들의 좋은 점을 잘 흡수했다. 선수 생활 동안 내 지도자는 모두 스승님이고 은사님이다. 남들은 내가 슬럼프가 없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난 슬럼프를 많이 겪었다. 나와의 싸움이 필요했고, 이겨내야 했다. 멋진 플레이를 또 보여줘야 했고. 내 자신에 공을 돌리고 싶다. 또한 나를 이해하고 마음을 공유한 사람들은 후배들이었다. 그리고 선수들이었다. 다른 제3자가 아니었다. 새롭게 생각을 바꿀 수 있게 한 건 나와 같이 유니폼을 입고 뛰는 후배들이었다. 때문에 다시 한번 뛸 수 있었다.
-‘정선민은 이런 선수다’라고 한다면?
▲코트에서 만큼은 다방면에서 다 최고였던 선수. 농구도 잘하고 말도 잘하는 선수. 팬들이 기억하는 정선민은 농구장에서 보이지 않는 자체가 아쉽고, 코트에서는 너무 멋있던 선수로 기억됐으면 한다.
-해설가에 나설 의향이 있나?
▲나만의 컬러가 있다.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후배들이 해설하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자기들 은퇴하고 말하라고 한다. 무섭다고 한다. 워낙 후배와 친분도 좋고 하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후배들이 꺼리기도 한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그게 두려울 수도 있다. 조율을 잘 해야겠다. 해설을 한다면. 내가 NBA 중계를 굉장히 많이 본다. 해설 분위기를 보면 우리나라와 완전 다르다. 스튜디오에서는 샤킬 오닐이 같이 앉아서 선수의 플레이를 두고 이야기 한다. 이런 문화가 잘 정착했으면 좋겠다. 선수와 지도자의 해설은 다를 것이다.
-미국 생활하면서 느낀 점은?
▲너무 짧아서 아쉬움이 많았다. 내가 미국에서 지난 6개월의 시간이 터닝포인트였다. 정식적으로 절차를 밟아서 미국에 들어갔다. 그 지역에서 대단한 일로 생각했다. 너무 행복했다. WNBA 진출이 정말 힘들구나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긍지와 자부심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 경기를 뛰어야 잘 한다고 생각하더라. 그 때 많이 힘들었다. 미국선수들과 부딪혀 경기하고 대화하고 생활한 그 자체를 인정해줬으면 했다. 경기를 안 뛴다는 자체로 비난한 게 너무 속상했다. 후배들에게 기회 생기면 가라고 한다. 벤치에 앉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공부다. 미국에서 난 탁월한 선택을 했고 농구를 더 잘하는 선수로 부각됐다. 분명 나에게는 굉장한 일이었고, 평생 잊지 못할 기회였다.
-‘농구’에게 영상편지를 보내달라.
▲널 만난 건 인연인 거 같아. 태어나서 절반의 인생 동안 농구공과 인연은 최고의 인연이었어. 널 만나게 된 게 감사할 일이야.(눈물) 안 울려고 했는데. 너로 인해서 내가 이렇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한국 여자 농구의 최고 자리에서 영광스럽게 된 것도 너무 고맙다. 평생 여기 있는 모든 사람과의 인연도 너로 인해 생겼어. 나중에 자식한테도 '엄마는 이런 사람'이라는 거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도 네 덕이야. 농구공, 너를 평생 사랑하고, 너로 인해 행복했어
-팬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그동안 참 한국농구가 붐을 일으킬때부터, 농구대잔치-시드니올림픽-지금까지 사랑해주신 팬들에 감사한다. 지금도 그 세대 분들이 농구를 사랑해주는 거 같다. 난 때를 잘 맞춰 태어난 행운아 같다. 그 때였기에 내가 가능했다.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팬들이 계셔서 선수생활도 화려하고 멋지게 할 수 있었다. 내 대를 이을 후배들이 열심히 뛰어 줄 거다. 영원히 여자 농구, 한국 농구 팬으로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한다. 다른 일로 여러분을 찾겠다. 다른 정선민의 모습을 응원해주시고 지켜봐 달라.
-앞으로 하고 싶은일이 있다면?
▲4월 한달 동안 정신없이 지냈다. 은퇴여부로 고민도 했다. 국민은행이 잘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도우려고 노력하겠다. 앞으로는 내가 뭘 해야할 지에 대해 고민하겠다. 한숨 돌리고 뭘 할지 생각할 거다. 지금은 푹 쉬고 싶다. 사람도 만나고 부모님과 여행도 다니고. 앞으로 계획은 계획표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