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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푸른 눈의 사무라이' 누트바 열풍...후추 그라인더까지 인기

이석무 기자I 2023.03.15 10:34:18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전에서 몸을 날리는 호수비를 펼치는 일본 대표팀 라스 누트바. 사진=연합뉴스
후추 그라인더 그림이 그려진 종이 부채를 들고 라스 누트바를 응원하는 일본 야구팬. 사진=AP PHOTO
[도쿄=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승승장구하는 일본은 지금 한 선수에게 꽂혀있다. 바로 ‘푸른 눈의 사무라이’로 불리는 라스 누트바(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다.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누트바는 미국 국적 선수지만 어머니가 일본인이라 일본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처음 그가 선발됐을 때는 논란도 있었다.

누트바는 메이저리그 선수이기는 하지만 오타니 쇼헤이(LA에인절스)나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에 비해 경력이 화려하진 않다. 2021년 빅리그에 올라온 뒤 이제 3년 차가 됐다. 지난 두 시즌 동안 166경기에 출전해 통산타율 .231 19홈런 55타점을 기록한게 전부다.

일본 내에선 누트바의 선발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소속팀에서도 확실한 주전이 아닌 누트바가 일본 선수보다 낫다는 볼 수 있느냐’라는 반발이 나왔다.

하지만 일본은 부모의 국적을 선택해 대표팀에 출전할 수 있다는 WBC 규정을 이용해 누트바를 데려왔다. 주전 1번타자로 낙점했고 이는 대성공이었다.

누트바는 일본 대표팀의 활력소다. 1라운드 B조 조별리그 4경기에서 14타수 6안타 타율 .429 3타점 7득점을 기록 중이다. 도루도 2개나 성공시켰다.

단지 야구만 잘하는게 아니다.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평범한 땅볼타구를 쳐도 항상 1루까지 전력질주한다. 수비 역시 몸을 아끼지 않는다. 한국전에서도 멋진 다이빙캐치로 경기 흐름을 바꿨다. 그의 ‘허슬플레이’ 매력에 일본인들이 푹 빠졌다.

일본 TV프로그램을 보면 누트바에 대한 소개가 계속 나온다. 일본 신문 가판대에도 누트바의 얼굴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대회 전 분위기가 오타니 ‘원맨쇼’였다면 이제는 누트바가 오타니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다. 관중석에는 ‘미국에서 태어난 사무라이’라는 문구의 응원 종이도 볼 수 있다.

일본이 누트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세리머니에서도 나타난다. 일본 대표팀 선수들은 안타를 치고 출루하면 두 손으로 뭔가를 쥐어짜는 동작을 펼친다. ‘후추 그라인더’ 세리머니다. 후추 그라인더는 통후추를 잘게 갈아내는 조리기구다. ‘상대를 갈아버리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세리머니는 원래 누트바가 속한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하던 것이다. 누트바는 일본 대표팀에 와서도 이 세리머니를 계속했다. 일본 선수들도 낯선 일본계 미국인인 누트바를 환영하는 의미로 같이 이 세리머니를 같이 하고 있다. 누트바가 팀을 하나로 묶는 중심이 되는 셈이다.

누트바의 인기가 높아지다보나 기현상까지 벌어진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WBC 개막 후 일본 조리도구 전문점에서 후추 그라인더의 판매량이 15%나 증가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관중석에선 응원용으로 특별 제작한 75cm 크기의 대형 후추 그라인더까지 등장했다.

일본인들이 누트바에게 열광하는 데는 그의 남다른 스토리도 한몫 한다. 누트바는 어릴적 1년에 한 번씩 어머니의 고향인 사이타마현을 방문했다. 후지산 인근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탔던 경험을 종종 말하곤 했다. 누트바가 경기 중 항상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 부적은 외할머니가 자신이 다니던 절에서 직접 만들어 선물한 것이다.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기까지 걸어온 길도 흥미롭다. 누트바는 코로나19 여파로 마이너리그가 중단됐을때 생계를 위해 항공 우주 관련 회사에서 장비를 조립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그가 받았던 시급은 겨우 20달러였다.

지금은 연봉 수십만 달러를 받는 빅리거가 됐다. 하지만 당시 기억은 누트바가 더 열심히 야구를 하도록 만든 좋은 자극제가 되고 있다. 누트바는 인터뷰에서 “당시 넉 달 동안 새벽 4시에 일어나 주 6일간 일을 했다”며 “야구가 없는 삶을 경험했기 때문에 야구에 대한 애정과 열망이 더 커졌다”고 털어놓았다.

WBC가 한창 진행중이지만 지금까지만 놓고보면 최대 수혜자는 누트바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메이저리그로 돌아가 어떤 활약을 펼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뿌리인 일본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된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누트바도 이런 상황이 흐뭇하기만 하다. 그는 “일본에서 나를 마케팅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며 “내 이름은 라스다. 그 다음에 회사가 원하는 어떤 브랜드 이름도 말할 수 있다”고 농담 섞인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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