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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의 언론 시사회, 일반 시사회 등을 통한 반응은 나쁘지 않다. 김우빈, 강하늘, 이준호의 연기 시너지가 합격점을 받은 분위기다. 첫 상업영화 연출로 잔뜩 긴장한 이병헌 감독이지만 그만의 스타일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호평을 보내고 있다.
다만 상황이 좋지 않다. 외화 강세 속에 개봉되는 국내 신작이다. 그만큼 관심이 높다. 얼마나 괜찮은 이야기일지는 물론, 얼마나 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을지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천만 감독’이 내놓은 신작이어도,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출연작이어도 기대가 높은만큼 아쉬움도 커지는 게 자연스러운 결과다. ‘스물’의 어깨는 지금 너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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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이 첫 시사회를 갖기에 앞서 영화 관계자들은 “기대하지 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기 때문. ‘스물’뿐 아니라 대부분의 영화가 첫 반응을 좋은 쪽으로 얻는 것이 중요한만큼 기대치를 낮추는 사전작업(?)은 필수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스물’은 특히 코믹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는 장르의 특성 때문에 관객의 기대를 낮추는 일이 더욱 필요해보인다. 사람을 웃기기 위해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코드가 있어야 하는 법. ‘스물’ 역시 누구에게나 있었고, 있을 스무살의 이야기를 다루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겠다는 의지가 크다.
하지만 ‘스물’은 내부적으로도 관객 타깃을 달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30대인 이병헌 감독은 자신과 비슷한 시기를 겪은 30~40대의 관객에게 추억을 자극할 영화가 되길 바라고 있다. 반면 ‘스물’의 마케팅,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입장에선 주요 문화소비계층인 20대를 중심으로 트렌디한 배우들에게 열광할 10대까지 타깃을 낮춘 분위기다.
‘스물’의 한 관계자는 “특정 시기, 나이를 다룬 영화지만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접점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세대 별로 웃고 교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달라서 어떤 영화로 받아들여질지 걱정도 되지만 큰 기대 없이 편안하게 즐겨야 작품의 진가를 맛볼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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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은 배우간 호흡이 중요한 영화다. 그렇지 않은 작품이 어디있겠냐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갈림길에 놓여 미래를 개척해가는 세 친구가 인생의 시행착오를 함께 하는 이야기는 이들 간 ‘케미스트리’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전개를 안고 있다.
번듯한 외모를 갖고 잉여로운 생활을 즐기는 치호의 김우빈, 가장 바르고 공부도 열심히하지만 가장 별 볼 일 없는 경재의 강하늘, 꿈도 있고 책임감도 강한 장남이지만 가장 모자란 동우의 이준호. 실제로도 동갑내기 친구로 영화를 촬영하며 급격히 친해진 세 사람은 스크린에서 꽤 괜찮은 호흡을 보여줬다. 아빠에게 용돈 끊기는 일이 가장 두려운 ‘섹스광’ 치호를 연기한 김우빈은 ‘스물’로 색다른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영화 ‘감시자들’의 다람쥐로 짧지만 강한 인상을 담긴 이준호는 ‘스물’에서 타 배우들보다 에피소드에서 약한 아쉬움을 남겼지만 서사를 끌고 가는 힘있는 캐릭터로 열연했다. ‘미생’, ‘순수의 시대’, ‘스물’로 이어지는 3연속 이미지 변신은 강하늘을 사랑하는 팬들이라면 당연히 반길법한 일이다.
다만, 민효린과 이유비 정주연 정소민 등 여배우로 이들과 호흡을 맞춘 포인트는 집중을 방해한다는 평가도 있다. 이들이 맡은 캐릭터는 김우빈, 이준호, 강하늘과 긴밀히 엮여 다양한 감정을 표출해야 했다. ‘남자’와 ‘여자’라는 가장 흥미로운 관계를 도덕적, 합법적으로 마주한 스무살의 희노애락은 남녀 배우들의 약한 시너지에 빛을 바랬다. 이런 부분에선 관객의 큰 기대가 ‘스물’의 전체적인 점수를 깎는 요인이 될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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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은 메시지가 있는 코믹이다. 가장 철없고 순수했던 시절, 그때의 내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영화다. 무엇보다 한 살 더 먹었을 뿐인데 학교가 아닌 사회, 입시가 아닌 취업, 용돈벌이가 아닌 등록금 마련으로 삶의 스케일이 확 달라져버린 ‘스물’이라는 불안함, 혼란스러움을 조명했다. 내가 무엇을 할지 모르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방황하는 20대의 요즘 고민이 ‘스물’에 녹아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메시지를 영화를 보며 느끼기엔 충분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코믹 영화가 ‘기승전메시지’의 전개를 보여주는 건 뻔한 공식이자 관객 입장에서도 보기 유치한 ‘옛날 스타일’이다. 이병헌 감독은 “‘스물’은 편하게 보고 웃고 즐길 수 있는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메시지도 분명 있다”며 “그 메시지를 모든 관객이 반드시 느껴야한다는 생각보단, 각자의 기억과 감정에 따라 해석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개봉 전 팁을 주자면, ‘스물’의 하이라이트인 소소반점에서의 격투신은 이병헌 감독이 생각하기에 가장 슬픈 장면이다. 소소반점은 어려서부터 이들이 영위해온 공간이고, 그밖의 세상은 스무살이 된 이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미래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소소반점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격투 장면은 때문에 ‘미래로 나아가야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이들의 내적 갈등’이 담겼다.
또한 극중 영화감독으로 등장하는 배우 박혁권이 김우빈과의 대화에서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대사도 귀 기울일 만하다. “뭘 하면 좋을까요”라는 김우빈의 말에 “그냥 OO해, OO”이라고 말하는 박혁권의 답엔 묘한 주제의식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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