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개봉한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이다. 안중근 의사(현빈 분)가 독립 투쟁 동지들과 함께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노리는 약 일주일의 과정과 고뇌를 그린다.
박훈은 일본군 육군소좌 모리 다쓰오 역을 맡아 안중근을 집요히 추격하는 강렬한 악역 연기를 펼쳤다. 모리 다쓰오는 신아산 전투에서 안중근이 이끄는 독립군들에게 일본군이 크게 패하면서 인질로 잡혀있다가 안중근의 자비로 풀려난 인물이다. 모리 다쓰오는 풀려난 후 안궁근에게 알 수 없는 모멸감을 느낀다. 이후 안중근이 살아남아 하얼빈 작전을 기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 분)의 안전을 위해 독립군을 소탕한다는 명분 하에 안중근을 특히나 집요히 추격한다. 다만 실존이 아닌 가상의 인물이다.
앞서 우민호 감독은 ‘하얼빈’ 매체 인터뷰 당시 박훈과 전작 ‘남산의 부장들’로 처음 인연을 맺었지만, 작품의 방향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의 출연분이 통편집된 일화를 털어놓으며 미안함을 드러낸 바 있다. 당시 박훈의 열연을 인상깊게 봤고, 그를 기억해놨다가 훗날 ‘하얼빈’의 악역으로 그를 캐스팅하게 됐다고도 전했다. 박훈은 ‘남산의 부장들’ 당시 미국 측 정보원 역할을 맡았었다고.
이에 대한 질문이 등장하자 박훈은 “감독님의 말씀처럼 그런 인연이 있었다. 저는 그때 ‘남산의 부장들’ 영화를 너무 잘 봤다. 당시 현장에서 이병헌 선배님과 함께 연기한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배웠던 기억”이라며 “당시에 감독님과 작업하면서 ‘영화란 게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느끼고 성장한 계기가 됐다. 편집된 결과물을 봤을 때도 내가 안 나온다고 서운함을 느끼지 않았다. 영화가 너무 근사하고 멋지게 나왔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박훈은 “당시 제안을 받고 너무 감사하단 말씀을 드렸다. 대본을 받고 읽는 과정에서 이 영화가 안중근 장군의 이야기임을 알게 됐고, 그래서 더욱 어떤 역으로라도 참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민호 감독은 ‘남산의 부장들’ 때 일을 미안해했지만, 자신은 정말 괜찮았다고도 강조했다. 박훈은 “오히려 영화가 이렇게 만들어지며 방향성을 정하는구나, 이런 시스템으로 만들어지는구나 깨우치고 성장할 수 있던 과정이라 생각했다”라며 “이번 ‘하얼빈’ 촬영했을 때도 다른 배우들에게 해준 이야기가 있다. ‘하얼빈’에 참여한 수많은 배우들 중 ‘남산의 부장들’ 당시의 나처럼 작품 방향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편집되는 경험을 겪는 배우가 있지 않겠나. 그래서 다른 젊은 배우들에게 ‘혹시나 네가 작품에서 편집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 위축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이야기해줬다. 연기를 못해서 편집된 게 아니라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방향성에 따라 축소되는 캐릭터도 있고 강조되는 캐릭터도 있다고 그렇게 먼저 다가가 말해준 기억이 난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오히려 이 경험을 더 좋은 밑거름으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라며 “만약 ‘남산의 부장들’ 때 내가 연기를 못했다면 이렇게 ‘하얼빈’으로 우민호 감독을 다시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실제로 당시 감독님도 그렇고 이병헌 선배님도 제 연기 너무 좋았다고 말씀주셨던 게 큰 힘이 됐다. 그래서 ‘좋아, 난 이거로 만족한다’ 느끼며 기분좋게 집에 돌아갔던 기억이다. 후반작업 과정에서도 감독님이 제 역할을 어떻게든 살리려 노력하시는 모습도 지켜봤다”고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