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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발견’이라는 평가에 이순원이 쑥스러워했다.
최근 영화계의 핫이슈는 영화 ‘육사오’(감독 박규태, 제작 티피에스컴퍼니)의 흥행 반란이다. ‘육사오’는 1등 로또를 둘러싼 남북 군인 간의 예측불허 협상을 그린 코미디 영화로, 원초적 웃음이 관객에게 제대로 먹혔다. ‘육사오’가 입소문을 타면서 극중 북한 정치지도원 최승일 역을 맡은 이순원도 회자됐다.
최근 서울 중구 이데일리 사옥에서 만난 이순원은 지금의 흥행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육사오’는 올 여름시장에서 50억원 규모의 최약체 영화로 유명감독 유명배우를 내세운 한국영화 빅4에 가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영화였다.
“영화가 개봉할 때만 해도 내부에서는 작은 영화니까 요즘 같은 분위기로는 30만명을 채우기도 힘들다고, 혹시나 50만명을 넘기면 대박이다 했어요. 처음에는 브래드 형(‘불릿 트레인’)만 잡자 싶었는데, 100만명을 넘길 줄은 아무도 몰랐죠.”
‘육사오’의 흥행 공신은 캐릭터를 찰떡같이 소화해내며 개그 같은 상황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해낸 배우들이다. 그중에서도 이순원은 ‘육사오’의 히든젬(숨은 보석). 새까만 피부, 부리부리한 눈, 다부진 체격으로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결정적인 순간마다 빵빵 터트린다.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줄임말을 연습하는 이이경을 혹독하게 감독하는 장면에서, 또 윤병희와 총기 조립을 겨루는 장면에서 어퍼컷을 날린다.
“대본을 읽어보니 누가 봐도 저는 북한군이더라고요. 피부도 원체 까맣고 잘 타서 (분장하느라) 더 손을 댈 필요도 없어요. 감독님께는 제가 먼저 북한군을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감독님도 저를 남한군 시킬 생각은 없었을 겁니다.”
자신에게는 남한군보다 북한군이 더 경쟁력이 있었다며 눈에 힘을 주고 말하는 이순원의 진지함에 웃음이 피식 났다. 최승일이란 캐릭터가 그냥 나온 게 아닌 듯 이순원이라는 사람 자체가 유머러스했다. 덕분에 인터뷰는 내내 유쾌했다. 특히 브레이브걸스의 ‘롤린’ 춤을 추는 장면에서, 어떻게 걸그룹 못지않은 춤사위를 뽐낼 수 있었는지 궁금증도 풀렸다. 알고 보니 이순원은 학창 시절 댄스 동아리 활동을 하며 춤 좀 춘 실력자. 이 장면을 위해 댄스학원을 등록했지만 큰 어려움 없이 1주일 만에 마스터할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며칠 동안 연습 모습을 지켜본 선생님이 ‘예전 실력이 나온다’며 칭찬하더라고요. 원래는 다른 곡을 연습했었고 ‘픽 미’ 등 몇 곡이 후보에 있었는데 제 마음속 1번인 ‘롤린’으로 결정돼서 더 의욕적으로 연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연극배우 출신들의 영화계 활약이 돋보이는 요즘 이순원도 10년여간 무대에서 연기를 갈고 닦은 연극배우 출신이다. 연극 ‘연애의 목적’에 출연하며 그를 인상 깊게 본 ‘육사오’ 제작사 대표가 지금의 소속사 대표를 연결해줬다. 그러면서 ‘기억의 밤’(2017) ‘날아라 개천용’(2020~21) 등 영화와 TV로 활동을 넓힐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 된 ‘연애의 목적’을 언급하며 특별히 아내이자 동료배우인 육소영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연극을 10년간 하면서 선배의 위치가 되다 보니 어느 순간 후배들과 오디션을 보는 게 부끄러웠어요. 그럴 입장이 아닌데 오디션을 피했어요. 아내한테 많이 혼났죠. 굉장히 냉철하고 엄격한 사람이거든요. 그러고는 저한테 말도 없이 ‘연애의 목적’ 오디션에 접수를 했어요. 그때 아내가 오디션 접수를 안 했으면 지금의 ‘육사오’에 저는 없었을 겁니다. 앞으로 아내 말을 더 잘 들어야겠어요. ‘육사오’도 그렇고 육소영도 그렇고 앞으로 제 행운의 숫자는 6입니다.”(웃음)
이순원은 동료배우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자신이 돋보일 수 있도록 동료배우들이 한마음으로 배려해준 얘기와, 신인 시절부터 알고 지낸 윤병희와 오랜 인연을 언급하며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장면을 함께 찍으며 긴박한 상황과는 반대로 속으로는 뭉클함을 느꼈다는 얘기도 했다.
“최승일이 빛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동료배우들 덕분입니다. 승수 형도 있고 준혁 형도 계시지만, 대부분이 또래거나 저보다 어린데 그 친구들이 ‘이순원 잘돼야 한다’고 분위기를 몰아줬어요. 연기는 호흡을 주고받으며 완성되는 거라 상대의 배려 없이는 결코 자신이 돋보일 수 없거든요.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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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카페에서 ‘육사오’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해요. ‘아이와 같이 영화를 보면서 그림이 아니라 사람이 나오는 영화는 오랜만’이라며 엄마, 아빠들이 더 좋아한대요. 웃음은 전염된다고 ‘육사오’는 여러 명이 함께 보면 더 재미있어요. 이번 명절에 온 가족이 우리 영화를 보면서 답답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기대하면 재미가 반감될 수 있으니 기대도 정보도 없이 보시라’는 관람 팁(?)도 덧붙였다.
이순원은 ‘육사오’를 계기로 대중과 더욱 친숙해질 전망이다. ‘육사오’를 비롯해서 지난해 촬영한 작품들이 하나 둘 씩 공개를 앞두고 있다. 영화 ‘선데이리그’ 개봉과 ‘오픈 더 도어’의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을 앞뒀다. ‘오픈 더 도어’의 장항준 감독과는 ‘기억의 밤’으로 인연을 맺었다. ‘육사오’ 이후로는 더욱 바빠질 그다.
“장항준 감독님이 ‘나랑 단편 하나 하자’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장편이 되고 어느 순간 영화제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난생 처음 부산국제영화제를 가게 됐습니다. 영화제 분위기가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영화제도 그렇고 관객과 직접 만날 일이 벌써부터 설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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