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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자신의 모습을 봐준 관객에게 김영애는 “너무나 큰 보너스”라고 말했다. 3%의 시청률이던, 30만 명의 관객이건, 누군가 봤다면 배우로선 그 순간부터가 ‘덤’이고 ‘보너스’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작품에 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많은 것을 얻었는데, 이를 보고 좋아하고 지적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맙냐는 뜻이다.
2013년 12월 3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영애의 감정은 “행복”이었다. 이날 정오 500만 관객 돌파 소식이 전해지며 행복감은 ‘500만배’가 됐다. 매 시간, 매 순간 ‘변호인’ 덕에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는 김영애. ‘변호인’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감정이란 롤러코스터를 타고 참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변호인’과 함께 한 김영애의 시계를 처음으로 되돌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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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는 소속사로부터 ‘변호인’에 대한 대략적인 줄거리를 들었다. “하기 싫었다.” 시끄러운 내용은 싫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의견이 다양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변호인’은 정치영화였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였다.
“시끄러운 걸 너무 싫어해요. ‘아, 나 그거 하기 싫은데’라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어요.(웃음)”
그런데 왜 했을까. 연기 변신이 절실했던 때였다. ‘로열패밀리’와 ‘해를 품은 달’ 등 히트작의 캐릭터가 연장선상에 있었다. 강인한 카리스마 여성이었다. 그런 류의 캐릭터가 김영애를 찾아왔다. 로맨틱 코미디가 좋고 시트콤을 하고 싶어했던 김영애는 점차 무서워졌다.
“‘변호인’은 내가 너무 달라지고 싶었을 때 날 찾아준 정말 ‘다른’ 작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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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읽었다. 눈물이 났다. 이런 현실이 있었다는 것에 화가 났다. 그 시대의 인물이 돼야 한다는 사실에 힘이 겨웠다. 억울한 아들 앞에서 힘을 못 쓰는 ‘못난 애미’가 된다는 사실에 묘한 설렘을 느끼기도 했다.
“제 인생도 못지 않게 시끄럽다고 생각했거든요. ‘변호인’ 시나리오는 더 했어요. 품위와 권위를 내려놓고 보여줘야 할 때가 왔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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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이 들었다. 촬영을 시작하는 순간엔 ‘배테랑’이라 불리는 배우 인생을 살았음에도 송강호는 물론 다른 배우들에게도 위기감을 느꼈다. “연기로 망신당하면 어쩌나 싶었다.” “더 잘해야 한다는 자극에 힘들기도 했다.” 더욱 자책하게 된 건 연기의 알맹이였다. 1970~80년대 김영애는 먹고 살기 바빴다. 세상과 단절된 듯한 삶을 살았다. 그 시대 부림사건이 뭔지, 영화를 통해서야 자세히 알게 됐다.
“영화에 빚진 느낌이 들었어요. 이렇게 열심히 싸우준 분들이 있어 내가 지금 편하게 사는구나, 깨닫게 됐습니다. 저는 참 사회성이 없던 사람이었거든요. 내가 이렇게 오열하는 게, 온몸으로 속상해하는 게, 관객들에게 최대한 와닿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당시 느낀 슬픔의 절반도 표현되지 못했다는 아쉬운 장면도 있다. 극중 아들인 진우(임시완 분)가 면회소에서 끌려나갈 때, 아들의 재판을 노심초사 바라볼 때 등 그가 느낀 슬픔, 답답함은 화면에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다.
“촬영 기다리는 텀이 너무 길어서 소설책을 읽었어요. 전쟁이 인간에게 얼만큼 아픈 기억을 남기는지에 대한 정말 ‘지긋지긋’한 내용의 이야기였는데. 그거 읽다가 법정 신 촬영을 갔는데 소설의 여운 때문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질 않나. 정말 할 수 있다면 다시 찍고 싶죠.”
◇1차 편집본을 보며 실망하다
실망감도 느꼈다. 그렇게 열심히 자책하며 찍은 영화가 1차 편집본으로 나왔을 때 “영 느낌이 안왔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했다. 음악도 없었고, 편집도 완벽하지 않은 상태였으니 그럴 법도 했다.
“다큐멘터리 같았고 너무 투박했어요. 내가 너무 연기를 보며 조마조마한 심정이어서 더 몰입이 안 됐을 수도 있고요.(웃음) 화질도 완성본 보다는 떨어진다하던데, 사실 너무 안 좋아서 걱정도 됐고요. 훨씬 나아질 거란 말을 듣고 믿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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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로 처음 영화를 봤다. “대작이 나왔다는 느낌이었다.” “우리 감독 영화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 뿐이었다.” ‘변호인’의 양우석 감독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기도 처음이었다.
“영화를 다보고 양 감독을 꼭 안아줬어요. 고마웠거든요. 이렇게 좋은 영화를 만들어줘서, 힘든 시기 이겨내고 이렇게 잘 완성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김영애의 바람은 이제 딱 한 가지다. ‘변호인’이 영화 자체로서만 평가 받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미 많은 관객의 호평과 지적을 받아왔지만 양극을 오가는 대중의 왈가왈부 만큼은 잠잠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의견이 소중하고 중요하듯이 다른 사람의 생각도 존중해줘야 하잖아요. 이건 그냥 영화이고, 이야기이예요. 누군가를 포장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영화가 아니죠. 서로가 그냥 존재 자체로서 인정 받을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