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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매력적인 축구'를 주창하는 마르코 판 바스턴 감독

김삼우 기자I 2007.05.31 18:40:20
▲ 판 바스턴 네덜란드 감독 [로이터/뉴시스]


[이데일리 SPN 김삼우기자] ‘마르코 판 바스턴이 보여 줄 매력적인 축구는 어떤 것일까’  

다음 달 2일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한국 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벌일 네덜란드 대표팀에 축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네덜란드는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에 0-5의 참패를 안겨 주는 악연으로 시작했으나 이후 한국 축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토털 사커’의 원조.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거스 히딩크 감독 이래 본 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그리고 핌 베어벡 감독 등 네덜란드 지도자들이 한국 축구에 ‘토털 사커’를 접목시켜 왔다.

이번에 처음 방한한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특히 주목을 모으는 인물은 판 바스턴(43) 감독이다. ‘제2의 뤼트 판 니스텔루이'로 평가 받는 차세대 스트라이커 클라스 얀 훈텔라르(24.아약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디르크 카윗(리버풀)도 돋보이지만 ‘오렌지 군단’의 개혁을 주도한 판 바스턴 감독의 존재는 팬들에게 흥미롭다.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불과 40세에 네덜란드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세계적인 지도자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그의 이력 때문이다.

20세기 10대 선수 중의 한명

판 바스턴 감독의 현역 시절은 화려하기만 했다. 7살 때 축구를 시작한 그는 1982년 아약스 암스테르담에 입단하면서 꽃을 피웠다. 그해 4월 가진 아약스 데뷔전부터 그의 축구 인생은 남달랐다. 교체 멤버로 당시 경기에 투입된 그가 바통 터치를 한 선수는 ‘네덜란드 축구 신화’ 요한 크루이프였다. 크루이프는 네덜란드 축구에서 판 바스턴 감독이 이름값으로 대적할 수 없는 유일한 인물이다.

이런 인연을 맺은 그는 이날 골까지 넣었고 곧 발군의 득점력을 과시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1984년부터 87년까지 4시즌 연속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 득점왕에 오른 것을 비롯 85~86 시즌에는 유럽축구 골든슈를 수상하는 등 펄펄 날았다.

87년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AC 밀란 구단주가 그를 붙잡았다. AC 밀란 시대의 시작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세리에 A는 ‘세계 축구계의 엘도라도’로 불리며 세계 클럽 축구를 리드하고 있었다. 입단 첫 시즌에 AC 밀란을 세리에 A 정상에 올린 그는 1년 후 합류한 프랑크 레이카르트, 루트 굴리트 등과 함께 AC 밀란의 '오렌지 3총사'로 활약하면서 유럽을 제패해 나갔다.

29세 때이던 95년 현역에서 은퇴할 때 까지 판 바스턴 감독은 92년 FIFA 선정 올해의 선수, 88년과 92년 ‘월드사커’ 선정 올해의 선수에 뽑힌 것을 비롯, 아약스와 AC 밀란을 자국 리그는 물론 유럽 클럽 대항전 정상으로 이끌었다. 또 1983년부터 92년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1988년 유럽선수권 우승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A 매치 기록은 58경기 출전, 24득점.

볼에 대한 강한 집중력, 높은 전술 이해도, 가공할 득점력을 겸비한 그는 현역시절 ‘ 스트라이커의 교과서’였고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이 선정한 20세기 위대한 10대 선수 중의 한명이었다.

매력적인 축구를 주창하는 지도자

현역에서 물러난 뒤 지도자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그였지만 곧 마음을 바꿔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초고속 승진이 이어졌다. 일정 기간의 수업 후 2003~2004 시즌 처음 아약스 청소년 팀을 맡았던 그는 2004년 7월 전격적으로 네덜란드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됐다.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후임이었다. 2002년 월드컵 본선 진출 무산, 유로 2004에서의 내용적 실패 등으로 위기 의식을 느낀 네덜란드 축구협회가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그에게 네덜란드 축구 개혁의 중임을 맡긴 것이다.

그의 취임 일성은 ‘매력적인 축구’였다. ”축구는 매력적이어야 한다. 대표팀을 보다 공격적이며 매력적인 축구를 하는 팀으로 만들어 네덜란드를 다시 세계축구의 중심에 위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후 그의 선수단 운영은 파격적이었다. 우선 스스로 ‘강철같은 규율의 사나이’로 자리매김한 뒤 강한 의욕과 엄격한 규율로 대표팀을 장악해 나갔다. 네덜란드 대표팀은 대회 중에도 감독과 선수가 전술을 두고 논쟁을 벌일 만큼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알려져 있지만 판 바스턴 감독은 규율과 원칙을 우선시했다.

그리고 클라렌스 시도로프, 패트릭 클루이베르트, 에드가 다비즈, 로이 마카이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대표팀에서 차례차례 제외하는 대신 국내리그에서 눈여겨 봐 뒀던 신예들을 발탁했다. 그는 스타플레이어들이 이미 전성기가 지났고, 항상 기대이하의 플레이를 한다고 믿고 있었다. 베테랑의 경험을 중시했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는 철학이 달랐다.

또 과거 수 십년 동안 네덜란드 대표팀의 젖줄 노릇을 했던 빅 3클럽(아약스, PSV 아인트호벤, 페예노르트) 출신이 아닌 AZ 알크마르 선수들을 대표팀의 주축으로 중용, 팀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이번에 방한한 대표팀에도 딤 데 클레르, 케브 얄린스 등 수비수와 데미 데 제우 등이 알크마르 소속이다.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는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살로몬 칼루(첼시)를 특별케이스로 귀화시켜 대표팀에 발탁하려는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네덜란드 당국이 귀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칼루에게 시민권을 주는 것을 거부, 무산되기는 했지만 이전에는 없었던 시도였다.

비록 독일 월드컵 16강전에서 포르투갈에 0-1로 져 탈락하긴 했으나 판 바스턴 감독은 취임 이후 가진 34차례의 A매치에서 22승10무2패를 기록할 만큼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2008유럽선수권 예선에서도 4승2무를 기록하며 G조 선두다. 네덜란드 축구협회는 그의 임기가 내년에 끝나지만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예선 때까지 대표팀을 맡도록 임기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

최근 달라진 점은 그동안 대표팀 발탁을 두고 갈등을 빚어왔던 판 니스텔루이, 시도로프 등 노장 스타들과 화해 무드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시도로프는 지난 해 11월 잉글랜드와의 A 매치때 복귀시켜 관계를 개선했다. 그리고 ‘다시는 네덜란드 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판 니스텔루이와도 최근 “서로 지난 일은 잊고 미래가 중요하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 했다”며 그를 오는 9월 불가리아, 알바니아와 유로 2008 예선에 재발탁할 계획임을 밝히기도 했다.

취임 일성처럼 그의 축구는 공격적이다. 한국 팬들에게 익숙한 4-3-3을 기본 전형으로 적극적인 공격 전술을 구사한다. 측면 공격을 중시하는 것은 베어벡 감독과 비슷하다. 두 명의 윙포워드가 패스와 돌파로 최전방에 볼을 배급, 훈텔라르 등 원톱이 결정하는 스타일이다. 에드윈 판 데사르(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도르프(AC밀란), 아르연 로번, 칼리트 불라루즈(이상 첼시) 등 일부 주전이 부상 등 개인 사정으로 한국에 오지 않았지만 네덜란드 축구의 저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멤버들이 한국전을 기다리고 있다.

판 바스턴 감독이 추구하는 ‘매력적인 축구’가 그라운드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이번 평가전의 중요한 감상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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