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으로 산다는 것②]두려움, 초조함 이겨낸 선배들의 조언

최은영 기자I 2009.03.13 11:07:22
▲ 지난 7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 장자연.(사진=한대욱 기자)


[이데일리 SPN 최은영기자] 장자연의 죽음을 둘러싸곤 의문이 많다.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신인, 성공한 드라마에 출연하며 이제 막 이름을 알리고 가능성을 인정받던 찰나의 선택은 분명 뜻밖이었고 또 잔인했다.

사망 직후 우울증으로만 알려졌던 고인의 자살 동기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단, 그녀가 남긴 문건 가운데 언론에 공개된 단 한 줄의 글로 막연히 짐작만할 뿐이다.

"저는 나약하고 힘 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고인이 남긴 글 바로 밑에는 사인에 지장까지 찍혀 있었다. 신인배우로 사는 일이 결코 녹록치 않았고 그로인한 고통이 상당했음을 고인은 죽음으로 이야기했다.

지난 7일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 고 장자연은 성공에 대한 욕심이 유독 남달랐던 배우였다. 그녀를 기억하는 몇몇 연예계 선배들은 "유난히 성공에 대한, 일에 대한 열정이 컸던 친구였다"고 입을 모았다. 더불어 아쉬움도 토로했다.

대다수 연기자들은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신인의 생활이 힘들다는 것 자체에는 대체적으로 공감을 하면서도 죽음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한 데는 안타까움과 함께 깊은 우려를 표했다. 자신들도 결코 다르지 않은 길을 걸어왔고 그 순간을 극복하고 나면 분명 또 다른 세상이 온다는 게 그 이유였다.

전인화는 최근 인터뷰에서 "앞서 후배(故 최진실)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한 여배우가 짧은 생을 마감해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자기 삶에 대한 지구력이나 인내심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사회 전반적인 문제다. 자기 주변의 식구들을 생각해서라도 감성 보단 이성에 충실해 자신의 삶을 강하게 이끌어갔으면 한다"고 스타를 꿈꾸는 신인들에게 조언의 말을 건넸다.

고인과 친분이 각별했던 탓에 사망으로 인한 충격이 더했던 DJ.DOC의 김창렬도 자살만큼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자신 또한 연예계 생활을 하며 은퇴를 고려해야 했을 정도로 지옥과도 같은 고비를 여러번 넘겼지만 그 순간을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대부분이었다는 게 그 이유다.

이 땅에서 여배우로 살며 남보다 몇곱절 우여곡절 많은 삶을 살았던 함소원도 멀리 중국에서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움을 표해왔다. 함소원은 비록 고인과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지만 같은 길을 걸어온 연예계 선배로서 장자연의 사망 소식이 결코 남일 같지 않았다고 했다.

1997년 함소원은 미스코리아 대회를 통해 연예계와 연을 맺었다. 이후 그녀는 영화 '색즉시공'을 통해 연기자로 이름을 알렸고, 가수로 무대에 오르며 활동폭을 넓혀갔다. 용기를 필요로 했던 '누드집' 촬영으로 수많은 악플에도 시달려본 기억이 있다. 그 과정에서 유명세라 치부하기엔 너무 가혹했던 'H양 동영상' 파문도 겪었다.

함소원은 "연예인으로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며 "하물며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은 더하지 않겠느냐. 신인 때는 누구나 힘들다. 지금 성공한 톱스타들 대부분도 그런 시기를 겪었고 나 또한 그랬다"는 말로 신인시절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함소원은 '미스코리아'라는 타이틀 덕에 그래도 여느 신인보다는 비교적 좋은 조건에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래 연기자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 그로 인한 두려움, 초조함만큼은 피해갈 수 없었다. 그 사이 무수히 많은 실패도 경험했다.

함소원은 "'색즉시공'을 통해 연기자로 데뷔하기 전 무려 200번 이상 오디션에서 떨어졌고 가수 데뷔를 위한 오디션에선 '가수 하지 말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신인시절의 이 같은 어려움은 연예인으로 사는 일의 고통, 그 시작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함소원은 연예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싶은 후배 신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 첫번째가 연예인으로 살 정신적, 육체적 무장을 하라는 것이다. 함소원의 말에 따르면 연예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가 힘든 직업이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역할에 따라 주어진 인생을 살아야 하고 또 쉬는 동안에도 철저히 대중에 노출된 삶을 산다. 이러한 삶은 피할 수 없는 연예인의 숙명이기도 하다.

함소원은 일단 연예인이 되기로 마음 먹었으면 막연한 환상을 갖고 연예계를 대할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고통, 육체적인 고통을 어느 정도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기, 노래 등 실력을 쌓는 일은 그 다음이다.

공인으로 살 준비가 됐다면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는 일도 중요하다. 친구들과의 수다도 좋고, 운동도 좋다. 심적으로 약해졌을 때 정신적으로 지주가 될 수 있을만한 사람을 곁에 두는 것도 신인시절 어려움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전인화는 결혼 후 남편 유동근이 어려울 때 의지가 되는 정신적 지주가 되어줬다고 한다. 같은 연기자라 배우의 심리 상태를 잘 알고 있어 누구보다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의지의 대상이 종교여도 좋다. 친구 최진실을 잃은 정선희 이영자 홍진경 등이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마음을 추스리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성공한 스타들의 과거 고생담을 찾아보며 의지를 다지는 것도 신인시절 어려움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세계적인 톱스타 제니퍼 로페즈의 성공적인 데뷔 앨범 '온 더 식스(On The 6)'에 얽힌 이야기 등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배우에 가수로 대성공을 거둔 제니퍼 로페즈는 데뷔 전 지하철 6호선을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무수히 많은 오디션을 치러냈다. 지하철 6호선은 그녀의 땀과 노력의 시간이 묻어 있는 추억의 공간이고 제니퍼 로페즈는 첫 결실을 얻는 순간 '온 더 식스'라는 타이틀로 지나온 시간을 위로하는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자축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아무 것도 없는 'O'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자신이 활동하는 공간에서 '1의 기록'을 만들어내길 꿈꾼다. '이제 시작이다'가 아닌 '최고가 되겠다'는 꿈이다. 하지만 그러한 '1의 기록'을 갖기까지 '0의 시절'은 필수다.

연예계 스타들은 신인들에게 삶에 대한 의연함과 함께 일에 대한 굳은 심지,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 찾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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