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2003년 SBS 오락 프로그램 '야심만만'. 패널로 출연한 신정환이 갑자기 MC 강호동에게 이렇게 말했다. "루머하면 호동씨잖아." 스튜디오는 뒤집어졌다. 당시만 해도 연예인의 루머는 방송에서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그리고 4년 후인 2007년. 강호동은 MBC '무릎팍 도사'에서 아예 루머의 상대역이었던 이승연과 즉석 통화를 하며 허황했던 괴소문을 두고 흉금을 털어놓았다.
해가 갈수록 과감해지고 솔직해지는 오락 프로그램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장면. 그리고 또 2년이 흐른 지금 더욱 용감해진 일부 연예인들의 발언은 선을 넘는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상대방에 대한 비방, 비속어 또는 욕설, 성적 농담 등이 그렇다. 관건은 7~8시간, 심하면 1박2일에 걸쳐 이뤄지는 녹화 내용을 PD들이 어떻게 1~2시간 분량으로 편집하느냐에 달려 있다.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발언에 대한 편집의 기준, PD들은 이렇게 말한다.
◆잘난 사람 비하는 괜찮지만…
'야심만만' 최영인 PD는 "얼마 전 방송에서 연예인 A씨가 '주유소에서 기름 넣는 사람에게 무슨 대학 나왔느냐고 물어보지는 않지 않느냐?'고 했는데 편집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부자를 욕하는 건 괜찮아도 그렇지 못한 사람이 비하된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위험하다는 것. 신체적 특징, 성적 정체성, 사회적 신분 등을 소재로 농담을 해도 경계 수위를 높여야 한다.
MBC '일밤―세바퀴'의 박현석 PD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남성에 비해 약자로 여겨지는 주부 출연자들이 남편을 세게 비난하는 건 유쾌하게 받아들여진다"며 "하지만 강자가 약자를 공격하는 분위기가 된다면 자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욕설은 무조건 편집이 원칙
최근 신정환이 KBS 2TV 오락 프로그램 '상상플러스'에서 '개XX'라고 언급한 것이 방송된 것과 관련, 오락 프로그램 PD들은 "제작진의 완벽한 실수"라고 입을 모았다. 박 PD는 "우리도 녹화 중에 분위기 가라앉으면 일부 연예인이 'X같네' 등의 욕설을 일부러 하면서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그건 당연히 편집된다는 전제하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MBC '황금어장'의 여운혁 CP는 "일부 연예인들은 녹화된 자신의 발언이 마음에 안 들면 일부러 끝에 욕을 해서 방송에 못 나가게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임마", "자식아" 등은 제작진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말들. 여 CP는 "맥락에 따라 아주 친근한 호칭이 될 수도 있지만 욕설로 이해될 수도 있는 말"이라며 "이런 말이 나오면 앞뒤 상황을 잘 살펴보고 편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들도 물론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무조건 '가위질' 대상이었다.
◆성적 농담의 기준은 초등학교 1, 2학년?
박 PD는 "어린 아이들이 성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바로 알아챌 수 있으면 날려야 된다"며 "하지만 성과 관련해서는 중의적, 은유적 표현이 많지 않느냐?"고 했다. 여 CP는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과 같이 TV를 봤을 때 민망하지 않을 수준에서 성적 농담 수위를 조절한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까지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은유인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게 문제다.
◆출연자가 편집 원해도 방송 나가기도
출연자가 녹화 중 자신의 발언을 뒤늦게 후회해 편집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삭제된다. 하지만 너무 재미있는 장면이라면? 결국 전파를 탄다. 오락 프로그램 PD들은 "출연자가 빼달라고 해도 끝내 방송에 내보내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공격적 질문, 비방성 발언에 대해 해당 출연자가 기분 나빠하며 편집을 요청하면 100% 삭제가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