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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9일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취임 기자회견에서 밝혔던 철학이다. 이땐 이 말이 무실점 경기 0회를 의미할 줄은 몰랐다.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7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4강에서 요르단에 0-2로 무릎을 꿇었다.
결승 진출에 실패한 한국은 1960년 이후 64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 도전 꿈도 물거품이 됐다. 또 2004년 7월 요르단과 첫 대결을 펼친 이후 20년 만에 첫 패배를 당했다. 상대 전적은 3승 3무 1패가 됐다.
반면 한국을 꺾은 요르단은 사상 최초로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오는 11일 오전 0시 이란-카타르 승자와 아시아 정상 자리를 두고 다툰다.
클린스만호는 공격, 미드필더, 수비에 걸출한 스타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공격에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미드필더에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이 있다면 수비엔 단연 김민재(바이에른 뮌헨)가 버티고 있다.
축구계엔 ‘공격을 잘하는 팀은 승리하고 수비를 잘하는 팀은 우승한다’라는 격언이 있다. 그만큼 김민재를 보유한 한국은 창 못지않은 강력한 방패로 아시안컵 우승을 노렸다.
한국은 아시안컵 이전 A매치에서 7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회에 임했으나 조별리그 첫 경기 바레인전부터 실점했다. 상대와 무관하게 첫 경기의 어려움이 있고 승리했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2차전부터 문제점은 심각해졌다. 요르단의 빠른 공격에 휘청였다. 결국 2골을 내주며 패배 위기까지 몰렸으나 겨우 무승부로 체면치레했다. 3차전은 두 눈을 의심하게 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 23위인 한국이 130위 말레이시아에 무려 3골을 내줬다. 말레이시아가 이전 2경기에서 한 골도 넣지 못했던 걸 고려하면 더 참담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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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너먼트에선 한술 더 떠 선제 실점이 반복됐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16강전과 호주와의 8강전, 요르단과의 4강전까지 모두 먼저 골을 내주며 끌려갔다. 사우디와 호주를 상대론 극적인 역전승으로 위기를 모면했으나 더는 통하지 않았다. 공세를 늦추지 않은 요르단엔 쐐기골을 얻어맞고 주저앉았다. 조현우(울산HD)의 연이은 선방이 없었다면 실점이 크게 늘어날 수 있었다.
경기 후 요르단의 후세인 아모타 감독 역시 “한국은 지난 5경기에서 8골을 내줬다”라며 “우리가 골을 넣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라고 한국 수비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실 아시안컵 이전 A매치에서 무실점을 이어올 때도 수비 불안은 지속해서 노출됐다. 김민재와 김승규(알샤바브)의 선방 등으로 겉보기에 좋은 기록만 남겼다. 상대 동기부여가 뚜렷한 대회에선 민낯이 드러났고 경기를 거듭해도 세부적인 수비 전술은 나타나지 않았다.
공격 작업을 위해 양 측면 풀백을 지나치게 올렸고 그 빈 자리를 중앙 미드필더 한 명이 메우게 하며 균형이 어긋났다. 수비 상황에서도 간격 유지에 실패하며 불안한 모습을 반복했다.
요르단전을 앞두고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 아랍권 기자는 황인범(즈베즈다)에게 8실점 이상 한 팀이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황인범은 “실점을 많이 했음에도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팀이란 걸 보여드리겠다”라며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고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한국의 아시안컵 기록은 6경기 11득점 10실점. 무실점 경기는 한 차례도 없다. 기록만 봐선 우승에 도전하는 팀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누구나 노릴 수 있는 클린스만호의 골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