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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최은희가 1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의 장남 신정균시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어머니께서 오늘 오후 신장투석을 받기위해 병원에 갔다가 세상을 떠나셨다”다고 전했다. 2006년 전 남편 故신상옥 감독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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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생 故최은희는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이후1947년 ‘새로운 맹서’를 통해 영화계에 발을 딛었고 ‘밤의 태양’, ‘마음의 고향’등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1950∼60년대 트로이카로 떠오른 고인은 1976년까지 130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생전 한국 영화계의 산증인이자 은막의 스타로 불렸다.
고인은 또한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상옥 감독과 사랑에 빠진 그는 1954년 결혼한 뒤 함께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부부가 만든 ‘꿈’(1955), ‘젊은 그들’(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등의 영화들은 전쟁이후 한국 영화사 발전에 큰 영향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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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신 감독과 이혼한 고인에게는 또다른 영화가 펼쳐졌다. 1978년 1월 홀로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됐고, 이후 신 감독도 그해 7월 납북돼 두 사람은 1983년 북한에서 재회한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년), ‘사랑 사랑 내 사랑’(1984년)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또한 고인은 북한에서 만든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는 한국인 최초 해외영화제 수상으로 기록돼있다.
한국으로 돌아 온 고인은 극단 ‘신협’ 대표로 취임했고 2002년 뮤지컬 ‘크레이지 포 유’를 기획하며 연기와 문화 예술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일생을 영화와 문화 발전에 공헌해 온 고인의 열정과 굴곡진 삶은 후배 영화인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19일 오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