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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팔 가득 불에 덴 자국이 여럿 있었다. 표정은 밝았다. 치열했던 지난 1년을 말해주는 영광의 상처였다. KBS2 공채 탤런트 출신인 황인혁은 지난해부터 부천에서 식빵 전문 베이커리를 운영하고 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배우로 활동하다 2003년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이 됐다. 2013년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이름이 오르내렸다. 모두 과거형이 됐다. 열정적으로 ‘빵 철학’을 쏟아내는 그의 얼굴엔 푸근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지난일 털고 제빵 사업가로
황인혁은 2013년 과거 제자였던 A씨와 법적 공방을 벌였다. 그의 인생을 뒤흔든 사건 중 하나였다. 형사 사건에선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민사 소송 끝에 승소했다. 억울함을 벗었지만, 현실은 암담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상담하러 오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가족이 있는 가장이지 않나. 가족 모두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 마침 둘째 아들이 태어난 시점이었다.
제빵은 우연한 기회였다. 사촌동생이자 유명 제빵사인 황인상 씨의 도움이 있었다. 황인상 씨는 황인혁에게 제빵 기술을 전수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평소 요리를 좋아해 한식·일식·중식을 섭렵하던 황인혁이었다. 그는 빠른 속도로 가르침을 흡수했다. 그는 당시를 “죽기 살기로 배웠다”고 설명했다.
“원조 메뉴는 1~2개인데 자력으로 총 12가지 맛의 식빵을 개발했어요. 야채 식빵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전쟁을 치르듯 만들었죠. 준비 중인 것을 합치면 20개 정도입니다. 공장이 오전, 오후 2교대로 돌아가요. 제가 꼭 있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루에 4시간 이상 잘 수가 없어요. 밤샘한 날도 많았죠.”
◇일 매출 200만원까지…“전국구 노린다”
출발은 소규모 카페였다. 기본적인 기기만 갖춰놓고 아르바이트 아주머니와 빵을 팔았다. 당일 생산,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고급 재료를 고수했다. 흔한 전단지 한 번 돌리지 않았다. 입소문을 타고 동네 명물이 됐다. 얼마 후 대형할인매장에서 입점 제안이 들어왔다. 그렇게 7월 기준 총 3개 지점을 보유하고 있다. 직원은 총 14명으로 늘었다.
“처음 시작한 카페는 하루 매출 200만원 전후입니다. 이곳(세이OO)과 인연을 맺었으니까 전국 전 지점에 다 입점하고 싶어요. (웃음) 더 잘되면 함께 고생한 직원들 급여도 올려주고, 사회에 환원하는 기회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배우로, 무속인으로 살았던 그다. 제빵인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물으니 “직접 만든 빵을 맛있다고 해줄 때 즐겁다”고 웃었다.
“개인이 운영하는 빵집이 많이 사라졌어요. 동네 곳곳까지 대기업 빵집이 자리 잡았거든요. 이 동네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살아남으려고 무던히 노력을 많이 했어요.”
◇삶의 원동력은?…역시 가족!
황인혁의 아내는 SBS 톱탤런트 출신 이승민이다. 슬하에 딸(6)과 아들(3)을 두고 있다. (반려견 이름은 ‘빵’이다.) 평범한 가장처럼 그의 스마트폰에는 두 자녀의 사진으로 가득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빵점 아빠’가 됐다”고 했지만, 가족은 그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아빠와 함께 빵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둘째 아들의 깜찍한 장래희망처럼 말이다.
“빵을 만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건 역시 아이들이죠. 아빠로서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해주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방송에 대한 꿈을 남겨 놨다. “방송은 한 번 맛보면 어쩔 수 없다”는 그는 “지금은 사업에 집중하겠지만, 언젠가 방송도 재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 이승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내는 꾸준히 제안을 받고 있다. 본인도 열정이 강하다. 기회가 있다면 지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힘들던 시기, 아이들과 아내가 절 바라보고 있단 생각 하나로 버텼어요. 힘들다고 해서 거기서 끝이 아니거든요. 길을 가다 보면 평지도 나오고 산도 나와요. 그때 힘든 길을 만난 거예요. 가다보면 또 평지가 나옵니다. 용기를 잃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