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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소 같은 노인과 사람 같은 소의 '황혼 사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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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기자I 2009.01.15 10:48:32

[조선일보 제공] 전생에 얼마나 게으름을 피웠기에 이 소는 마흔 살이나 살게 되었을까. 그것도 하필 한국하고도 경북 봉화 산골에서 팔십 평생을 우경(牛耕)만 고집해온 노인과 함께. 노인은 소를 몰고 끌며 9남매를 가르치고 키웠다. 이제 둘 다 번다(煩多)한 삶에서 퇴장을 앞두고 있다.

15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는 오래된 육체노동에 대한 헌사(獻辭)이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만가(挽歌)다. 그리고 노인과 소, 두 주인공의 헌신적 교감에 바치는 에필로그다. 이 영상물을 추천하는 까닭은 이런 일이 실제 벌어졌고 카메라가 그때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소가 보통 15년을 산다는 것에 비추면 이 소는 워낭(소 턱 밑에 다는 방울)을 너무 오래 달았다. 최원균(81)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이 소가 끄는 달구지를 타고 나가 논밭 일을 했다. "소를 타고 장(場)에 갔다가 잠이 들었는데 깨보니까 집에 왔더라"는 노인의 말처럼 소는 노인의 일부가 됐다. 노인은 소가 먹고 탈 날까봐 농약도 안 치고, 매일 꼴을 베고 쇠죽을 끓인다.

그런데 그 소가 "잘 해야 1년 살 것"이란 진단을 받는다. 노인은 웃으며 "안 그래!" 했지만 고개를 돌릴 때 눈빛이 어둑하게 꺼진다. 그리고 노인도 아프기 시작한다.

2005년 촬영을 시작했을 때 이미 소는 지팡이 없인 걷지 못하는 노인과 보폭이 거의 같다. 새로 들어온 젊은 소에게 외양간을 빼앗기고, 젊은 소 먹을 꼴을 져 나를 때도 늙은 소는 워낭만 달그랑거린다. 혈기 방자한 젊은 소가 고장난 트럼펫처럼 울어댈 때 늙은 소는 무반주 첼로 조곡처럼 굵고 낮게 운다.

노인은 "일을 그만하고 쉬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의사의 경고에도 매일 소를 끌고 밭에 나간다. "살아 있으니까 꼼짝거려야지. 죽을 때까지는"이란 노인의 말은 소에게 하는 말로 들린다. 2006년 12월 소는 끝내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다. 노인은 비로소 코뚜레와 워낭을 풀어준다. "좋은 데 가거래이" 하는 노인의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소는 피곤한 머리를 영영 떨군다.

할머니 이삼순(78)씨에게 노인과 소는 거의 같은 존재다. 말도 없고 매일 똑같은 일만 한다. 할머니가 고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열여섯 살에 가마 타고 80리를 와서 영감도 저런 걸 얻어가지고" 하는 푸념과 "저 놈의 소새끼가 죽든지 해야 팔자가 펼 텐데" 하는 혼잣말은 두 존재에 대한 애정을 자백하는 반어법이다. 라디오가 고장나자 "라디오도 고물, 영감도 고물"이라며 키득거릴 때는 귀엽기까지 하다.

방송 다큐멘터리 출신 이충렬 감독은 인위적으로 감상을 자극하지 않는다. 영화는 늙은 소의 고단한 걸음처럼 느리게 진행되지만 지루하지 않다. 마지막 장면도 감정을 치밀어 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늙은 소처럼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한국 최초로 미국 선댄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해 진출했다.

▶전문가 별점

·사람과 소 사이의 우정과 침묵에 관하여, 삶의 또 다른 방식에 관하여. ★★★★

이상용·영화평론가

·소리치지 않지만 외침이 되어 돌아오는 인생만사. ★★★☆

황희연·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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