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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삼우기자] “축구 교도소에 들어 와 있어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네덜란드 에인트호벤 소속이던 2005년 5월, 네덜란드에 찾아간 한국 기자에게 한 말이다. 축구 외에 다른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기 힘든 환경이 마치 교도소와 같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1개월 뒤 박지성은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한국인으로서 첫 프리미어리거로 탄생한 것이다. 교도소와 같았던 2년여의 네덜란드 생활을 모범수처럼 인내하고 극복한 결실이었다.
지난 28일 이천수(네덜란드 페예노르트)가 그 축구 교도소에서 갑자기 귀국, 온갖 억측을 낳고 있다. ‘두 번의 실패는 없다’고 호기롭게 외치고 네덜란드로 떠난 지 불과 2개월 만이다. 페테르 보쉬 페예노르트 기술이사는 현지 언론을 통해 두통과 향수병 때문이라고 귀국 이유를 설명했지만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외로운 네덜란드 생활을 견디지 못해 K리그 복귀를 추진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처리해야 할 말 못할 문제 때문에 네덜란드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의 에이전시인 IFA 스포츠는 보도자료를 통해 “감기와 장염 등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구단의 허락을 받고 2주간 휴가를 온 것일 뿐 K리그 복귀설 등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으나 정황상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
축구 교도소에서 그가 부딪혔을 고통을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보다 우려가 더 크다. 명쾌하게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국내외 언론에서 거론한 귀국 이유를 따져 보면 더욱 그렇다. 향수병, 외로움 등은 그가 스페인에서 이미 겪었던 바다. 페예노르트로 떠나기 전 그는 그런 어려움을 예상하면서 한번 경험한 일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박지성을 비롯, 이영표(토트넘) 설기현(풀럼) 이동국(미들즈브러) 등 해외에 진출한 선수들이면 누구나 한번은 극복해야 할 어려움들이다. 불과 2개월 만에 다시 외로워서, 향수병 때문에 2주간의 휴가를 얻어야 할 정도라면 과연 앞으로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그리고 국내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고 한국에 다시 오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잉글랜드 진출을 노리다 막상 네덜란드에 가니 실망감이 컸다”고 했다는 그의 말은 걱정을 더욱 크게 하게 한다. 이 말은 바로 외신이 인용, 보도했다. 페예노르트 구단 관계자는 물론 네덜란드 축구팬들이 그의 이런 생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K리그에 온 용병이 향수병 때문에 불과 2개월 만에 고국에 돌아가 K리그가 실망스럽다고 했다면 그 구단 관계자와 팬들이 돌아온 그를 어떻게 바라볼지 같은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천수는 몸과 마음을 추스린 뒤 다음 달 11일 출국할 계획이라고 한다. 축구 교도소로 스스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교도소 생활이 이전보다 더 힘들 것이라고 각오해야 한다. 이제는 같이 수감된 동료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지성은 축구 교도소를 이야기하면서 이런 말도 했다. “에인트호벤에서 세계적인 팀들과 많은 경기를 가지면서 리그의 크기가 아니라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으로 갈아 입은 비슷한 시기, 스페인에서 실패의 쓴 맛을 본 이천수는 고개를 숙이고 K리그로 돌아왔다. 꿈은 높고 클수록 좋지만 현재 환경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 꿈은 그저 공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