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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에 선 채 시상대로 향한 임애지는 환한 미소로 관중에게 인사했다. 바로 뒤에 있던 방철미는 다소 굳은 표정이었다.
메달 수여자로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장훙(중국)이 등장했을 때도 두 선수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환한 표정의 임애지와는 다르게 방철미는 굳어 있던 얼굴을 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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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애지와 방철미는 지난 4일 준결승전에서 패배해 동메달을 확정한 지 나흘 만에 메달을 받게 됐다. 이번 대회에서 남북한 선수가 같은 색깔의 메달을 따는 것은 여자 복싱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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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위 관계자와 가까이 서 있던 임애지는 삼성 스마트폰을 건네받고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과 함께 ‘빅토리 셀피’를 찍었다. 임애지와 창위안, 아크바시는 메달을 들고 촬영에 임했지만 방철미는 무덤덤한 모습이었다.
다만 촬영을 위해 모든 선수가 시상대 중앙에 올라야 하는 순간 임애지가 바로 올라가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먼저 위쪽에 있던 방철미가 손짓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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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런 분위기에서 내가 ‘언니’라고 부르면 오히려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며 “제가 더 다가가면 안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호상 한국 복싱대표팀 감독은 “시상식에 오기 위해 우리와 북한 선수단 둘만 버스에 탔다. 북한 지도자가 쳐다보니까 선수가 말을 못 하는 것 같더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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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메달 소감에 대해 임애지는 “파리 올림픽에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아서 행복했다. 관중 함성을 들으며 더 힘을 얻었다. 올림픽같이 축제를 즐길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방철미는 “1등을 하자고 생각하고 왔지만, 3등밖에 쟁취하지 못했다. 올림픽은 여느 경기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큰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과는 바라는 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남북 선수가 올림픽 동메달을 딴 소감’을 물었을 때도 둘의 답변은 갈렸다.
임애지는 “지금은 (남북이) 나뉘었지만, 같이 힘을 내 메달을 따서 좋았다. 다음에는 (방철미와) 결승에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한 반면 방철미는 “선수로 같은 순위에 선 것에 다른 것은 없다. 다른 감정이 전혀 없다”고 했다.
‘집에 메달을 가져가면 누구에게 가장 먼저 걸어주고 싶나’라는 질문에 임애지는 “파리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도움받은 사람이 너무 많다. 만나는 사람 다 한 번씩 걸어줄 것 같다”고 답했으며 방철미는 “동메달이 내가 바라던 그런 것(금메달)이 아니니까 별로 소감이 가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 일본 기자가 ‘준결승 끝나고 임애지 선수가 시상식에서 방철미 선수를 안아주고 싶다고 말했는데 안 보이는 곳에서 실제로 안아줬는가’라고 묻자 임애지는 한참을 답하지 못하고 “비밀로 하겠다”고 말했다.
해당 답변이 끝나자 방철미는 임애지와 눈이 마주쳤고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번 대회에서 임애지가 낸 성적은 한국 여자 복싱 최초의 올림픽 메달로 기록됐다. 값진 동메달을 거머쥔 임애지는 한순철이 런던 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이후 12년 만의 올림픽 메달을 안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