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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삼우기자] 핌 베어벡 국가대표팀 감독의 발언이 연일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일 네덜란드전 후 ‘김두현(성남 일화)이 최악이었다’ 질타하고, K 리그의 빡빡한 일정을 두고 ‘어리석은(stupid) 리그 운영’이라고 비난한 데 대해 성남의 김학범 감독과 프로축구 관계자들이 날선 반응을 보인데 이어 이번에는 ‘아시안컵 4강에 들지 못하면 사퇴를 고려하겠다’는 발언을 놓고 축구계가 들끓고 있다. ‘월드컵 4강까지 이룬 한국축구를 우습게 본다’는 인식이 바탕이다. 아시안컵 정도면 적어도 우승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베어벡 감독이 최근 아버지의 심근경색 발병 소식에 신경이 날카로워 진 탓에 이런 발언이 나오고 또 맥락이 잘못 이해되고 있는 것으로 해명하고 싶어 한다. 협회의 설명을 모두 다 납득할 순 없으나 베어벡 감독의 발언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또 그동안 그의 가슴에 담아뒀던, 하고 싶었던 말들로 볼 수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그의 베어벡 감독 발언의 배경과 진실을 살펴보자
▲김두현의 오늘 플레이는 최악이었다.(6월 2일 네덜란드전 후)
김학범 감독이 가장 반발한 발언이었고, 축구인들도 특정 선수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에 대해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선수 개인을 이렇게 공격할 경우 선수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을뿐더러 감독과 선수의 신뢰관계를 깨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김 감독은 “김두현이 들어간 후 팀 전체의 플레이가 좋아졌다. 그런 식으로 대표팀 경기를 운영하는 것이야말로 멍청한 일”이라고 되받아쳤다.
하지만 김두현에 대한 베어벡 감독의 발언에는 그 나름의 배경이 있다. 우선 이날 김두현의 플레이는 김 감독의 말처럼 뛰어나지 못했다는게 이날 경기 후 대체적인 평가였다. 김두현 스스로도 이를 인정하기도 했다. 김 감독의 김두현에 대한 평가는 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뜻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김두현 이야기는 베어벡 감독이 먼저 끄집어 낸 게 아니었다. 기자회견에서 ‘김두현을 좀 더 빨리 투입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질책성 질문이 나오자 김두현의 플레이에 불만이 많았던 베어벡 감독이 발끈한 것이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이와함께 이러한 질책도 돌발적인 것만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공교롭게 베어벡 감독은 전날 공식 기자회견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김남일과 대화를 나누다 네덜란드에서 감독이 선수를 질책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감독이 선수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식석상에서 질타를 하기도 하는데 다만 선수에게 이를 미리 알려 준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감독이 곤란한 처지에 빠지기도 한다고도 했다.
협회 관계자는 네덜란드전 후 베어벡 감독은 라커룸에서 김두현을 꾸짖었고, 또 이를 언론에 이야기할 것이라고 미리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김두현도 이 상황을 수긍한 것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또 베어벡 감독은 김두현을 이야기하면서 K리그 일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는데 이는 평소 그가 가진 K 리그 일정에 대한 불만을 김두현을 매개로 터뜨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시즌과 같은 K 리그 운영은 어리석은 짓이다(6월 2일 네덜란드전 후)
이는 다른 해석이 필요없는 베어벡 감독의 솔직한 심정이다. 베어벡 감독은 당시 “K리그는 지난 3개월 동안 팀 당 22경기를 소화했다. 감독 부임 후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소진되는 것을 처음 봤다”며 “이번 시즌과 같은 K리그 운영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 어리석은(stupid)이라는 원색적인 용어까지 동원됐다.
그는 영국의 축구 프리랜서 존 듀어든과의 인터뷰에서는 “매주 수요일 밤마다 경기를 치르는 것은 정신나간 짓(crazy)”이라면서 “이는 선수들보고 죽으라고 하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고 더 강하게 말했다.
베어벡 감독은 “K리그를 보다보면 내가 뽑은 대표선수들이 얼마 전까지 내가 알던 선수가 아닌 경우가 많다. 대표 선수 뿐만 아니라 모든 K 리그 선수들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다. 노마크 찬스에서 골을 못 넣고, 패스도 부정확해지는 등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선수들은 무척 피곤한 상태고 지도자들도 선수들의 기량을 발전시킬 기회를 얻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주말에는 정규리그, 주중에는 컵대회를 치르는 이번 시즌 K리그 일정은 베어벡 감독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프로 감독들도 비슷한 불만과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선수들의 부상 속출, 경기력 저하 현상이 실제 그라운드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네덜란드전 패배와 김두현의 발언과 맞물려 나오면서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미 알고 있는 일정을 이제 와서 이야기하는 까닭이 뭐냐’는 비아냥도 있지만 베어벡 감독은 “감독 계약을 하면서 컵 대회 일정에 대해 전혀 들은 바가 없어 화가 났다”고 밝혀 그가 훈련 계획을 구상할 때 미처 예상치 못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유럽 프로리그의 일정도 이렇게 빡빡하지 않느냐는 반박에 대해선 베어벡 감독은 ‘유럽 팀들은 컵 대회를 주로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무대로 활용하지만 K리그 감독들은 주위의 기대 때문에 매 경기 최고의 팀으로 임하는 게 문제’라고 여기고 있다. 여기에 수준 높은 선수들이 많은 유럽과 아직 훈련을 통해 기량을 향상시켜야 할 어린 선수들이 많은 한국과는 다르다는 생각이다.
▲아시안컵에서 4강에 들지 못하면 감독직 사퇴를 고려하겠다(6월 6일 UAE전 후) 축구협회는 이 발언의 진의가 잘못 전달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처음 이 말이 나온 것은 존 듀어든과의 인터뷰 때였는데 베어벡 감독은 “우승이 목표다. 적어도 4강 이상의 성적을 올려야 한다”며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협회에 찾아가 다른 감독을 알아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요지의 말을 했다.
나름대로 강한 각오를 밝힌 것이고 UAE전 후에는 이 발언의 진위를 확인하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학범 감독을 비롯 축구인들은 “4강에 못올라가면 사퇴는 당연하다. 한국축구를 8강 또는 16강권으로 낮잡아 보는 것 아니냐”고 못마땅해 하고 있다. 또 협회의 해명과 달리 베어벡 감독은 “우승을 목표로 대회에 참가하지만 한국이 지난 47년 동안 아시안컵을 들어 본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승이 현실적인 목표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고 듀어든과의 인터뷰에서 밝혀 스스로 확신이 없는 듯한 모습도 읽힌다. 축구인들이 못미더워 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한국 축구의 위상을 되돌아 볼 필요는 있다. 베어벡 감독의 말처럼 한국은 지난 1960년 국내에서 열린 제 2회 대회 우승이후 한 번도 아시안컵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더욱이 2002년 월드컵 4강 멤버인 박지성, 김남일, 설기현, 이영표, 안정환, 이운재 등이 출전한 2004년 중국 대회에서도 한국은 8강에 오른 게 고작이었다.
월드컵 4강을 잣대로 생각하면 아시안컵 우승은 하지 못하는게 오히려 이상하지만 한국축구는 여전히 일본 그리고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세와 겨루는 아시아 무대에서 우승을 장담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월드컵 4강은 프로구단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장기합숙 및 강호들과의 계획된 평가전 등 특별한 환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물론 베어벡 감독의 환경과 현실을 이렇게 따지고 보면 이해할 여지는 있으나 철저하게 계산된 발언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나갔던 전임 거스 히딩크 감독과 아드보카트 감독과 비교하면 아쉬운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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