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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주요언론들은 1일 이노키가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노키는 그동안 희귀 난치병인 ‘전신성 아밀로이드증’을 앓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밀로이드증은 대사 장애로 인해 아밀로이드가 온몸 여기저기에 쌓이는 병이다. 2~3일 전부터 저혈당으로 자택에서 요양 중이었지만 이날 아침 상태가 악화돼 끝내 숨을 거뒀다.
이노키는 지난 8월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다. 당시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예전의 건장하고 활기찼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얼굴과 몸은 많이 야위었고 계속된 투병으로 힘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심지어 혼자 거동하기도 힘들어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다.
1943년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이노키는 5세 때 아버지를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가업이 도산하면서 가족과 함께 브라질로 이주하게 됐다. 이후 커피 농장에서 일하면서 동시에 육상 투포환 선수로 활동했다. 마침 브라질을 방문 중이던 스승 역도산의 눈에 띄면서 스카우트됐고 프로레슬링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노키는 1960년 9월 30일 동료인 자이언트 바바와 함께 프로레슬링에 데뷔했다. 초창기에는 본명을 썼지만 1962년 ‘일본계 브라질인’ 캐릭터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안토니오’라는 닉네임을 갖게 됐다..
1972년 신일본프로레슬링을 직접 출범하면서 일본 프로레슬링의 전성기를 이끈 이노키는 1976년 6월 25일 일본 부도칸에서 당시 프로복싱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미국)와 ‘복싱 대 레슬링’ 이종격투기 대결을 펼쳐 전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이노키는 이후에도 프로레슬링은 물론 일본 격투기를 대표하는 거물로 이름을 날렸다. 1989년에는 자신이 창당한 ‘스포츠평화당’ 소속으로 참의원에 당선돼 일본 최초 프로 레슬러 출신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다.
이노키는 재일교포 역도산의 제자로 함께 생활했던 ‘박치기왕’ 김일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심지어 1960년 9월 프로레슬링 데뷔전 상대가 당시 일본에서 오오키 킨타로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던 김일이었다.
김일과 이노키는 현역 시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수백 경기를 치렀고 승패를 주고받았다. 김일이 투병 중이던 당시 이노키는 매년 한국을 찾아 치료비를 대신 내주는 등 은퇴 이후에도 뜨거운 우정을 이어갔다.
1998년을 끝으로 현역 선수에서 은퇴한 이노키는 이후 프로모터로 활발히 활동했다. 특히 북한을 30번 넘게 방문하는 등 북한과 교류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이노키는 1995년 평양 능라도 5월1일 경기장에서 프로레슬링 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4월 28일과 29일 이틀에 걸쳐 열린 프로레슬링 대회는 이노키를 비롯해 일본과 미국 선수들이 참가했다. 이틀 동안 무려 34만명 관중이 몰려 세계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다 관람객 기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