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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악의 꽃', 인간 이준기를 더 견고히 만들어준 작품" [인터뷰]①

김보영 기자I 2020.09.30 09:55:00

타이틀롤로서 유독 고민 많던 작품…완주해서 안도
"액션 10분의 1 줄이고 감정에 집중하고 싶었다"
리액션, 관계에 충실…현장에서 눈물 마르지 않아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항상 작품에 임할 때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로서 가장 최선의 이야기들을 만드는 데에 일조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어요. 이번 작품은 유독 그런 부분에서 고민이 정말 많았는데 이렇게 잘 완주한 것 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마음 뿐이죠.”

배우 이준기. (사진=나무액터스)
‘왕의 남자’, ‘마이걸’, ‘화려한 휴가’, ‘개와 늑대의 시간’, ‘일지매’, ‘아랑사또전’, ‘투윅스’, ‘조선총잡이’, ‘밤을 걷는 선비’,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크리미널 마인드’, ‘무법변호사’까지.

2001년 연예계에 데뷔한 배우 이준기는 인생 첫 스타덤에 오르게 한 ‘왕의 남자’(2005)부터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한계의 벽에 맞서 도전해왔다. ‘왕의 남자’ 공길 역과 드라마 ‘마이걸’로 ‘미녀보다 아름다운 남자’로 히트 배우 반열에 올라섰지만 안주하지 않고 ‘화려한 휴가’와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인생작을 남기며 ‘예쁜 남자’란 틀을 깼다. 이후 ‘밤을 걷는 선비’,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로 매력적인 퓨전 판타지 시대극 연기를 선보였고, ‘크리미널 마인드’와 ‘무법변호사’를 통해 어느 장르에도 구애받지 않는 ‘액체’같은 배우임을 입증해냈다.

최근 막을 내린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극본 유정희, 연출 김철규)은 데뷔 20년째를 맞이한 이준기에게 또 한 겹의 벽을 깨 준 ‘인생작’이 됐다.

이준기는 최근 이데일리와 나눈 서면 인터뷰를 통해 ‘악의 꽃’을 만난 소감과 그가 연기한 백희성과 도현수란 캐릭터를 향한 애정과 고뇌, 문채원 등 함께 호흡한 배우들과 나눈 추억들을 회고했다.

23일 종영한 ‘악의 꽃’은 사랑마저 연기한 남자와 그의 실체를 의심하기 시작한 아내, 외면하고 싶은 진실 앞에 마주 선 두 사람의 고밀도 감성 추적극을 담은 드라마다. 이준기는 극 중 연쇄살인범 아버지를 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백희성의 삶을 행세하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감정을 철저히 숨긴 채 살아온 도현수란 인물을 연기했다.

트라우마로 인한 상처와 싸이코패스의 경계를 오가는 듯한 초반의 미스터리 연기, 그 끝에 감정을 터뜨리며 물 만난 감성 연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그는 초반 3%대 시청률이었던 ‘악의 꽃’을 최종회 5.7%(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까지 수직 상승케 한 일등공신이다.

이준기는 “매 작품이 그랬지만 ‘악의 꽃’은 끝나고 나니 유독 복합적인 감정이 많이 느껴진다”고 운을 떼며 “작품을 완주했다는 안도감, 초반에 느꼈던 무게감을 무사히 완결로 승화시켰다는 성취감, 그리고 현장에서 동고동락하며 달려온 모든 분들을 떠나보냈다는 헛헛함까지 만감이 교차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종영 후 바로 인터뷰까지 진행하니 모든 것들에 그리움이 다시 느껴지는데 참 외로우면서도 많은 것들에 감사한 지금”이라고 덧붙였다.

이준기가 맡은 도현수란 인물은 도현수로서 겪어온 인생의 시련과 상처가 있지만 이를 숨겨야 했기에 백희성이란 다른 인물의 삶을 연기하며 살아온 복잡한 서사를 지닌 캐릭터다. 이준기는 “다양한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보여지는 리액션들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현수였기에 작은 표현부터 하나하나가 장면 자체에 큰 힘과 설득력을 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저 혼자 연구하고 고민한다고 해결될 부분이 아니었다”며 “이에 감독님과 작가님을 비롯해 현장에서 저를 가장 가까이서 보는 카메라 감독님, 배우 한 분 한 분과 서로의 생각들을 나누며 만들어나갔다. 자칫 잘못해서 너무 뻔하거나 단조롭게 표현되면 도현수란 인물이 단순 싸이코패스로만 보여질 수 있었기 때문에 더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을 쓰고 집중했다”고도 회상했다.

배우 이준기. (사진=나무액터스)
백희성과 도현수, 금속공예가이자 남편, 그리고 아빠. 다양한 면모를 지닌 이 캐릭터를 어느 한 면모도 엇나가지 않게 탄탄히 구축하고자 자연스러움을 구현해내려 노력했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금속공예가로 살아가는 백희성의 모습이 무엇보다 자연스러워야 했다”며 “촬영 전 유튜브로 연기에 참고할 만한 공예작업 영상들을 찾아부며 미리 상상했고 실제 금속공예가분을 만나 짧게나마 공예가의 손길이 느껴질 수 있는 디테일들을 배웠다”고 털어놨다.

이어 “따뜻한 아빠로서의 모습은 사실 애드리브가 많았다”며 “감독님께서 그냥 여러 가지를 시도해볼 수 있게 믿고 맡겨주신 것도 있지만 사실 꽤나 많은 부분들을 은하(정서연 분)와 만들어 갔던 것 같다. 은하와 함께하는 날이면 좀 더 일찍 촬영장에 가서 웬만하면 떨어져있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도 덧붙였다.

아파트 난간부터 물고문 장면까지 고난도 액션씬이 많았지만 운동을 즐기는 액션 배우답게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은 없었다고. 이준기는 “힘들고 지치기보다는 ‘내가 얼만큼의 동선을 만들고 액션을 취해야 시청자분들이 이 씬에서 오는 감정과 느낌을 오롯이 받아들이실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작품을 시작하기에 앞서 기존 제가 좋아하는 액션을 10분의 1 정도로 줄이자고 다짐했었다”며 “평소 보여드리던 액션은 상당히 많은 합이 있어서 화려하거나 거칠었는데 그런 액션이 이번 작품에선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액션보단 감정에 집중했다”고도 강조했다.

또 “처절하게 내몰리는 씬들은 대역 없이 직접 몸으로 들이받고 던져지고 부서지면서 저 스스로뿐 아니라 시청자분들이 보시기에도 더 몰입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도 덧붙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과 명대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현수가 처음으로 감정을 깨닫고 오열하는 장면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며 “리허설을 할 때초자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고민이 많았던 장면이다. 완급 조절에 실패해 시청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지금까지 이어오던 전체적인 감정의 흐름을 깰 수도 있었다. 결국 수많은 고민 끝에 아이가 처음 세상을 향해 울음을 터뜨리는 듯한 모습으로 갔다. 찍고 나서도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힘들던 게 기억난다”고 회상했다.

명대사로는 “마지막 회에서 현수가 지원이에게 해 준 ’내가 더 잘해줄게요, 내가 더 좋아해줄게요‘란 대사”라며 “기억을 잃은 현수가 가슴 속 어렴풋이 남아있는 과거 지원이 내밀었던 따뜻한 사랑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두 사람의 새로운 사랑과 인생을 뜻하는 것 같아 현장에서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꼽았다.

‘악의 꽃’은 그에게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

“사실 저는 삶에 있어서 내가 성장하고 잘 되는 것보다는 내가 꿈꾸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충만함과 행복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저의 삶의 의미이자 중요한 가치구요. 그렇기에 이번 ‘악의 꽃’은 또 한 번 저에게 좋은 자양분이 되었고 인간 이준기를 한 층 더 견고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해요.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또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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