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잊혀질 뻔 했던 한 선수의 은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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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우 기자I 2013.10.05 12:16:47
최동수.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지난 2001년 3월, 진주에 차려진 LG 캠프. 훈련을 위해 몸을 풀던 선수들 중 기자의 눈에 유독 남다른 얼굴을 한 선수가 들어왔다. 퉁퉁 부은 얼굴에 벌개진 눈. 마치 전날 밤새 술을 먹은 것 처럼 보였다.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저러니 여태까지 1군에서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했겠지…’

하지만 얼마 후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얼굴 뿐 아니라 목덜미 까지 부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이유를 물으니 제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아프다는 표시만 겨우 할 수 있었다.

며칠 후 이유를 듣고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의 포지션은 백업의 백업 포수였다. 2000년 시즌이 끝난 뒤엔 방출 대상 명단에 들었다 겨우 빠진 선수였다. 당장 볼 받아 줄 포수가 부족하다는 것이 생명연장의 이유였다.

그렇게 살아 남은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럴 수록 그는 절실했다.

부상을 당한 이유도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탓이었다. 연습경기서 불규칙 바운드로 튄 투수의 공을 몸으로 막아내려다 그만 목에 정통으로 맞았다. 밤새 구역질이 올라왔고 목은 물론 얼굴까지 부어 올랐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프다는 말은 곧 2군행을 뜻했기 때문이다. 그때 2군에 내려갔다면 다시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게 1년을 보내면 또 다시 방출 위기에 놓일 수 있었다.

하늘도 그의 진심을 알게 됐기 때문일까. 그에게 기회가 왔다. 주전급 포수 중 한명이 부상을 당하며 1군에 남아 있을 수 있게 됐다. 경기엔 자주 뛰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매일의 훈련에 임했다.

팀 성적은 바닥을 기었다. 오래지 않아 감독이 교체됐다. 새 감독은 2군에서 그를 가르쳤던 지도자였다. 그를 꾸준히 지켜봐 왔던 새 감독은 자꾸 기회를 주기 시작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준비해왔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LG 최동수는 그렇게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조금씩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LG는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한 팀이었다. 개인 성적 이상의 사랑을 팬들로부터 받았다. 최동수는 그런 사랑에서 빗겨있던 선수였다. 주목받은 적이 없으니 사랑 받을 기회도 없었다. 그만큼 팬들은 그의 실수나 실패에 냉정했다.

하지만 최동수는 경기에 뛸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래서 매일을 열심히 살았다. 최동수는 김성근 감독이 훈련을 멈추도록 했던 LG의 유일한 선수였다.

최동수는 LG에서 늘 가장 먼저 출근하는 선수였다. 지난해까지 거의 하루도 늦지 않았다. 딱 한번 연휴가 시작되는 날에 잘못 걸려 차가 막혀 늦었을 때 그는 차 안에서 식은 땀으로 목욕을 해야 했다. 급한 마음 탓이었다. 그가 가슴 졸이며 야구장에 도착한 시간은 다른 선수들이 막 출근할 때였다. 모두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에겐 태만이었다. 남들처럼 해선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동수는 그렇게 20년을 뛰었다. 크게 화려하진 않았지만 그의 성실함은 나름의 의미있는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그를 이끌었다.

LG의 마지막 포스트시즌이었던 2002년 준플레이오프서는 MVP가 되는 영광을 누렸고, 2007년엔 규정 타석을 넘기며 생애 첫 3할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10월 5일. 11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이 확정된 친정팀 LG에서 그는 은퇴식을 갖는다. 12년 전, 먼지처럼 사라질 뻔 했던 선수가 팀의 역사를 함께 지켜 온 공로를 인정받아 박수 받으며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LG가 이기는 걸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던 선수다. 주전 선수로 제법 자리를 잡은 뒤엔 언제나 후배들을 챙기고 다독였다. 진짜 주인공들이 힘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LG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포스트시즌 기억인 1997년 삼성과 플레이오프 2차전, 서용빈(현 LG 코치)의 끝내기 안타. 당시 LG 벤치는 대타를 내려 했었다. 하지만 서용빈이 자신 있다는 의사를 표하자 감독도 대타 대신 밀어붙이기를 택했다.

그 이후엔 모두가 아는 것 처럼 서용빈의 멋진 끝내기 안타가 나왔다. 그때 방마이를 들고 덕아웃을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야 했던 선수가 바로 최동수였다. 굴욕감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끝내기가 결정된 뒤 서용빈에게 가장 먼저, 제일 빨리 뛰어간 선수가 바로 최동수였다.

야구장을 향하던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아이구 오늘은 늦었네. 이런 시간에 야구장에 나가다니….” 그때 시계는 11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보통 선수들의 출근 시간은 경기 시작 4시간 30분 전. 이날 경기는 5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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