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강수연·이장호·강우석, `우리에게 영화란···`

최은영 기자I 2011.10.09 15:06:18

`노거장에게 청해 듣다-영화란 무엇인가`
16회 BIFF 첫 오픈토크 지상중계

▲ 임권택 강수연 이장호 강우석


[이데일리 스타in 최은영 기자]국내외 스타 배우와 감독이 탁 트인 바닷가에서 영화에 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의 포문은 8일 임권택 강수연 이장호 강우석이 열었다.

이날 대화의 주제는 `노거장에게 청해 듣다-영화란 무엇인가`. "좀처럼 한자리에서 뵙기 어려운 분들을 오늘 모셨다"는 오동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소개와 진행으로 이날 노거장들과의 만남은 시작됐다. 짧게는 20~30년, 길게는 50년 넘게 영화 만을 만들고 찍어온 이들의 이야기를 지면에 옮긴다.

◇ 임권택 감독

영화계에 입문한지 55년 됐다. 이전엔 감독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6.25 한국전쟁 무렵, 부산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었다. 장사도 해봤다. 소질이 없어 밑천이 바닥날 무렵 서울에서 영화제작 일을 하는 한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촬영장에서 심부름이나 하라는 거였는데 밥은 먹고 살겠다 싶어 서울로 올라온 게 시작이었다. 해보니 좋더라. 그런 마음이 영화에 녹아 내 인생이 되고, 그런 내 인생이 또 다시 영화에 녹아드는, 그러한 순환 인생을 살고 있다.

나는 내가 찍은 영화의 시사가 끝나면 다시 꺼내 보지 않는다. 이유는 열받으니까.(웃음) 잘못된 부분이 계속해서 보이는 거다. `다음엔 기필코` 하는데도 되지가 않더라. 55년간 101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여전히 만족스런 작품이 없다.

(101편의 연출작, 제목은 다 기억하는가 라는 물음에) 음...그런 질문은 너무 크게 하지 말았음 싶다. 언젠가 TV에서 영화를 보는데 60년대 저질 영화가 나오더라. 처음보는 작품 같기도 하고, 어디서 본 듯 싶기도 했는데 끝날 무렵 보니 내가 만든 거더라. 중간부터 봐서 제목도 파악 못했다. 이렇게 (부족했던 과거는) 일부러 잊으려 애쓰며 산다.

과거 어떤 평론가가 `감독 임권택은 시행착오의 대가다`라고 평했던 적이 있다. 정확한 평가다.

◇ 영화배우 강수연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강수연 씨는 어떻게 역경을 딛고 최고의 배우가 됐나요?`다.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웬만하면 시작하지 마세요`였다. 아역배우로 연기를 시작해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배우로 거듭나며 그때마다 데뷔 당시와 같은 홍역을 치렀다. 남들은 한 번 겪는 데뷔전을 몇차례나 치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다. 앞으로도 수많은 역경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답을 못해주겠다. 한가지 조언한다면 정말 힘든 길이라는 걸 알고 도전하길, 배우 감독이 돼서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최고가 될 수 있다.

옆에 계신 임권택 감독님과는 감독과 배우를 떠나 아버지와 딸 같은 사이다. 임 감독님의 `달빛 길어올리기` 촬영 때 완성된 시나리오가 없었다. 현장에서 끊임없이 배우와 젊은 스태프들에 의견을 구해 바뀌고 또 바뀌었는데 `이래서 임 감독님의 영화가 아직도 관객에게 사랑을 받는구나` 느꼈다. 더불어 임 감독님과 같은 영화인이 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내게는 큰 어른이자 스승이다.

(멜로영화를 찍는다면 어떤 남자배우와 찍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그런 생각을 하면 억울한 마음부터 든다. 요즘 20~30대 젊은 배우들 너무 멋있고 근사하지 않나.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 이장호 감독

`영화란 무엇인가`.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질문이다. 나만해도 영화에 대한 생각이 여러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뭔지 모르고 그냥 영화를 만들었고, `별들의 고향` 시절에는 밥을 먹고 살기 위해, 돈 벌이를 위해, 인기를 위해 만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이후 4년간 활동을 못했는데 그러다보니 영화로 사회에 기여를 해야한다는 생각도 들더라. 신앙을 갖게 된 지금은 영화에 대한 생각이 또 바뀌었다. 영화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뜻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인기, 돈과는 이제 거리가 멀어졌다. 앞으로는 재미없는 이장호 영화를 보게 될 거다.

그리고 난 애초부터 돈과는 거리가 멀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제작을 하고, 내가 연출한 영화는 죄다 돈을 벌었는데, 직접 제작까지 맡은 작품은 줄줄이 흥행에서 실패하더라. `외인구단` 하나만 히트 쳤다.

그런데 요즘은 돈이 없어 다행이다 싶다. 돈이 있으면 사람이 거만해지고, 게을러지니까. 물론 강우석 감독처럼 돈이 많으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는 하다.(웃음)

(영화의 아버지는 누구냐는 물음에) 신상옥 감독님. 감독님 밑에서 조감독으로 생활을 하다가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요즘도 꿈을 꾸면 난 항상 조감독이다. 신 감독님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 강우석 감독

아주 어렸을 때부터 꿈이 영화감독이었다.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중2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극장엘 갔는데 너무 좋고 신이 났다. `저런 건 누가 만드느냐` 물었더니 감독이라더라. 이후 임권택 감독님의 `짝꿍`, 이장호 감독님의 `바람불어 좋은날` 등의 영화를 보며 꿈을 키웠다.

조감독 시절에는 에로영화를 많이 찍었고 이후 감독이 되곤 `웃겨보자` 했는데 다행히 많은 분들이 좋아해줬다. `투캅스` 이후 돈도 많이 벌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수십 편의 영화를 찍다보니 지금은 간데 없더라. 감독이 되고 에로틱한 장면은 거의 담지 않았다.(웃음)

(애주가로 알려졌는데 영화와 술은 어떤 관계인가 라는 물음에) 촬영 종료 2시간 전쯤부터 고민을 시작한다. `오늘은 뭘 마셔야 하나`. 그건 오늘 찍은 장면을 까맣게 잊고 싶어서 술의 힘을 빌리는 거다. 그래야 다음날 하얀 도화지 같은 상태에서 새롭게 촬영을 할 수 있으니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술을 못마시거나 안마시는 감독 중에 좋은 감독은 한 사람도 없다. 여기 계신 이장우 감독도 매일매일이 술이다. 임권택 감독님도 술을 끊으신 지 두 달 밖에 안됐다.

롤모델, 멘토는 이장우 감독이다. 임권택 감독님의 `짝꿍` 이후 `서편제`를 울면서 봤다. 그런데 같은 시나리오를 가지고 나보고 만들라면 못하겠더라. 그런데 `바람불어 좋은날`은 잘하면 잡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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