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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웅천 SK 코치에게 류택현(LG)에 대해 묻자 연신 감탄사가 이어졌다. 코치의 표정. 뿌듯하기도 하면서 한켠엔 뭉클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지는 듯 했다.
최근 조 코치는 자신이 갖고 있던 기록 하나를 류택현에게 내줬다. 투수 통산 최다경기 등판 신기록(813경기)이다. 류택현은 지난 13일 KIA전(814경기)에서 이 기록을 갈아치웠다.
조 코치는 "최근 경기장에서 만나서 '승리를 지키라고 내보냈더니 승리만 따내고 있냐'면서 농담도 했다. 기록이 깨진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어차피 영구적으로 가지고 있을 기록은 아니었다"며 "류택현이 대단하다는 생각만 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의 말대로 류택현은 요즘 가장 '핫'한 투수다. 최근 화제의 중심에 당당히 서있다. '인간극장'에서나 봄직한 야구 인생사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10년 9월, 팔꿈치 부상으로 은퇴기로에 섰고 고민 끝에 자비를 들여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팀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류택현은 곧 방출됐다. 재기를 못하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될 상황이었다.
당시엔 누가 봐도 무모한 결정이었다. 수술 후 재도전? 그것도 마흔이 넘은 평범한 투수가? 수술 뒤 재기를 꿈꾼다는 건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나이 마흔 둘에 보란듯이 돌아왔다.
그냥 엔트리의 한 자리만 차지하면서 기록이나 연장하고 있는 게 아니다. 마운드에 올라 자신의 몫은 확실히 해낸다. 올시즌 6경기에 출전해 6.1이닝 동안 2실점(2자책) 평균자책점 2.84. 벌써 3승이나 챙겼다. 다승 공동 선두다.
조웅천 코치 역시 류택현과 버금가는 불펜 투수계의 신화같은 존재였다. 한국 프로야구에 남긴 족적은 엄청났다. 11년 연속 50경기 이상 출장 기록은 물론 홀드 1위와 구원 1위를 모두 차지해 본 유일한 투수기도 하다. 별명 '철인'이 말해주듯 늘 묵묵하고, 꾸준하고 강한 선수였다.
그런 조 코치가 봐도 류택현은 참 대단한 사람이다. "주위에서 '다 안된다'고 말했는데 결국 해냈다. 마침 팀에 자리도 있었고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그 자리까지 꿰찼다는 건 그만큼 실력도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 나이에 정말 대단한 일이다"고 감탄했다.
조 코치는 류택현을 보며 자신의 은퇴 당시를 떠올렸다. 조 코치는 기량 쇠퇴가 아닌 어깨, 팔꿈치 부상으로 2009년 겨울, 선수생활을 접었다. 당시 은퇴 인터뷰에선 "재활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일 때 물러나야 팀과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승승장구를 하는 류택현을 바라보며 조금은 아쉬움도 남는 모양이었다.
"나는 재활을 포기하고 나왔다. 감독님이 폼도 바꿔보라 했는데 나이도 있고 솔직히 해낼 자신이 없었다. 내가 높은 위치까지 올라와 있는데, 여기서 떨어지면 쏟아지게 될 주위의 비난이 두려웠다. 기회가 왔을 때 은퇴하자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류택현의 결정과 그 노력은 더욱 대단해 보인다고 했다. 조 코치는 말을 좀 더 이어갔다.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재활을 결심했는지 정말 궁금하다. 마음이 알고 싶다. 얼마만큼의 열정이 있었던 걸까. 그를 보며 내가 당시 너무 배불렀던 것 아닐까, 내 열정이 식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쉬움은 여기까지다. 조 코치는 이제 선수들을 지도하는 코치다. 류택현이 수명이 길지 않은 후배 야구 선수들에게 귀감, 본보기가 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고 하는 모습을 많은 후배들이 배웠으면 좋겠다.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멋진 행동이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류택현에겐 든든한 응원군이 또 한 명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