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김병현이 마무리 투수로 복귀하려고 저러나?'
2일 콜로라도 로키스전서 보여 준 김병현의 피칭은 이런 당치도 않은 오해를 사기에 족했습니다. 지난달 27일 애리조나전에 이은 '시계추' 피칭의 속편이었으니 말입니다. 무려 37개의 공을 던진 1회부터 4-2로 앞선 6회 1사 1, 2루서 강판될 때까지 매 이닝 볼넷과 삼진 사이를 오가는 '극과 극' 피칭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치 마무리 투수로 복귀하기 위한 화려한 리허설을 펼치는 듯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톱타자 윌리 타베라스에게 초구에 3루 앞 번트 안타를 맞고 마쓰이 가즈오에게 우중월 2루타로 첫 실점한 김병현은 3번 맷 할러데이를 3구 삼진으로 솎아 낸 뒤 4번 타드 헬턴과 10구까지 가는 풀카운트 접전 끝에 우월 2루타를 맞고 추가 실점하면서 폭투와 몸에 맞는 볼까지 곁들인 '볼넷과 탈삼진'의 그 '불안한 이중주'에 들어갑니다.
매일 경기가 끝나면 상대 투수에 관한 메모를 꼼꼼히 하기로 소문난 헬턴은 역시 '학구파'다웠습니다. 먼저 루킹 투스트라이크를 먹고도 김병현의 코너코너 꽉 차게 들어오는 최고 91마일의 패스트볼과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모조리 커트하거나, 볼로 골라내더니 결국 10구째 88 마일 한복판 패스트볼을 두들겨 담장을 직접 맞고 나오는 1타점 2루타를 만들어 냈습니다.
헬튼에게 혼이 단단히 난 탓일까요. 김병현은 2사 후 브래드 호프를 맞추고 7번 트로이 툴로위츠키를 다시 볼넷으로 내보내며 만루에 몰렸습니다. 간신히 후속 요비트 토렐바를 몸쪽 91마일 패스트볼로 3루 땅볼로 유도해 대량 실점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이후에도 김병현의 이중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됐습니다. 볼넷 아니면 삼진, 삼진 아니면 볼넷. 오죽했으면 덕아웃에 있던 프레디 곤잘레스 감독이 2-2이던 3회 투수 코치를 제쳐놓고 뛰쳐 올라왔습니다. 선두 5번 개럿 앳킨스에게 내리 볼 3개를 던진 끝에 볼넷을 내준 직후였습니다.
경기 후 말을 들어보니 "네 공이 얼마나 좋은데 믿고 던지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김병현은 잠에서 깨어난 듯 내리 3개의 삼진을 솎아 냈습니 다. 4회 선두 9번 투수 자시 포그까지 삼진으로 솎아내 컨트롤이 돌아오는 듯 했던 김병현은 다시 자신을 가장 괴롭힌 타베라스가 나오자 또 볼넷을 내 주고 맙니다.
타베라스는 앞선 두 타석에서 모두 안타를 날리고 도루까지 성공시켜 김병현의 아킬레스건을 바늘로 콕콕 찌른 선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3번째로 2루를 훔치고 사인이 안 맞아 패스트볼에 가까운 폭투까지 유도하며 3루까지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김병현은 언제 그랬냐는 듯 후속 마쓰이를 81마일 바깥쪽 체인지업으로 루킹 삼진으로 잡고 할러데이를 91마일 1루 땅볼로 유도, 막아냈습니다.
짝꿍 포수인 맷 트레너의 적시타로 3-2로 앞선 5회에도 김병현은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더니 어김없이 위기 상황에서 올라 온 '철벽' 마무리 투수로 돌변했습니다. 1사 후 앳킨스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내리 두 타자를 삼진으로 솎아냈습니다.
플로리다의 간판 타자 미겔 카브레라의 우월 솔로 홈런으로 4-2로 앞선 6회엔 선두 토렐바에게 우중간 안타를 맞고 포그의 스리번트 실패로 10번째 삼진을 채우며 자신의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다시 타베라스를 볼넷으로 내보내며 투구수가 126개에 이르러 교체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0개의 삼진을 뽑아냈지만 4사구도 7개(6볼넷, 1몸에 맞는볼)를 내줘 데뷔 최다 투구수도 작성했습니다 .
결국 김병현은 불펜 투수들의 호투와 로키스 타선의 도움 (16삼진, 14잔루) 덕분에 경기가 4-3으로 끝나 시즌 6승과 함께 1999년 메이저리그 데뷔 후 383경기만에 통산 50승(57패) 고지에 올랐습니다 .
잘 던졌다고 하기도 그렇고, 못 던졌다고 하기도 그런 김병현의 이중주 피칭은 어디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까요.
김병현은 자의식이 강한 선수입니다. 포수 트레너에 따르면 3회 곤잘레스 감독이 뛰쳐 올라왔을 때도 "로키스 타자들이 자꾸 내 사인을 훔쳐서 타자에게 알려 준다"고 불평을 늘어 놓았다고 합니다.
로키스에 있을 땐 "말을 안하고 있으니까 나를 바보로 안다", "내가 미국 사람이면 이런 대우를 받겠느냐"는 등 불만을 품고 있다가 트레이드를 자청하고 나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이날 자신을 수렁에 빠트렸던 7개의 4사구와 그것을 극복해 냈던 10개의 탈삼진도 심리적인 것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했다고 느끼는 친정 팀을 상대로 뭔가 보여 줘야 한다는 '압박감과 오기'가 뒤섞여서 극과 극의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그러나 김병현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래도 1승, 저래도 1승'이라는 승부 세계의 평범한 진리 입니다.
▶ 관련기사 ◀
☞[한들의 친구,야구]투수와 투수의 타격 대결...그 '작용과 부작용의 법칙'
☞[한들의 친구, 야구] 김병현, 변화구 난조 퀵모션 이중고...50승 실패
☞[한들의 친구, 야구]존중돼야 할 박찬호의 선택
☞[한들의 친구,야구]김병현, 그리피 어시스트로 홈 첫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