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출발점은 주위의 롯데팬들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서 태어났으면서도 롯데팬이란 이유로 오다 가다 만나는 부산 사람만 봐도 금방 형.동생이 되고, 그들에게 술 사고 밥 사느라 늘 카드값으로 고생한다는 와이프 친구 남편. 연배가 아버지 뻘임에도 제게 “롯데 야구가 잘될 수 있는 고언을 듣고 싶다. 꼭 한번 시간 내달라”며, “저 까짓께 뭘 알겠냐”고 송구스러워 해도 뵐때마다 고개를 조아리시는 앞집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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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롯데가 이번에도 사람들 마음에 아픔을 남기게 될까? 그렇게 시작된 궁금증은 이번 가을, 롯데 야구를 보다 찬찬히, 머리 보다는 가슴으로 다가가서 지켜보게 만들었습니다.
아, 롯데 야구… 정말 오묘하더군요. 분명 힘이 그렇게 떨어지는 건 아닌데 스스로 먼저 틈을 보여주고 흔들리고 무너지고. 실책이라도 하나 나오면 팀이 전체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은 5년 전이나 올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들 느끼셨겠지만 분명 이전보다는 좀 더 튼실하고 세밀한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불펜의 막아내는 힘은 이전보다 훨씬 단단해 졌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하! 하’ 그리고 가끔은 다 넘어간 경기를 뒤집어 이겨내는 끈끈함까지 생겼더군요. 시즌때는 몰라도 포스트시즌에선 보기 힘든 롯데 야구였는데 말입니다.
그런 롯데 야구를 보며 왜 사람들이 롯데를 좋아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롯데는 마치 아직 철 조금 덜 든 막내 동생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사랑이 시작되는 건 운명이겠지요.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다들 다르겠지만 왜 좋아하게 됐느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을 찾기 어렵습니다. 좋아지는 건 그냥 좋아지는 거죠. 한글 깨우치기도 전에 야구룰 부터 배워야 했던 야구 소년들, 친구 따라 처음 간 야구장에 처음 들어가는 순간 느껴졌던 심장 박동 소리 등등. 롯데는 팬들에게 그저 운명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롯데 야구는 사랑하기 보다 헤어지기 어려운 야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막내 동생 느낌을 받게됐는지도 모릅니다. 욕하고 때리고 구박할지라도 하늘이 정해준 인연을 끊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롯데 팬들은 자신의 팀을 비하하는 별명으로 스스럼없이 부르곤 합니다. ‘꼴떼’라는 표현은 꼴찌 롯데의 줄임말이라죠. 하지만 누군가 롯데를 함부로 대하려하면 무섭게 하나로 뭉쳐 응징(여기서의 응징은 물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일부 훌리건들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야구를 사랑해서 야구장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합니다. 롯데 야구를 동생보듯 한다는 느낌을 받은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가을이면 매번 취직 시험 보러가는 막내 동생. 1년 동안 정말 많이 준비하고 노력했다는 걸 잘 알기에 누구보다 따뜻하고 열성적으로 응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놈이 꼭 큰 물에만 나가면 심하게 긴장을 합니다. 열심히 스펙 쌓아서 서류는 늘 통과하는데 아는 문제 틀리고, 기껏 잘 풀어놓고는 답안지 밀려쓰고...
이제 필기도 통과해 면접까지 갔지만... 이번에도 또 마지막 순간에 떨다가 준비한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어찌 그리 못났는지, 또 반복된 실패가 지겹지도 않은지 원망스럽고 속상하시겠죠...
‘롯데’하면 떠오르는 말이 하나 있어 어설프게 사투리 한번 써보겠습니다. “우짜겠노, 여까지 왔는데...”
시험 떨어져서 속상하다며 밤 새 술 퍼먹고 눈물자국 그대로인채 잠들어 있는 동생 보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밤새 같이 욕을 했더라도 어떻게 라면이라도 한 그릇 끓여 속이라도 풀어줘야겠죠. 뭐 한,두번 겪은 일도 아니고, 그래도 올해는 부족하고 아픈 전력에 제법 잘 버텨낸 건 분명하니까요.
그냥 그렇게 지금처럼 아끼고 사랑해주다보면 언젠가 정말 환하게 당당하게 어깨 펴고 웃을 날도 오겠지요. 그때 저도 그들에게 다가가 어깨 두드리며 한마디 해볼까 합니다. “롯~데, 살아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