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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재자’는 효자·효녀 관람 불가입니다”(인터뷰)

강민정 기자I 2014.11.03 09:18:59
영화 ‘나의 독재자’의 배우 박해일이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한대욱기자)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감정을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어요.”

재미있게 잘 봤다는 말 보다 아쉽다는 분위기를 먼저 풍겨서일까.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창밖을 바라보다 어렵게 말을 이었다.

“효녀이신가봐요. 그러고보니 이 영화는 효자나 효녀는 보면 어려울, 그들에겐 ‘관람 불가 영화’일 것 같군요.”

곧바로 말을 고쳤다. 그런 이유는 아닌 것 같고, 그저 영화를 이해하는 폭이 좁아 그랬노라고. 기자에게도 그에게도 웃어 넘긴 농담으로 시작한 대화였지만 ‘효자·효녀 관람 불가’라는 말은 생각할 수록 이 영화와 맞는 말로 다가오기도 했다. 주어진 역할에 빠지다 못해, 내가 그 사람과 동일시된 인격체라 믿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결국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열정사(史)’ 혹은 ‘헌신사’였으니까. ‘나의 독재자’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극으로 치닫는 감성으로 그린 부성애 영화에 가깝다. 영화 속에서 아들은 괴기한 아버지를 멀리 두고, 그가 떠나간 뒤에야 진심을 알게 되는 인물이다. 배우 박해일은 설경구와 아들, 아버지로 호흡을 맞추며 많은 생각을 곱씹었다고 했다.

“나는 불효자인가 보다. 생각할 것이 많았다.(웃음) 이해준 감독님과 영화를 찍으며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다. 조잘조잘 아들의 입장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영화의 기반이 돼 주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정말 독재자처럼 저벅저벅 걷는 설경구 선배의 모습을 보며 더 몰입이 잘 됐던 것 같다.”

‘나의 독재자’는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무명 배우 성근(설경구 분)이 국가가 후원하고 대통령 직속 기관이 주관하며 프로젝트 팀에서 기획한 연극에 주연배우 김일성이라는 역할에 캐스팅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됐지만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성근은 20년이 지나도록 ‘인민’을 외치고 ‘핵’을 끌어안고 사는 김일성이 돼 있다. 요양원에 보내진 성근은 태식(박해일 분)의 빚 청산을 위해 ‘위대한 수령동지의 집무실’에 다시 들어오게 되고, 그곳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못 다 전한 20년의 공백을 채우게 된다.

박해일.(사진=한대욱기자)
“‘나의 독재자’ 속 아들과 아버지는 좀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다. 쉽게 생각해서 만약 어린 태식이 아버지의 형편 없는 연기를 보면서도 위로하고 격려했더라면 아버지의 욕망은 채워질 수 있었을까? 그렇지 못했을 거다. 영화가 생각할 부분이 많은 이유는 특정 배경 때문인 것 같다. 그 시대가 안긴 의미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나의 독재자’는 1970년과 1990년의 한국사에 투입된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지만 그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상이 반영돼있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설정된 캐릭터를 빼면 영화는 실제 관객들의 아버지 이야기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박해일 역시 그 시대를 기반으로 태식과 성근을 해석해야 한다고 봤다.

“그 시대는 지금과 달리 잘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했던 때다. 지금과 같이 직접적으로 자녀들에게 관심을 두고 사랑을 주며 기를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내가 일을 하고 밖에서 돈을 벌어와야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다. 그 부분에서 당시 아버지들은 스트레스가 심했을 것이고 집착도 높았을 것이다.”

박해일은 태식을 연기하며 성근이라는 아버지 역시 그때의 인물과 다르지 않다고 해석했다. 캐릭터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이해준 감독 특유의 시선에 설경구의 연기력이 더해져 완성된 성근을 통해 박해일은 그 스스로도 ‘나의 아버지’를 회상할 수 있었다.

“성근도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로서 느끼는 무한한 책임감을 안고 있었을 거다. 그 진심이 엄마도 없이 큰 아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와닿지 못했을 것이고, 나중에 다 자란 후에야 ‘아버지들이 우리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았구나’라는 걸 알게 되는 거다. 영화 제목도 그렇지 않나. ‘나의 아버지’, ‘나의 우상’, ‘나의 독재자’. 그렇게 흘러가는 영화다. 우리 아버지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보실지, 우리 아들들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나에게 ‘나의 독재자’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까지 궁금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영화다.”
박해일.(사진=한대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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