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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신도 정에 이끌린 야구를 한다?

박은별 기자I 2014.07.12 14:27:30
[이데일리 스타in 박은별 기자]‘야신’ 김성근 고양 감독도 정에 이끌리는 야구를 했다. “야구 지도자 인생 통틀어 개인적인 감정으로 선수 운용을 했던 건 두 번째”라는 김성근 감독. 물론 그가 정에 이끌린 야구를 한 이유는 있었다.

11일 오후 이천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고양의 교류전 경기. 1회말이 끝날 무렵이었다. 땀에 젖은 두 명의 선수가 짐을 싸 나왔다. 1회초 타석에 들어서기도 했던 두 선수. 주전으로 나선 이 선수들이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짐을 싸 나온 이유는 뭐였을까. 부상이라도 당한 걸까.

결과적으로 1회 득점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이 먼저 고양으로 돌아간 이유가 됐다. 한 선수는 득점권 찬스에서 3구 삼진을 당했고, 또 한 명의 선수는 좌익수 방면 파울 타구를 날렸다. 하지만 단순히 결과때문만은 아니었다.

경기 후 만난 김성근은 “삼진을 당한 그 선수는 아예 공을 공략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더라. 또 한 번은 좌익수 쪽 뜬공이 났는데 파울인지 페어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바람도 불고 있었고. 그런데 타자가 치고 나서 뛰지를 않더라. 그 모습에 화가 나서 고양으로 보내버렸다”고 설명했다.

여기까지는 승부에선 냉정한, 그리고 혹독하기까지 했던 김성근 감독의 모습이 여전한듯 했다. 비록 주전 두 명이 빠지며 게임은 어려워지게 됐지만 이번 경험이 성장하는 선수들에겐 큰 약이 됐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1회부터 선수들을 이천에서 고양까지 돌려보낸 김 감독의 마음도 편할리는 없었다. 김 감독은 “예전에 SK에 있을 시절, (김)광현이를 대구에서 강진으로 내려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 때가 생각났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선발 운용에 있어선 조금 다른 모습이 보였다. 이날 고양 선발은 베테랑 김수경이었다. 프로 리그를 뒤흔들었던 그였지만 선수로 다시 전향한 뒤엔 그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7경기에 출전해 승패는 없다.

고양은 1,2회 6점을 뽑아내며 6-0으로 앞서고 있던 상황이었다. 조금 더 상대를 거세게 몰아칠 차례였다. 그런데 1회를 깔끔하게 막은 김수경이 2회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사구가 빌미가 된 위기서 3연속 안타를 맞고 5점을 내줬다.

김성근 감독은 움직이지 않았다. 여유있게 앞서다 1점차까지 추격을 받은 상황. 예전 김성근 감독의 모습을 떠올리면 당장 투수를 교체하고도 남을 듯 싶었다. 그러나 벤치에서 움직임은 없었다.

1회 때까지만해도 선수를 고양으로 돌려보낼 정도로 냉정했던 김 감독은 3회에도 마운드에 김수경을 그대로 올렸고 결국 역전까지 허용한 뒤에야 김수경을 마운드에서 내렸다. 이날 김수경의 성적은 2.1이닝 5피안타 3사사구에 7실점(5자책).

결국 6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한 고양은 6-8로 뒤지던 5회 가까스로 동점을 만들며 경기를 8-8 무승부로 끝낼 수 있었다. 쉽게 이길 수도 있었던 경기를 어렵게 풀어나간 셈이었다.

이유가 궁금했다. 김 감독은 왜 김수경을 일찍 마운드에서 내리지 않았을까. 김 감독은 “한 선수는 벌주고, 한 선수는 봐주는 모양새가 됐다.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며 껄껄 웃었다.

이어 김 감독은 진짜 이유를 설명했다.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보다 김수경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고 싶었다. 2회 실점 상황도 내 지시에 수비가 움직이다 에러 2개를 하면서 실점이 많아졌다. 수경이가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원없이 던져보게 하고 싶었다.”

김 감독은 김수경의 투구수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이날 경기 전까지 6경기에 나서 8.1이닝을 기록하고 있던 김수경. 성적이 좋지도 못했고, 젊은 선수들에 밀려 그만큼 기회도 많이 주어지진 않았다. 여기에 굳은 마음을 갖고 선발등판한 경기선 수비 실책 때문에 제대로 된 피칭을 하지도 못했다. 김 감독은 그런 김수경에게 맘껏 던질 수 있는 기회만이라도 주고 싶었다.

김 감독은 “내 야구 지도자 인생 통틀어 감정에 움직인 적인 이번이 두 번째인 것 같다. LG에 있을 때 이상훈이 포스트시즌서 계속 맞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최원호를 투입시킨게 전부였다. 지금도 최원호에겐 미안하지만 그때 불펜에서 몸을 푸는 투수가 원호밖에 없어서 마해영에게 전적이 안좋은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내보낸 적이 있었다. 오늘이 그 감정에 의해 움직인 두 번째 경기였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의미있는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겨야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관심을 갖더라도 선수를 경기에 쓰지 않으면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이기려고 하다보면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적어질 수 밖에 없다. 그 선수가 좋든, 나쁘든 선수를 써봐야하고 기회도 충분히 줘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요즘은 일주일에 한 두게임 정도는 이기는 야구 대신 기회를 주는 야구를 해줘야하지 않나 싶다. (최)향남이게도 이런 기회를 주고 싶다. 정답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나에겐 새로운 시도다. 내 속은 답답하겠지만…(웃음).”

예전처럼 승부, 결과에만 집착하진 않겠다는 김 감독의 다짐인 셈이다. 물론 감독 개인이 아닌, 선수들을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승부의 순간에서 잠시 뒤로 물러서 있었다고 해서 얻은 것이 없는 건 아니었다. 김 감독은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빈틈을 보이니 상대도 빈틈을 보이더라. 승부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니 상대도 백업으로 선수들을 교체하면서 반대로 우리에게도 기회가 왔다. 덕분에 다 진 경기를 지지 않고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주전들을 돌려보내며 새로 기회를 얻은 백업들의 가능성도 확인했다. 내가 좌타자들에겐 사이드암을 거의 쓰는 일이 없는데, 왕민수를 좌타자에 기용, 좋은 결과도 냈다. 여러가지 소득이 있었던 경기였다”며 흐뭇하게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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