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니맨' 최익성이 말하는 도전의 조건

정철우 기자I 2013.01.22 11:00:40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최익성(41.저니맨 야구 육성 사관학교장)은 도전의 아이콘이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가장 많이 짤려 본 사나이. 한국 프로야구에서만 무려 7개 팀에서 뛰었으며 은퇴 후에도 미국 진출을 시도하는 등 끝없는 도전을 이어갔다.

그가 야구를 접은 것은 받아주는 팀이 없을 때가 아니라 자신이 더 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 였다. 그의 마지막 1군 기록은 2005년에서 멈춰 있지만 최익성 스스로는 모든 것을 정리한 2007년이 끝이라 생각하고 있다.

은퇴 후 그의 선택 역시 도전의 연속이었다. 갑자기 드라마에 등장하는 배우로 나타나더니 얼마 후엔 스스로 출판사를 세워 사장님이 됐다. 늘 주위에 먼저 손을 벌리거나 야구를 팔아 얻어낸 것이 아니었다. 올곧이 맨 몸으로 부딪혀 일궈낸 결과였다.

그런 최익성이 얼마 전 또 한번 매우 의미 있는 결과물을 냈다. 지난해 9월, 프로야구에서 방출됐거나 입단에 실패한 선수들을 위해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저니맨 야구 육성 사관학교’를 만들었고 3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프로에 재입성하는 선수를 만들어낸 것이다. LG서 방출됐지만 지난 1월, SK 입단이 확정된 좌완 투수 민경수가 주인공이었다.

최익성은 실패한 선수, 아니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짤린 선수가 다시 부름을 받으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가장 잘 아는 야구인 중 하나다. 실패한 선수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일은 어쩌면 그에게는 맞춤 옷 처럼 편안한 일일 수도 있다.

최익성의 야구 아카데미 벽은 온통 야구장 사진으로 도배가 돼 있다. 선수들이 푸른 그라운드에서 다시 뛰고 싶다는 열정을 잊지 말길 바란다는 의미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예상했던 것 과는 조금 다른 선생님이 돼 있었다. 등 두드려주며 위로해주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먼저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최익성은 “방출된 선수들은 대부분 억울함을 먼저 갖게 된다. “기회를 받지 못했다”거나 “팀 선수층이 너무 두터웠다”며 현실을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진짜 자신의 모습을 먼저 아는 것이다. 뭔가 부족했기 때문에 밀려난 것임을 인정해야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민경수가 처음 최익성을 찾아와서 했던 첫 마디는 “미국 야구에 도전해 보고싶습니다. 편견 없이 나를 봐준다면 자신있습니다”였다. 하지만 최익성은 그런 민경수에게 헛된 꿈을 먼저 심어주지 않았다. “나와 함께 한다는 건 바닥에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걸 의미한다. 폼 나는 훈련은 없다. 당장 지하철 계단을 훈련처럼 오르고 내릴 각오가 있다면 함께하자. 다음 도전지가 어디가 될지는 일단 몸이 된 다음에 결정하자”고 답했다.

민경수가 찾아온 뒤 얼마 되지 않아 크라제 민정환 회장의 지원과 재활의학 전문가인 어은실 박사의 도움을 받아 정식으로 아카데미를 설립했고,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통해 민경수를 다시 프로야구 선수로 키워낼 수 있었다.

최익성은 “우리 아카데미는 기술 보다 몸을 먼저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단 몸이 되면 코치나 감독들이 욕심을 내게 돼 있다. 기술은 오히려 백지 상태인 선수들이 만들기 편하다. 살아남기 위해서 잔기술만 익힌 선수는 오히려 나중에 교정이 힘들어진다. 일단 지도자들이 탐낼 수 있는 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재활이라는 것 자체가 길고도 지루한 자신과의 싸움이다. 여기에 어은실 박사의 트레이닝은 강도가 높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차라리 맘껏 던지고 치는 훈련은 스트레스라도 풀 기회가 되지만 기약 없이 몸을 먼저 만드는 작업은 버티기가 쉽지 않다.

특히 모든 운동 선수들이 “힘은 어디서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런 선수들에게 처음부터 다시 몸을 만드는 과정은 자칫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다. 때문에 최익성은 자신의 아카데미를 특급 선수들에게도 개방했다.

특급 선수들은 팀에서 해결하지 못한 부분을 어은실 박사 등을 통해 채우고, 아카데미에 속한 선수들은 특급 선수들의 훈련을 통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겨울 저니맨 아카데미의 훈련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던 한 선수는 함께 훈련하던 모 구단의 A선수(익명 요구)와 함께 훈련하며 마음을 고쳐먹기도 했다. 자신보다 훨씬 많은 땀을 흘리고 훨씬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익성은 “톱 클래스에 오른 선수는 뭔가 남다른 것이 있다. 멀리서 볼 땐 그저 잘 타고나서 그런 것 처럼 느껴지겠지만 자신만의 무언가가 없는 선수는 결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 그 선수의 노력과 땀을 직접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도전에 나선 선수들이 더 독한 목표를 갖게 만든다”고 말했다.

모두들 요즘 우리의 삶에는 힐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락 프로그램에서 음식까지 여기 저기 힐링을 타이틀로 하고 있다. 누군가 손 내밀어 구해주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게다.

하지만 가장 많이 실패해 본 야구인 최익성은 해답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 도전은 실패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나의 모자란 모습을 들여다 보기 위해선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SK 선수 시절 최익성. 사진=뉴시스
*최익성은…

남들보다 한참 늦은 중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처음 시작했다. 초등학교에서 기본을 배우고 중학교부터는 승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 때문에 기본기를 갖출 틈도 없이 이기는 야구를 해야 했다. 그래서 그의 야구는 거칠 수 밖에 없었다. 잘 나갈 땐 두려울 것 없었다. 1994년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 1997년 24홈런(공동 7위)과 33도루(5위)를 기록하며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 대표적인 호타 준족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1999년 한화로 트레이드 된 이후 무려 6번이나 팀을 옮기는 굴곡을 겪었다. 삼성,한화,LG,KIA,현대,SK 등에서 뛰었고 2004년에는 1년간 친정팀 삼성에 복귀한 적도 있었다. 끊임없는 부상, 그리고 편견과의 싸움을 계속했지만 쉽게 타협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에겐 ‘저니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은퇴 후 그의 별명을 딴 ‘저니맨’이라는 책을 직접 출간하기도 했으며 드라마 출연, 출판사 사장, 이제는 야구 아카데미까지…, 그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