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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기적이 필요한 순간이다. 준플레이오프에서 내리 2연패. 두산이 2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리버스 스윕을 하기 위해선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건 기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선수들의 절실함, 절박함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것이 두산 손시헌의 이야기다.
롯데와 준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두산 더그아웃. 고참들이 빠진 빈자리가 왠지 허전할 것 같지만 그 속을 알치게 메우는 선수가 있었다. 손시헌이다.
포스트시즌을 코앞에 두고 타구에 맞아 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고 해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선수들을 보듬어주고 힘을 실어주는 역할,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시리즈 전만 해도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두산 우세를 점쳤지만 결과는 달랐다. 안방에서 준플레이오프 1,2차전을 모두 롯데에 내주고 말았다. 한 경기만 더 지면 가을잔치도 끝이 난다.
Again 2010. 두산 팬들은 또 한 번 2010년의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두산은 당시 2연패 뒤 3연승을 거두며 극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손시헌도 당시 드라마의 주인공었다. 모두들 기적을 바라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가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그리고 당시와 현재의 팀 분위기는 얼마나 많이 비슷할까.
손시헌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사실 분위기는 지금이 훨씬 더 좋다고.
그는 “그때는 지금보다 더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2연패 뒤 ‘아 끝났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고 했다. 그래도 이번엔 선수들이 2010년을 떠올리며 희망을 찾고 있는 덕분에 분위기가 크게 뒤쳐지지는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그가 선수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단 하나다. 어떠한 기술적인 부분이 필요한 시기는 아니다. 흔히 말하는 ‘수비 실책을 줄이자? 더욱 집중하자?’가 아니었다.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현실을 직시하고 더욱 절박해지자. 그렇다면 기적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는 ‘역스윕’, ‘2010년의 기적’ 등 희망만을 바라보다 지금의 절실함, 절박함이 조금은 줄어들진 않을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예전에도 좋은 기억이 있으니까 우리는 잘 될거야’라는 막연한 생각이 선수들을 느슨하게 만들지 않을까하는 우려였다. 조금 더 선수들이 최악의 상황임을 인지하고 더욱 이를 악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손시헌은 “2년 전 그 상황이 사실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중요한 건 그런 기적을 바라는 것보다 선수들이 당장 내일 경기에서 얼마만큼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을 쏟아 부을 수 있느냐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현실을 직시하고 당장 내일만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벼랑 끝까지 왔으니 내일 한 경기에 올인해줬으면 싶다. 내일 지면 다음 경기는 없다. 더 몸을 사리지 않는, 절박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죽기살기로 덤벼줬으면 싶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은 그럴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어리석은자는 기적을 바라고 현명한 자는 기적을 만든다고 했다. 두산은 2년 전 기적을 떠올리며 기적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손시헌의 이야기대로 더 절박하고 치열해질 수 있다면 기적이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