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19일 클리블랜드와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서 보스턴의 승리는 '주연:자시 베켓, 조연: 제이슨 배리텍'의 드라마였습니다.
베켓은 1차전에 이어 교과서에 나와있는 '에이스란 무엇인가'를 그대로 보여 줬습니다.
케빈 유킬리스의 홈런으로 1-0의 리드를 안고 등판한 베켓은 1회말 뜻밖의 출발을 보였습니다. 클리블랜드 톱타자 그래디 사이즈모어에게 빗맞은 좌익 선상 2루타를 맞은 데 이어 아스드루발 카브레라에게 우전 안타를 허용, 무사 1,3루에 몰렸습니다.
3번 트래비스 해프너를 유격수 병살 땅볼로 유도했으나 1-1 동점을 내줬습니다. 하지만 4번 타자 빅터 마르티네스에게 다시 좌전 안타를 맞았습니다.
3안타를 맞은 구질은 모두 패스트볼이었습니다. 구속은 97마일, 91마일 스플리터, 96마일 패스트볼로 평소와 다름없었으나 무브먼트가 문제였습니다. 여기에 3연승의 상승세를 타고 있는 클리블랜드 타자들은 베켓의 패스트볼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들어오는 모습이었습니다.
3연패의 벼랑 끝에 선 보스턴 덕아웃에는 '베켓마저...'라는 불안감이 또다시 땅거미처럼 내려앉기 시작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베켓은 이내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앞서 11개의 공 중 9개를 포심 패스트볼(1개는 스플리터, 1개는 커브)로 뿌리던 패턴을 바꾼 것입니다. 5번 라이언 가코와의 대결서 96마일의 1, 2구 패스트볼이 볼과 파울볼로 커트된 직후였습니다.
베켓은 3구째를 76마일 커브로 루킹 스트라이크를 잡았습니다. 그래도 패스트볼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시 96마일 패스트볼을 던졌습니다. 또 파울볼로 커트됐습니다.
그러자 베켓은 패스트볼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접었습니다. 79마일 커브를 던져 결국 헛스윙 삼진을 솎아 내며 1회를 넘겼습니다.
2회부터 베켓은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됐습니다. 선두 6번 자니 페랄타를 상대로 초구 패스트볼 이후 4개의 공을 모두 75~79마일 커브로 내리 던지며 헛스윙 삼진으로 요리했습니다. 이날 피칭의 힌트 내지는 감을 완전히 잡은 것이었습니다.
이후 베켓의 커브는 클리블랜드의 잔뜩 물이 올라 있는 방망이를 무력화시키는 파노라마였습니다. 삼진 또는 범타를 유도해내며 8회까지, 5회 2사 후 연속 안타, 7회 2사 후 내야 안타를 맞은 것을 제외하곤 9삼진을 솎아내며 무실점 쾌투의 원동력이 됐습니다(이날 성적은 8이닝 5피안타 1볼넷 11탈삼진 1실점이었습니다).
베켓은 중반 이후엔 패스트볼의 무브먼트까지 살아나며 종전처럼 완전히 자신의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클리블랜드 타자들이 1차전에 이어 베켓의 커브에 속절없이 당한 데는 그것이 말 그대로 활처럼 휘면서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종(縱)의 변화구인 때문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종 변화구는 '점(點'의 타격을 해야 합니다. 타점이 한 개 뿐이기 때문입니다(반면 횡(橫), 옆으로 휘어지는 변화구는 '선(線)'입니다. 때문에 타점이 여러 개입니다).
클리블랜드 타선이 상승세를 타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세기 보다는 힘을 앞세운 젊은 타자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98마일의 광속구에 폭포수 커브까지 겸비한 '쌍 권총'의 베켓을 공략하기란 버겁기만 한 게 사실입니다.
베켓의 진면목은 지혜로운 볼 배합의 전환을 통해 자신의 경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보스턴은 1-1 동점 이후 2회 1사 1루, 3회 무사 1루, 4회 무사 1, 2루, 5회 2사 만루 등 7회 4-1로 승부를 가르기까지 숱한 찬스를 놓쳤습니다. 특히 3회 무사 1루서 병살타가 나온 뒤 볼넷으로 다시 계속된 2사 1루서 매니 라미레스의 우중월 투런 홈런이 펜스 위 노란 선을 맞고 나왔다는 심판진의 판정으로 '홈런성 단타'로 둔갑하며 간신히 2-1을 만드는데 그친 것은 불길한 흐름의 절정이었습니다.
더욱 5회 클리블랜드 선두 타자 케니 로프톤이 볼카운트 원스리서 한복판 96마일 패스트볼을 쳤을 땐(결과는 좌익수 플라이) 베켓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나오며 일촉즉발 직전까지 갔습니다. 스스로도 실투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까닭이었습니다.
승리의 여신마저 냉정하게 팔짱만 끼고 있는 1점차의 숨막히는 흐름. 그러나 베켓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너져 내릴 듯한 제방을 홀로 떠받치고 있는 다윗이자 헤라클레스였습니다.
아마도 보스턴 팬들이라면 베켓의 폭포수 커브보다도, 벌판에 홀로 버티고 선 그의 모습에 더욱 감동을 받았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2003년 챔피언십시리즈 시카고 컵스전서 불과 23세의 나이로 완봉승을 따내며 1승3패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 놓은 영 건(Young Gun) 베켓이 이제 완(完) 건으로 또 한번 거듭났음을 입증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베켓이 주연이었다면 주장이자 포수인 배리텍은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주연을 빛을 발하게 한 조연이었습니다. 1회 패스트볼이 불안하기 짝이 없었던 베켓이 커브로 투구 패턴을 바꾸고, 이후 쾌투 행진을 이어가는 데 배리텍의 투수 리드가 결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로프톤과 실랑이가 벌어졌을 때 제일 먼저 마운드로 달려가 베켓을 진정시킨 것도 그였습니다.
포스트시즌에서 포수의 중요성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흩어져 있었던 베켓의 구슬을 보배로 엮어낸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단짝 배터리, 배리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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